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올 더 머니’, 무자비한 돈의 속성을 파헤치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올 더 머니' 포스터/사진제공=판씨네마

영화 ‘올 더 머니’ 포스터/사진제공=판씨네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 주변을 돌아가는 고속도로들은 출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다. ‘라라랜드2016’에서 도로로 뛰어나온 운전자들이 함께 춤을 추던 첫 장면을 기억하면 체증이 얼마나 심한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 중 405번 도로를 타고 가면 언덕 위에 위용을 뽐내며 웅장하게 서 있는 폴 게티 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센터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LA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에는 태평양이 넓게 출렁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미술관 관람료도 공짜, 언덕 위로 올라가는 모노레일도 공짜, 거기다 반 고흐의 ‘붓꽃’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미국의 석유부호 J. 폴 게티에게 감사한 맘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세계 최고 부자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배포가 크기는 힘든데 말이다. 20년 전쯤 미국 방문길에 느꼈던 감정이다. 그리고 최근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라는 영화를 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올 더 머니’는 게티 가문의 숨겨진 이야기다.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존은 아버지의 눈에 영 마뜩치 않았다. 며느리 게일(미셸 윌리엄스)이나 폴 게티 3세(찰리 플러머)도 시원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돈이 없으니 부자 아버지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해 나가려는 한심한 가족에 불과했다. 1966년까지 평범한 부자였던 게티가 중동에 유전을 개발해 부를 쌓았고 그 부를 이용해 값 나가는 미술품이나 부장품들을 구입해 부를 배가시키는 능력을 과시한 데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아들이 폐인이 되든, 며느리가 손자를 위해 재산을 나누어달라고 하든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실패한 인생일 뿐이다.

수전노 게티의 돈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 몇몇 있다. 며느리가 이혼하겠다며 혹시 아들을 시아버지에게 뺏길까 두려워 재산분배 대신 양육권을 달라고 하자 게티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자를 내어준다. 또한 손자를 처음 만나던 날, 몇만 달러는 나갈 것이라며 선물로 주었던 그리스 토우도 정작 팔려고 내놓으니 시장통에서 몇 달러면 살 수 있는 싸구려였다. 하나밖에 없는 핏줄에게 준 선물인데 말이다. 그리고 손자를 납치해 1700만 달러의 석방금을 요구하는 인질범들과 협상을 벌이는 데도 게티는 기막힌 소리들을 해댄다.

손자를 위해 석방금을 내 달라는 며느리의 요청에 게티는 재산분배 대신 아들을 택했으니 자기는 석방금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요즘 주가가 불리해 재정적으로 어려우니 돈을 주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한다. 회사가 어려워 석방금을 지불할 수 없다니? 그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순수익만 해도 1700만 달러의 몇 배가 되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6개월이나 협상을 지연시킨 결과 석방금을 100만 달러까지 깎았다. 애가 탄 인질범들은 그나마 돈도 못 받고 모두 체포된다. 이탈리아에 있는 인질범들에게 돈을 보내면서 게티가 한 말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해외로 돈을 보낼 때 세금 혜택을 받아야 하니 100만 달러를 넘으면 절대 안 된다.” 게티의 충성스런 집사이자 협상 전문가인 플레쳐(마크 윌버그)마저 나가떨어지게 만든 한 마디였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재벌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게티에 비하면 그들은 오히려 인간미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편법으로 자식들에게 부를 물려주기 위해 내부거래를 하고, 땅콩공주가 막 출발하려는 비행기를 후진시켜 비난을 받자 모든 게 자식을 잘못 키운 자기 죄라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20살 먹은 망나니 아들이 무교동 룸살롱을 초토화시키자 대신 복수하겠다며 검은 장갑을 끼고 직접 나서기까지 한다. 넘쳐나는 자식사랑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게티는 아마 물러터진 우리나라 재벌들을 비웃으며 말할 것이다. “자식이고 손자고, 요즘 회사 사정이 안 좋으니 석방금을 대폭 깎아야 하겠소.” 이 영화는 1973년 실제로 있었던 게티 3세 납치사건을 소재로 만들었다.

신약성서에 보면 엄청난 곡식을 수확하는 바람에 창고를 크게 지어놓았다가 창고가 완성되던 날 밤에 숨을 거둔 불쌍한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부자를 향한 예수의 말씀은 차갑기 그지없다. 게티는 저택 지하에 전시실을 마련해놓고 혼자만 거장들의 작품을 즐겼다. 숨을 거두던 날, 그의 품에는 라파엘로의 성모자상이 놓여있었다. 결국 게티의 전 재산은 손자에게 돌아갔고, 게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단을 설립해 폴 게티 센터를 지어 무료로 전 세계에 개방했다.

게티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플러머에게서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그 멋있던 폰 트랩 대령의 잔상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 보다는 재산을 무한정 늘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우며 돈을 미끼로 사람들을 멋대로 부리고 모욕 주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독선적인 노인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올해 90세에 이른 멋진 배우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우리나라 재벌들이 게티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재벌가가 한참 시끄러운 요즘 같은 때에 볼만한 영화다.

박태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