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림, 17세 여고생이 아이 엄마 되어 돌아온 DJ석은?(인터뷰)

박경림

박경림

열 일곱 살. ‘연예인도 오고 기념품도 준다’는 얘기에 KBS 라디오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여름 캠프에 참가했던 여고생은 캠프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사회를 보다 즉석에서 공개방송 진행자로 발탁됐다. 우연히 방송을 접한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는 며칠 후 바로 그를 게스트로 섭외했고 그렇게 박경림의 ‘방송 인생’이 시작됐다. 라디오가 평범했던 여고생의 삶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리고 18년 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여성 DJ로는 처음으로 MBC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 진행석을 꿰찼다. 이제 <두시의 데이트> 안방마님 3주차. 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경림은 “데뷔 때처럼 긴장되고 설렌다”며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하다. 아직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고교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라디오 인생은 꽤 화려하다.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심심타파>, KBS <FM 인기가요> 등 밤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 DJ를 두루 섭렵하다 드디어 <두시의 데이트>에 입성하게 된 것. 어느새 방송 생활 20년차를 바라 보고 있는 그에게 ‘질긴 인연’인 라디오는 어떤 의미일까.

Q. <두시의 데이트>가 그간 오랜 대타 DJ 체제를 이어 오다 드디어 새 주인을 만났다.
박경림: 사실 제안을 급하게 받았다. 프로그램이 계속 대타 체제로 돌아가다 정식 DJ를 빨리 발탁해야 하는 상황이라 하루 이틀 안에 결정해야 했다.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얼른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Q. 방송을 시작한 지 이제 3주 정도가 지났는데 만족스럽나.
박경림: 요즘처럼 짧고 단선적인 소통이 늘어난 시대에 라디오는 온정이 남아있는 유일한 매체인 것 같다. 긴 호흡으로 사람사는 냄새를 전하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까. 누군가와 두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면서 친구가 된다는 느낌은 라디오가 아니면 어디서도 할 수 없는 소통인 것 같다.

Q. DJ가 되자마자 배우 정우성과, <구가의 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최진혁, 전 야구선수 박찬호(출연예정) 등 굵직한 게스트 섭외로 화제를 모았다.
박경림: 정우성 씨는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우연히 만나 이후 섭외요청을 드렸는데 흔쾌히 나와주셨다. 운이 좋았던 거지(웃음) 최진혁 씨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인데 요즘 드라마가 잘 돼서 반가운 마음에 섭외했고, 박찬호 오빠는 전국에 2,000명 정도 밖에 없는 ‘충주 박씨’로 나와 먼 친척뻘이다.

박경림

박경림

Q. 라디오 방송에서도 역시 박경림만의 ‘황금 인맥’체제가 구축되나보다.
박경림: 라디오를 통해 내 인생을 바꿔준 인연을 많이 만났다. 그 첫번째가 이문세 아저씨인데, 여고생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했을 때 당시 DJ였던 이문세 아저씨가 내게 “잘했다고 생각하니?”하고 물으셨었다. 그러면서 “잘하는 애들은 공부해, 너도 가서 공부하렴”이라고 충고하셨다.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상해서 이후 수능 때까지 고시원에서 살며 공부했고 그렇게 대입 시험을 마쳤을 때 이문세 아저씨가 내게 다시 연락하셨다. 그리곤 본인이 진행중인 <두시의 데이트> 고정 코너를 맡겨주시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고교시절 내가 방송가에서 잠깐 쓰고 버려질까 걱정되서 일부러 공부하라고 차갑게 말씀하셨다가 대입을 본 후 다시 불러주신 거였다. 아직도 생각해보면 피 한방울 안섞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딸처럼 대해 주실 수 있었을까 싶다. 라디오는 내게 그런 인연들을 만들어준 곳이다. 그래서인지 라디오를 통해 무엇보다 사람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Q. 라디오 DJ로서 자신만의 전략이 있나.
박경림: 오랜만에 청취자들을 만나는 거니까 편안히 조용히 만나고 싶더라. 무엇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예를 들면 요즘 스트레스 받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 어느 날은 나를 ‘욕받이’로 써달라며 욕을 보내달라고 해 봤다. <해를 품은 달>의 액받이 무녀처럼 말이다.(웃음) 그랬더니 순식간에 각종 하소연으로 게시판이 채워지는데 깜짝 놀랐었다. 이런 소통의 즐거움이 큰 것 같다.

