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마녀’, 선한 의지로 억눌렀던 악함이 깨어나다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마녀' 포스터/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영화사 금월

영화 ‘마녀’ 포스터/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영화사 금월

피범벅을 한 소녀가 어두운 숲을 달리고 또 달려 도망친다. 뒤를 쫓던 무리들은 결국 소녀를 놓치고 만다. 풀숲에 쓰러진 소녀는 중년의 남자에게 발견되고 기억을 잃은 채 그들 부부의 딸로 자란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10년 후, 소녀는 자윤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단짝친구도 생겼다. 과거의 흔적은 등에 난 작은 흉터뿐이지만 이따금씩 찾아오는 알 수 없는 고통은 그를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윤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액의 상금이 걸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자윤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인물들은 TV에 나온 자윤을 알아보고 하나둘씩 그의 앞에 나타난다.

‘마녀’는 박훈정 감독의 첫 여성 느와르물이다. ‘액션=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깬다. 자윤 역으로 주연 자리를 꿰찬 김다미의 연기는 ‘1500대 1’이라는 오디션 경쟁률이 말해 주듯 의심할 여지 없다. 쌍꺼풀 없는 눈과 하얀 피부, 동그란 얼굴은 한 없이 맑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자윤은 아픈 엄마를 살뜰히 챙기고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목장 일을 도맡아 하는 착한 딸이다. 영화는 전반부에 이러한 설명을 친절하게 늘어놓는다. 설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자윤이 숨겨져 있던 본성을 순식간에 폭발시키며 늘어진 전개를 단숨에 끌어당긴다. 그의 한 방에 건달들은 피칠갑을 한다. 총은 쐈다 하면 백발백중이다.

각성한 자윤은 전후 사정없이 잔인해진다. 자윤의 잔혹함은 공간적 대비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평범한 자윤의 집은 어느 곳보다 아늑하다. 소박한 식탁과 포근한 소파, TV 앞에 모여 앉은 가족들의 모습에서 행복이 느껴진다. 반면 변해버린 자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구소다. 푸른 빛이 어스름하게 깔린 연구소는 온통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좁고 답답하다.

후반부 액션 신은 거의 연구소에서 펼쳐진다. 박 감독은 “액션은 서사를 위한 도구”라고 말했지만 액션을 위해 스토리를 만든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지우긴 어렵다. 그러나 액션만큼은 속이 시원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세련됐다. 한 번 시작된 액션은 빠른 속도감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연약한 산골소녀의 엄청난 파괴력은 극중 남성 캐릭터인 귀공자(최우식 분)와 미스터 최(박희순 분)와도 비교 불가하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닥터 백(조민수 분) 역시 두 사람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 박희순은 ‘마녀’를 “여성 캐릭터의 향연인 영화”라고 표현했다. 긴장감의 연속인 내내 유일하게 숨통을 트이게 하는 캐릭터 역시 여성이다. 자윤의 단짝친구로 나오는 명희(고민시 분)는 이 영화의 진정한 씬 스틸러다. 헤어롤로 앞머리를 말고 구수한 말투와 찰진 욕으로 관객들을 웃게 만든다. 귀공자와 함께 다니는 무리 중 여성 멤버인 정다은은 후반부 액션 신에서 말없이 강렬한 액션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박 감독은 이 영화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인간이 선하게 태어나서 악하게 변해 가는지, 악하게 태어나서 선하게 변해 가는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어린 자윤에게 실험을 가하고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고찰을 반영한다.  그러나 해답은 주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에 시리즈물을 암시하는데 박 감독의 해답은 후속편에서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마녀’는 오는 27일 개봉한다. 15세 관람가.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