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호│정글을 달리는 초식동물

강동호│정글을 달리는 초식동물
인간 마네킹. 빤한 수식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새하얀 브이넥 셔츠에 다크블루 수트로 갈아입은 강동호가 커튼을 젖히고 등장하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는 그것밖에 없었다. 187cm의 훤칠한 키, 지나치게 작은 얼굴, 바람직하게 넓은 어깨, 팔다리는 물론 손가락까지 가늘고 길다. 그러나 강동호가 남부러울 것 없는 외적인 이미지를 배반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포즈 취할 게 없는데 뭐하지? 에헤헤”라며 잠시 고민하던 강동호는 수트 차림으로 코믹 댄스를 추더니 이내 쑥스럽게 웃으며 주저앉는다. 뮤지컬 에서도 귀여운 율동을 선보일 때 유난히 수줍어하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강동호가 덧붙이는 한 마디.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런 척하는 거에요. 너무 쑥스럽지 않게 하면 좀 미워 보이잖아요. (웃음)”

날카로운 외모 뒤 귀여움의 반전
강동호│정글을 달리는 초식동물
살짝만 웃어 보여도 금세 가늘어지는 순한 눈매를 마주한 순간, KBS 에서 보여준 규현의 얄미운 미소는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다.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털어놓은 무책임한 고백부터 파혼, 끈질긴 구애 그리고 유치한 훼방꾼 노릇까지하던 남자. 첫사랑도 민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규현은 이숙을 좋아하는 재용(이희준)뿐만 아니라 ‘천방커플’을 응원하는 시청자들에게도 질투를 넘어 분노를 안겨준 장본인이지만, 실제의 강동호는 얄밉거나 답답하기는커녕 2년 전 인터뷰를 했던 기자의 이름까지 기억하며 먼저 악수를 청할 줄 아는 싹싹한 배우다. 얼굴을 보자마자 이름 석자를 외친 스스로가 대견했는지 한참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많은 청년이기도 하다.

“자기 생각에 미친놈, 이런 게 필요해요”
강동호│정글을 달리는 초식동물강동호│정글을 달리는 초식동물
“저는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끝없이 올라가는 스타일이에요. 서로 으?으?하는 분위기에서 제 본래 모습이 많이 나오거든요.” 채찍보다 당근을 좋아하는, 칭찬을 양식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는 순한 양. 그래서 지난해 MBC 을 통해 뮤지컬에서 드라마로 영역을 넓힌 강동호가 넘어야 할 산은 연기가 아닌 환경이었다. 연습을 통해 충분히 가까워진 후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에 비해 몇 번의 리딩을 거쳐 곧바로 연기해야 하는 드라마 촬영장은 “자기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혹독한” 공간이었고, 그곳에는 “무대에 같이 오른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든 줄 몰랐”던 정글에서 강동호는 서서히 독해지기로 마음먹는다. NG를 백 번 가까이 내서 ‘백번대범’이라는 별명을 얻은 시기를 거쳐 “처음으로 엔딩 신에 등장”하는 영광을 누렸고, “자기 입으로 자신을 높이는 건 간지럽다”던 내성적인 성향 대신 “자기 생각에 미친놈, 이런 게 필요하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장착했다.

물론 강동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여전히 “로딩” 중이다. MBC ‘남심여심’에서 검을 휘두르다가 긴 팔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든가 KBS 에서 김 실장의 어설픈 연애스킬을 매력 포인트로 승화시킨 전적은 있지만, 완벽해 보이는 수트의 안주머니에 살짝 숨겨놓은 “자유롭게 풀어진 허당” 같은 본모습은 아직 ‘스탠바이’ 상태다. “쎈 버라이어티보다는 MBC 같은 착한 예능에 나가고 싶어요. SBS ‘런닝맨’은 제가 좀 묻힐 것 같아요. 저도 허당 캐릭터인데 거긴 이미 (이)광수 씨가 계시잖아요. 하하.” 그러나 앞날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혹시 아나. ‘런닝맨’에서 이광수와 함께 ‘덤앤더머’ 형제로 도망 다니는 날이 올지.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