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뭐 봤어?]〈황금의 제국〉, 빠르게 완성된 두 남자의 게임판

SBS <황금의 제국> 방송화면

SBS <황금의 제국> 방송화면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 3, 4회 7월 8,9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태주(고수)는 민재(손현주)와 서윤(이요원)이 사려는 땅 2평을 쥐고 ‘10억’을 요구한다. 다급해진 민재는 필두(류승수)를 시켜 억지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태주는 잔금이 입금되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 서윤에게 10억을 받고 땅을 넘긴다. 이 일로 민재는 모든 것을 잃고, 10억으로 가게를 열고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태주는 설희(장신영)의 솔깃한 제안을 시작으로 4년 뒤 부동산 시행사 ‘에덴’의 대표로 성장한다. 태주는 오랜 시간 공들인 재건축 사업을 앞두고 다시 반격을 시작한 민재와 마주하고, 뇌종양의 재발로 치매 증상을 보이는 최동성(박근형) 회장은 서윤을 사실상의 후계자로 지명한다.

리뷰
본격적인 게임의 서막은 4회 만에 겨우 시작됐다. 먹고 살기 위해, 아버지의 설움을 풀고 가족들의 눈물을 닦고 그저 안정된 미래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태주(고수)의 도박은 모든 도박이 그러하듯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게임의 사실상 딜러인 설희(장신영)는 다시금 승리의 맛을 본 태주를 끌어들였고, 가족의 윤택한 미래와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 자체를 신앙으로 삼으며 게임을 즐기게 된 태주는 출구 전략 없이 베팅을 계속했다. 그리고 비로소 모든 것을 잃은 민재(손현주)는 태주가 아버지를 돈 때문에 잃어야 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도 돈 때문에 아내를 잃는다. 그렇게 돈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 중 하나씩을 잃은 두 사람은 비로소 ‘올인’의 게임 준비를 마쳤다.

<황금의 제국>은 4회에 이르는 동안 돈을 둘러싼 거대한 게임을 그리는 듯 끊임 없이 패를 돌리고, 그 패를 흘리고, 패를 뒤집어 승부를 가려냈다. 정신 없이 흘러가는 패 속에서 작고 큰 승패는 빠른 속도로 결정됐고, 그 와중에 승리한 자들의 달콤한 환희와 실패한 자들의 처절한 절망을 훑어나갔다. 늦춤 없는 빠른 속도로 서로의 패를 읽고, 게임과 그 게임 안에 있는 인물들의 철저한 심리 변화를 읽어내는 이 드라마는 그 자체로 게임 판이 되기를 원하는 듯 보이며 그 속에 들어있는 인물들은 게임, 정확하게는 도박판에 덤벼든 인물들의 역할로 도치시킨다.

사실상 복잡한 가지를 다 쳐내고 나면 <황금의 제국>은 철저히 태주와 민재의 게임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의 방식대로 승리와 패배를 한 번씩 주고 받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먼저 절망을 맛본 태주는 땅 2평에 인생 모든 것을 걸어 민재를 몰락하게 했다. 그리고 그 몰락의 끝에서 다시 기어올라온 민재와 태주는 다시 마주쳤다. 어떠한 상황과 방식이든 돈을 이유로 해서 모든 것을 잃고, 소중한 것까지 스스로 버려야 했던 경험을 한 두 사람에게 상대와의 게임은 피할 수도 혹은 피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태주를 판에 끌어들인 설희는 딜러다. 태주와 한 편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설희이지만 사실 단 한 판의 게임으로 모든 것을 접으려던 태주를 도발해 다시 게임 판으로 끌어들였고, 태주가 객관성을 잃고 게임 자체에 몰두하게 됐을 때도 (적어도 현재까지는) 가장 먼저 상황을 냉정하게 읽는다. 게임의 판세를 객관적으로 보는 설희는 숨이 넘어갈 듯한 게임의 긴장감 앞에서 냉정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상황을 보는 딜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서윤은 변수로 남는다. 민재와 태주의 대결에서 서윤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는 존재다. 그는 사실상 게임 판을 만든 설계자이자 주인이며, 언제고 그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민재와 태주의 게임에서 서윤은 가장 큰 변수가 된다. 서윤과 대척점에 있는 민재라 할 지라도 결국은 혈족이자 제국의 일원인 이상 서윤의 마음은 언제고 변할 수 있는 상황이며, 제국에서 민재를 몰아내야 하는 서윤의 입장에서는 태주 또한 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동안 이 드라마가 과감한 생략과 매끄럽지 않은 서사 연결로 일관했던 것은 <황금의 제국> 자체가 서사가 아니라 거대한 게임 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빠른 속도로 두 사람에게 승패의 트라우마를 안겨주고 본 게임을 시작해야 하는 <황금의 제국> 입장에서는 서사적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 이유도 여유도 크게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게임판을 고스란히 설명하다고 하더라도, 굳이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태주의 이야기나 감정씬을 통해 과도한 몰입을 요구한 부분은 여러모로 극 자체를 늘어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민재나 서윤의 이야기에서 빠른 속도감으로 몰입도를 높인데 비해, 태주의 비극적인 감정선은 드라마의 명분을 위해 불필요하게 길고 지루하게 개입된 듯 보여 전체적인 호흡을 놓치도록 만들었다.

어찌되었건 <황금의 제국>은 4회에 이르는 동안 이 거대한 게임판을 완성하고 각각 승과 패를 안기면서 기본 워밍업을 마쳤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경험이 있는 태주와 민재, 두 사람은 오로지 올인 만이 존재하는 그들만의 게임을 앞에 두고 있다. 산만한 게임의 판이 어느 정도 정리된 지금, 이 독특한 드라마 아니 게임은 어떠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을까. 돈이 신앙이 될 수 밖에 없는 게임판에서 두 남자의 신앙은 어떠한 방식으로 부서져 나갈 것인가. 돈의 시대인 지금,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추적자>의 그것만큼이나 묵직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은 명쾌한 해답 보다는 물음표가 많다. 그리고 그 물음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찾는 일은, 지금부터다.

수다 포인트
– <추적자>가 손현주를 재발견하게 해 준 드라마라면, <황금의 제국>은 장신영을 재발견 하게 해 준 드라마가 될 듯.
– ‘페어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던 ‘혜라’의 모습과 ‘태주’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죠.
– 제작진께 드리는 말씀: 부동산과 재테크에 무지한 시청자를 위해 하단에 부동산 용어 자막 좀…

글. 민경진(TV리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