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누가 복수의 주체인가? ‘킬링 디어’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킬링 디어’ 포스터/사진제공=오드

혹시 화려한 복수를 꿈꾸어 본 적이 있는가? 나와 내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준 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양과 질의 대가를 되돌려주는 복수 말이다. 누구라도 그런 식의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로 옮기긴 불가능하다. 설혹 법의 힘을 빌려 해결한들 금전적 배상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나 감정 치유까지는 어렵다. 그리고 여러 조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으면 더더욱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를테면, 의료사고인 경우 의사의 오진과 병원의 실수를 증명해내야 하고 천신만고 끝에 증명했다 하더라도 사고 이전 상태로 절대 돌아가진 못한다. 게다가 복수를 위해 금전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들인 노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복수를 하려면 원래 무덤 두 개를 파야 한다지 않는가!

이제 소개하는 ‘킬링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는 복수에 대한 상상력을 만족시켜주는 영화이긴 하지만 스릴러로도 손색이 없다. 관객은 상당한 재미를 느낄 것이다.

스티브 머피(콜린 파렐)는 유능한 외과의사다. 병원에서 인정받고 사회적 명성까지 쌓아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처지다. 부인 안나(니콜 키드만)는 대단한 미인에 남편을 슬기롭게 보좌하고 사랑스런 남매 킴과 밥을 건강하게 키우는 현모양처다. 이상적인 가정인 셈이다. 그런데 스티브 주변에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생겼다. 정체불명의 소년 마틴(베리 케오간)이 그 주변을 맴돌면서다.

스티브는 마틴만 보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왠지 마틴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느낌마저 준다. 무엇인가 큰 약점이 잡혀있지 않고는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마틴에게 값비싼 손목시계를 선뜻 풀어주고 없는 시간을 쪼개어 마틴의 집에 방문했더니 자기 엄마와 사귀어달라는 황당한 요청을 한다. 스티브는 유부남인데 말이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스티브의 가족에 끼어들어와 안나의 호감을 산 후 어느새 마틴은 킴의 애인이 되고 만다. 이면에 어떤 진실이 숨어있을까?

영화 ‘킬링 디어’ 스틸/사진제공=오드

스릴러 영화의 특징은 사건을 계속 미궁에 몰아넣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있다. 어떤 감독들을 이런 작업을 기가 막히게 수행하지만 수준이 못 미치는 감독은 호기심을 팽팽히 당기기는커녕 잡았던 끈마저 놓치고 만다. 그럴 경우 안절부절 못하는 꼴이라니……. 그러면 이미 본전을 날린 셈이라 차라리 영화관을 나오는 편이 낫다. 긴장감 유지라는 측면에서 란티모스 감독은 대단히 뛰어나다. 그의 전작들인 ‘송곳니 2009’와 ‘더 랍스터 2015’를 떠올리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두 가지 축을 갖는다. 하나는 우물쭈물 하면서 마틴에게 끌려가는 스티브이다. 그는 침착해 보이지만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다. 콜린 파렐은 이 역을 하기에 제격인데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원래 그의 장기라서 그런가보다. ‘아, 어떻게 하지?’ 그 눈빛을 영화에서 수없이 보았다. 스티브의 반대쪽에 있는 마틴은 무엇인가 거부할 수 없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며, 스티브를 바라보는 눈길은 마치 올무에 갇힌 새를 보는 사냥꾼 같다. ‘벗어날 생각일랑 말아요!’ 마틴 역의 베리 케오간이 등장한 영화로 ‘덩케르크 2017’이 생각나는데 꽤 신선한 연기변신이다.

복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제패했던 함무라비 왕은 도시 가운데 현무암 기둥을 세웠다. 거기에는 갖가지 분쟁들을 해결하는 법을 자세히 새겨놓아 오가는 사람들이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 기본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이른바 ‘동태보복율(同態報復律, ius talionis)’이라 불리는 복수원칙이다. 복수를 할 때는 상대에게 입은 만큼만 되돌려 줘야지 삼족을 멸하거나 연좌제 등과 같이 과도한 처벌을 내려선 안 된다. 강력한 제재로 재발방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복수가 난무하는 공포사회를 만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같은 양과 질의 복수에 그쳐야 한다. 동태보복률은 고대세계가 우리에게 남겨준 훌륭한 유산이다.

‘킬링 디어’는 제70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눈부시고 지적인 올해의 영화”라 했다는데, 적절한 평가로 보인다. 수사슴(deer)은 눈이 맑아 흔히 순수한 존재로 부각되고, 그에 따라 ‘사슴 사냥’은 잔혹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영화 ‘디어헌터 1978’의 메타포가 기억나는 대목이다.

이 영화에서 과연 ‘수사슴’이 누구인지 짐작해 보기 바란다.

박태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