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주의 10 voice] <뉴스룸>, 안철수와 문재인의 시대에 필요한 것

어떤 공간이 있다. 그곳에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성과 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 꿈의 공간의 이름은 이었다. 그리고 2012년 현재, 이 있다. 의 작가 아론 소킨이 으로 돌아왔다. 시즌 1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멋지고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될 첫 회 오프닝에서 주인공 윌 맥커보이(제프 다니엘스)는 “왜 미국이 가장 위대한 나라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라는 한 대학생의 물음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외친다. 왜 미국이 더 이상 가장 위대한 국가가 아닌지에 대해서. “시청자만이 유일한 친구”라고 믿고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가장 앞장 서서 몸이라도 팔 사람”이라 평가받았던, 누구의 편도 되지 않음으로서 누구의 적도 되지 않았던 케이블 뉴스의 간판 앵커 윌. 그의 삶이 꼬이기 시작한 이 연설은 TV로의 귀환을 알리는 아론 소킨 스스로의 자축포인 동시에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 그랬듯이, 민주주의다. 다만 이 백악관 집무실을 배경으로 직접적인 정치의 형태를 통해 이를 이야기했다면, 은 ‘뉴스’로 이를 강변한다. 은 뉴스가, 그것도 제대로 된 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민주주의에 있어 뉴스의 역할은 아론 소킨처럼 민주당 지지자이든 윌처럼 공화당 지지자이든 상관없이 원칙의 문제다.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온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 즉 유권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것이고, 이를 하는 것이 뉴스와 언론인의 임무라는 것. 그래서 윌과 책임 프로듀서 맥켄지(에밀리 모티머), 그들의 동료들은 “유권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최우선으로 다루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사안의 찬반양론을 최상의 형태로 구성해서 시청자에게 제시하는” 뉴스를 만들고자 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사적으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심지어 배신과 오해를 주고받은 사이라 하더라도 동지로서 서로를 지지하고 감싼다.

시대가 소환한 ‘소키니즘’
[김희주의 10 voice] <뉴스룸>, 안철수와 문재인의 시대에 필요한 것
이처럼 의 인물들은 원칙과 신념위에서 “위대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위대한 바보”가 되기를 자처하며 민주주의를, 정의를, 도덕적 의무를, 그리고 사명감을 이야기한다. 이 세계는 극 중 표현처럼 “정치 사회 전공 대학생” 같은 이들의 세상이다. 아니, 요즘은 대학생도 이렇게 이상적이지 않을 것이다. 를 지탱하고 관통하는 이 올곧은 순진함은, 그래서 매혹적인 동시에 위태롭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론 소킨인 것이다. 아론 소킨은 에서 과 의 결합을 시도한다. 그의 장기이자 스스로 사랑해 마지않는 공간을 만들어 명민하고 헌신적인 인물들을 모았다. 소위 ‘소키니즘’이라 불리는 특유의 계몽주의와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속사포 같은 대사의 향연도 여전하다. 이 같은 아론 소킨의 세계에서는 단 하나의 신념이 통용된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되 모험적”일 것. 복잡하고 지리멸렬하고 비열하고 구차한 세상에서 이 얼마나 순진한 단어들의 조합인가. 하지만 그저 비웃고 외면하기엔 아론 소킨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지금이라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2012년의 우리 역시 이렇게 가슴 벅차게 낭만적이고 코웃음 나도록 순진한 꿈을 꾸어야 하는 게 아닐까.

2012년,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이에 앞서 문재인이 정치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반(反) 박근혜 혹은 진보주의자 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안철수나 문재인 개인이나 이들의 연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으로 변신한 두 남자의 모습이 반갑고 고마운 동시에 낯설다. 한편, TV 속에서는 과 최인혁(이성민)이 등장했다. 누구보다 환자를 살리고자 하고 살릴 수 있는 의사, 꾀죄죄한 몰골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언제나 환자의 곁에서 눈높이로 서 있는 의사, 의욕적인 인턴들에게는 북극성같이 쫓아 따라가고픈 스승인 동시에 조직과 시스템이라는 현실에서 수없이 좌절하면서도 끝내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회인. 최인혁의 이 같은 모습에 많은 이들이 설?다. 상식과 원칙을 중시하고 꼼수와 거짓을 경계하며 우리 사회의 썩은 병폐와 싸우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대중은 믿고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고 있다. 결국 안철수와 문재인, 최인혁의 등장은 그들 자신의 의지만이 아니라 시대가 소환한 이름인 것이다.

판타지라고 넘기기엔 너무 절실한 의 세계
[김희주의 10 voice] <뉴스룸>, 안철수와 문재인의 시대에 필요한 것
아론 소킨 스스로 “이것은 다큐가 아닙니다. 드라마 속 뉴스룸은 현실보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이고 과장돼 있어요. 저는 실제 뉴스룸과 대조해 과장되고 이상적인 뉴스룸을 만들고 있습니다” 라고 밝혔듯이, 은 분명 판타지이며 히어로물이다. 하지만 꿈같은 이야기라고 비웃고 넘기기엔 이 그리는 세상이, 던지는 화두가 우리에겐 너무 절실하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는 안철수의 의학박사 논문 표절 의혹을 다루는 MBC 와 무려 대선후보 부동산 검증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문재인의 자택 등기 지연 논란을 보도하는 KBS 이 있다. 이 뉴스쇼에서 당사자의 해명이나 학계, 관계자의 증언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뉴스의 의미가 사실이나 진실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이번 대선의 화두가 정권교체인 이상 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언론들이 원칙과 의무를 외면하고 특정 후보에 편향적인 보도를 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이유로 묵과하고 체념하고 혹은 용인하기엔 너무 뻔뻔하고 저열하며 무엇보다, 위험하다.

맥켄지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이지. 유권자에게 모든 정보를 주는 거야.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가 제공될 때 끔찍한 결론이 나올 수 있어. 어떤 건전한 논쟁도 막아버릴 거라고. 그래서 내가 뉴스를 만드는 거야” 라고 말했다. 정보가 곧 권력이 세상, 정보의 민주화가 권력의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대다. 또한 너무 많은 정보가 존재하기에 이를 선별하고 뉴스로 전달하는 이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들이 윌처럼 “언론의 엘리트”인가 부터 그런 엘리트주의가 옳은가, 일부 엘리트에 의한 계몽주의가 옳은가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고 이 입장의 차이가 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어?’ 보다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어’가 더 필요하다는 것만은 부인해선 안 되는 사실이 아닐까. 미래는 냉소하는 얼굴이 아니라 꿈꾸는 가슴에 응답하기 때문이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