[TEN 리뷰] ‘나비잠’ 둘이 한 사랑, 한 사람의 기억만 지워진다면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나비잠’의 김재욱과 나카야마 미호./ 사진제공=트리플픽쳐스/영화사조아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온다. 뜨겁게 타오른 이들에게 나이나 국적 따위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소중하다. 표면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만남이라 할지라도, 결국 이별을 했다 하더라도 사랑했던 기억은 그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가을의 문턱에서 잔잔한 멜로 영화 한 편이 마중을 나왔다. 영화 ‘러브레터’로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한 나카야마 미호와 배우 김재욱이 담아낸 사랑 이야기 ‘나비잠’ 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료코(나카야마 미호)는 일본 소설에 빠져 유학을 온 작가 지망생 찬해(김재욱)와 우연히 만난다. 료코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만년필을 찾아준 찬해에게 반려견 톤보와의 ‘산책 아르바이트’를 부탁한다. 또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있는 소설의 타이핑을 부탁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료코는 유명한 작가다.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등 사회적인 명성을 가진 여성이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익숙한 것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찬해는 일본에서 7년 동안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료코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찬해와 함께 준비한다. 소설을 완성해가는 동안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다.

영화 ‘나비잠’ 스틸컷/ 사진제공=트리플픽쳐스/영화사조아

료코는 중년여성이고, 찬해는 20대 대학생이다.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 사이기도 하다. 이들의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다. 영화 중반부, 두 사람이 나누는 키스를 보고 ‘뜬금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 ‘말하는 건축가'(2011) 등을 통해 인간의 심리, 관계 등을 감각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정재은 감독은 섬세한 연출력으로 이를 ‘치정’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소설’을 액자식 구조로 연출하며 영화 속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소설은 료코와 찬해의 사랑과 그 기억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다. 소설을 통해 단순한 연애를 넘어선 궁극적인 ‘사랑’을 표현했다.

특히 료코와 찬해가 함께하는 공간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아베 츠토무의 실제 집에서 촬영했다. 두 사람의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을 담아내는 데 손색이 없다. 감독은 집, 서재부터 사소한 소품들까지 섬세한 화면구성을 통해 의미를 부여했다.

료코와 찬해는 각자 ‘새로움’을 갈망한다. 하지만 각자 다른 이유로 ‘새로움’을 두려워한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 자체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추억이 돼 남는다. 설령 이별을 했다고 해도 소중했던 기억은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비극적인 건 둘 중 하나의 기억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워져 간다는 것이다. 료코는 아름다웠던 사랑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한다.

1995년작 ‘러브레터’에서 “오겡끼데스까”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나카야마 미호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됐다. 여전히 눈부신 미모와 한층 짙어진 감성으로 료코의 다소 난해하게 변하는 감정선을 몰입도 높게 연기했다. 실제 13살의 차이인 김재욱과의 연인 연기도 어색하지 않다.

그간 장르물과 멜로물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색으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김재욱은 특유의 나른하고 섹시한 분위기로 찬해를 표현했다. 특히 극 중 “나비잠”이라는 한마디를 빼고 모든 대사를 일본어로 소화하며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나비잠’은 정재은 감독과 김재욱을 제외하곤 모두 일본인 배우와 스태프들이 참여해 만들었다. 일본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영상미부터 연출까지 한국영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나비잠을 자는 아기처럼 예쁜 영화지만 깨알 같은 유머나 심금을 울리는 극적인 장면은 없다.

9월 6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