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나와 봄날의 약속’ 낯설고 불친절한 외계人의 선물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 포스터/ 사진제공=(주)마일스톤펌퍼니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 포스터/ 사진제공=(주)마일스톤펌퍼니

미확인 비행물체(UFO)에서 괴생명체(외계인)들이 내려와 무차별로 사람들을 공격한다. 거대한 소행성이 빠른 속도로 지구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대지진이 일어나거나 위력적인 허리케인이 불어와 건물과 차를 집어 삼킨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어디선가 나타난 영웅들이 위험에 빠진 지구인들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흔히 ‘지구종말’이라고 하면 이런 것들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은 지구종말과 관련한 4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하지만 UFO도 괴생명체도, 지진도 허리케인도 없다.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구 종말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상상력으로 시작해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를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나간다.

영화에는 외계인들이 등장한다. 공상과학 영화나 만화에서 봤던 상상 속의 형체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얼굴과 옷차림을 하고 있다. 지구를 침공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종말’을 예상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인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구를 방문했다.

외계인들은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각각 사연을 가진 인간들 앞에 나타나 마치 알고 지냈던 것처럼, 가까이 있었던 존재처럼 굴지만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의심을 품게 한다. 극 중 인간들이 그들을 낯설어하는 동안 관객들도 그 낯선 느낌 탓에 이야기 전개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나와 봄날의 약속' 스틸컷/ 사짅[공=(주)마일스톤컴퍼니

10년 째 아이디어를 내지 못해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영화감독(강하늘)이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홀로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 그는 지구 멸망을 꿈꾼다. 그와 관련한 시나리오를 10년 째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체모를 네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야쿠르트 판매원(이혜영)이 감독에게 접근한다. 감독은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한편 생일 날 쓰레기가 가득 담긴 박스를 선물 받은 열 여섯 왕따 소녀(김소희) 앞에 정체를 알수 없는 한 남자(김성균)가 나타났다. 자신을 ‘앞집 아저씨’라고 소개한 남자는 소녀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한다. 소녀는 그 남자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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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봄날의 약속' 스틸컷/ 사진제공=(주)마일스톤컴퍼니

‘나와 봄날의 약속’ 스틸컷/ 사진제공=(주)마일스톤컴퍼니

말 안 듣는 아들과 무관심한 남편 옆에서 고되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주부(장영남)는 담배 한 개비가 유일한 낙이다. 어디선가 나타나 살갑게 대하는 대학 후배(이주영)를 따라 비닐하우스로 들어선 주부는 일생일대의 충격적인 일탈을 경험한다.

50대가 되어서도 엄마에게 잡혀사는 ‘모태솔로’ 대학교수(전의부) 앞에는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여대생(송예은)이 나타난다.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은 교수와 여자의 만남은 상상을 뒤엎는 결과로 이어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삶 자체에 대해 비관적이고 매사에 무기력하다. 어쩌면 ‘지구종말’보다 사는 게 더 무섭고, 세상이 망하길 바랐을 지도 모른다. 정체불명의 외계인들이 준 선물은 과연 죽기 전 마지막 생일을 맞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는 백승빈 감독은 ‘끝’을 의미하는 ‘멸망’에 ‘시작’을 의미하는 ‘생일’을 대비시켰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 외계인들로 부터 받은 생일 선물로 ‘봄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다 같이 잘, 아름답게 망하자”는 영화 속 대사와 제목에 붙은 ‘봄날’이라는 단어만으로 이 이야기의 끝을 속단할 수는 없다. 감독은 시종 불친절하게 영화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짙은 여운이 남는다.

김성균은 “대본이 너무 이상해서 감독님을 만나고 싶었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이주영도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영화인 것 같다.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배우들조차 ‘호기심’으로 가득 차게 했던 영화가 독특하고 이상한 건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낯선 영화’다. 잘 갖춰진 여느 상업영화들과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감독의 독특한 발상과 연출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무거울 법한 이야기 곳곳에 재기발랄한 장면들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몸에 딱 맞는 맞춤 정장이 아니라 헐렁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것처럼 자유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훨훨 날아갈 듯 편하지만은 않다.

오는 28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