Q. 오랜 역사를 지닌 <두시의 데이트>라는 상징적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박경림: 김기덕이라는 전설적인 DJ를 시작으로 주병진 이문세 윤도현 박명수 같은 대표 DJ들을 배출했는데 갑자기 여자가 온다고 했을 때는 반대 의견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한 달을 하든, 1년을 하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만 먹었다. 청취자들의 귀한 시간을 되도록 좋은 추억으로 채워줘야지.

Q. 데뷔 이래 지난 15년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방송에서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이전에는 거침없는 활달함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원래의 유쾌함에, 진행자로서의 포용력을 더한 것 같다.
박경림: 한동안 방송에서 몸을 사렸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내가 좀 얌전해져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대중은 나의 거침없고 솔직한 모습을 좋아해주셨던 건데 홀로 착각했던 거다. 그런 시간을 겪고 나니 어떤 모습이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는 게 맞겠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 방송하기가 예전보다 편해졌다.

박경림

박경림

Q. 토크쇼에서 다른 사람의 사연에 쉽게 공감하는 등 눈물은 확실히 많아진 것 같다.
박경림: 난 누가 울면 나도 따라 눈물이 나고, 힘든 사연을 접하면 저 사람은 얼마나 슬플까 싶어 같이 울게 되더라. 아이를 낳은 후 확실히 타인에 대한 공감대가 더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에 라디오 진행할 때도 그랬다. 퀴즈 코너를 진행하는데 청취자 대신 내가 답을 맞추는 ‘박경림 찬스’라는 게 있다. 그 때 연결됐던 한 청취자가 4단계쯤에서 ‘박경림 찬스’를 썼다가 결국 내가 답을 못 맞춰 상품을 하나도 못 타게 됐다. 연결됐다고 무척 좋아했던 그 청취자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상품 다 드리고 싶었는데…

Q. 라디오 DJ로서 연륜이 묻어나는 부분도 엿보인다.
박경림: <별이 빛나는 밤에>나 <심심타파>를 진행했을 때 청취자였던 중고생들이 이젠 직장인이 되어 사연을 보내올 땐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뿌듯함이 있다. 동시대를 청취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더 좋은 언니, 누나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단 생각이 종종 든다.

Q. 경쟁 프로그램인 <두시 탈출 컬투쇼>가 전체 라디오 청취율 1위를 고수하는 등 막강한데 부담감을 느끼진 않나
박경림:  컬투 오빠들이 7,8년간 쏟은 노력과 정성 때문에 그 시간대 라디오 청취율이 굉장히 높아졌다. 크게 보면 나 또한 그런 부분의 수혜자다. 하지만 아마 그들의 웃음 코드는 내가 못 따라갈 것 같다. 나는 여성적인 취향으로 다른 부분을 공략해야지. 서로 공감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강점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Q. 방송인으로서의 꿈이 있다면
박경림: 예전에는 항상 오프라 윈프리같은 토크쇼 진행자라고 대답했다. 어느 순간 내가 너무 부족하면서 말로만 떠들었구나란 생각에 많이 부끄럽더라. 요즘에는 그저 제 자리를 꾸준히 지키면서 오래도록 친구처럼 함께 가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 가능하다면 단일 프로그램을 가장 오래하는 DJ로 남고 싶기도 하고.(웃음)

글. 장서윤 기자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포토그래퍼 박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