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김희애, “최대한 나를 누르면서, 최대한 인물과는 가깝게”

[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YG 엔터테인먼트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YG 엔터테인먼트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 무려 23번의 재판이 열린다. 10명의 원고단과 13명의 무료 변호인은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다. 우리는 이 사건을 ‘관부 재판’이라 부른다. 영화 ‘허스토리’는 이 묵직한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솔직히 부끄럽지만 소재에 대한 사명감을 갖거나 오랫동안 고민을 하거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약자 중의 약자인 할머님들이 그 어려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당당하게 말하고, 이 문정숙이란 캐릭터 또한 순수하게 할머니를 돕고 하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와 닿아서 했어요. 하다 보니 이렇게 가까운 우리의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 깊은 반성에 더 열심히 했고요. 거꾸로 된 것 같죠.”

김희애는 관부 재판을 이끌어가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 역을 맡았다. 부산의 여행사 사장 문정숙은 우연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 전화를 개설했다가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앞장서서 이끌어간다.

“문정숙 단장의 실제 모델인 김문숙 사장님은 60대에 일을 하시다가 우연한 기회에 할머님들 옆에 서시게 됐대요. 그래서 더 몰입하게 됐습니다. 책에서나 보일 법한 그런 의인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분이셨구나 싶어서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큰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여시는 것 같아요.”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YG 엔터테인먼트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YG 엔터테인먼트

‘허스토리’는 위안부이고 정신대 소녀였던 오래 전 과거를 화면에 단 한 컷도 담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곪고 문드러진 생지옥과도 같은 그녀들의 현실에 집중한다. 아직도 진행형인 절규에 찬 목소리를 누구 한 사람 제대로 들어주려고 하지 않기에 보는 내내 먹먹해진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최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가 그 역할을 맡았다.

“우리 할머니들이 재판정 앞에서 그 연약한 몸으로 쩌렁쩌렁하게 막 뱉어내는 모습에서 당당하게 자기 힘으로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어요. 몇 십 년을 연기하신 우리 선배님들, 가수로 치면 리사이틀 공연처럼 재판정에서 한 분 한 분이 온 기운이 쭉 빠지신 것처럼 연기하셨죠. 살짝 떨려 하시고 상기된 모습이 신선하고 감동적이었어요. 내가 선배님들 나이가 되어도 저렇게 신인 같은 마음으로 떨림을 갖고 카메라 앞에 서야겠다는 자극이 됐습니다. 그런 마인드로 순수하게 해야 또 연기가 순수하게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다져진 김희애가 ‘허스토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글이글한 눈빛의 걸크러쉬 매력부터 일본어에 부산 사투리까지 실존 인물과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갑절의 노력이 필요한 캐릭터인 까닭이다.

“맡을 때까지 고민이 없었어요. 뜻 모를,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덥석 받았거든요. 연기를 시작하고 뒤늦게 후폭풍이 밀려와서 정말 어떻게 인지를 못하고 그랬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새로운 도전이라는 의미에서는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했는데 (캐릭터를)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작년에 촬영했는데도 지금까지 긴 일본어 대사를 다 외운다니까요. 어쨌든 장면에 맞춰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요. 최대한 저를 누르면서, 최대한 인물과 가깝게. 제가 인물에 섞여 있기를 바라면서, 그냥 문정숙 그 분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YG 엔터테인먼트

배우 김희애. 사진제공=YG 엔터테인먼트

김희애는 영화 현장에서 남자배우들에 비해 다양하지 못한 여자배우들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사실 남자배우들은 할 역할이 많죠. 만약에 남자 배우들이 할 역할이 남아서 ‘이거 누가 하지? 아, 애매하다’ 그러면 제가 머리카락 싹 자르고 한번(웃음)?···.그런 상상을 재미삼아 해본 적이 있었어요. 이번에 자유로운 여장부 스타일을 맡아서 좋았습니다.”

김희애는 참 총명한 배우다. 인터뷰 내내 말의 어디에 힘이 들어가야 하고, 빠져야 하는지 강약 조절에도 유연했다. 영화는 현장이 좋아서, 드라마는 오래 했기 때문에 편안해서 좋다는 그녀를 감독과 관객이 선택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지 싶다. 관객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될 ‘허스토리’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작품 끝나고 울어본 적이 처음입니다. 나도 모르게 뭐가 서러웠는지 막 쏟아졌어요. 그 안에 시원함도 있었고 개운함도 있었고.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을 했다는 자체가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으니까요. 배우로서나 인간으로서나 특별한 경험을 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