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공연] 밥 딜런, 노래로 전한 말, 기립으로 대신한 인사

[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밥 딜런/ 사진제공=소니뮤직

밥 딜런./ 사진제공=소니뮤직

노(老) 가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집스럽다기보다는 고고했다. 두 시간 내내 그 흔한 인사말 하나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와 연주에만 몰두했다. 지난 27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포크계의 전설 밥 딜런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밥 딜런의 별명은 ‘음유 시인’이다. 문학적인 가사 때문이다. 2016년 스웨덴 한림원이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한 뒤론 ‘음유 시인’이 그의 고유명사처럼 됐다. 그리고 이 단어가 주는 낭만 때문에 적지 않은 관객들이 상상했을 것이다. 통기타를 치며 나지막이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를 부를 모습을, 후렴구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떼창’으로 거장을 즐겁게 할 자신을.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밥 딜런은 이날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부르지 않았다. 국내에서 저항가의 상징처럼 불리던 ‘블로윙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번안해 소개된 ‘돈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라잇(Don’t Think Twice It’s Alright)’을 부를 때도 ‘떼창’은 없었다.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노래는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편곡됐고 허스키한 밥 딜런의 목소리와 흘려 부르는 창법이 다소 난해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밥 딜런/사진제공=소니뮤직

밥 딜런의 과거 공연 모습. /사진제공=소니뮤직

낭만의 굴레를 벗어낸 밥 딜런은 ‘아저씨’처럼 터프했다.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노래는 명쾌했다. 포크 가수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날 공연은 블루스와 로큰롤, 컨트리풍의 음악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고즈넉함 대신 명랑함이 넘실댔다. 밴드의 연주도 수준급이었다. 즉흥연주를 하는 것처럼 자유분방했다가도 잘 짜인 연극처럼 호흡이 척척 들어맞았다. ‘올 얼롱 더 와치 타워(All Along The Watch Towr)’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 ‘발라드 오브 어 씬 맨(Ballad Of A Thin Man)’ 등 19곡으로 공연을 채웠다.

관객들은 가수만큼이나 조용했다. 밥 딜런이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Make You Feel My Love)’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거나, 피아노 앞에서 걸어 나와 스탠딩 마이크를 휘저으며 부른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를 부를 때에나 종종 환호가 터져 나왔다. 파격(?)적인 가창에 당황한 건지, 음악에 심취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따금씩 몸을 흔들거리는 외국인 관객이 몇몇 목격됐을 뿐이다.

관객들은 공연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속내를 드러냈다. 밥 딜런이 앙코르 무대까지 모두 마치고 밴드와 함께 고개를 숙이자 7000여 명의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그것은 비단 이번 공연에 대한 감상만을 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정작 자신은 저항가수가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1960년대 발표된 그의 포크 음악들은 저항이 필요하던 때에 정서적인 버팀목이 돼줬다. 사랑, 평화, 삶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정신을 고양시켜주기도 했다.

밥 딜런은 1941년생으로 올해 만 77세다. 이번 공연이 8년 만의 내한임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그를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 관객들의 기립에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는 듯했다. 긴 역사를 가진 가수이자 인간에게 보내는 격려이자 응원, 존경의 표시였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