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라디오] 피아, 순정의 끝판왕

유치합니다. 아, 음악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재 삼십대 중후반인 이들이 코 묻은 돈을 수없이 헌납했던 게임 <마계촌>이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발매됐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든 생각입니다. 아무리 추억의 명작이라지만 < WOW >와 <디아블로>, <리니지>의 세계관을 경험한 이들에게 공주를 구하는 기사의 모험담이라니요. 하지만 유치하면 어떤가요. 어떤 수많은 난관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달려들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빠른 계산이 아니라 유치해 보이는 기사도에 있는 거 아닌가요. 공식 OST인 피아의 ‘From This Black Day’의 세련된 사운드와 <마계촌>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번 ‘From This Black Day’는 그들 스스로 조화와 균형의 결과물이라 말하던 5집 <펜타그램>보다 더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보컬 요한은 도입부의 낮게 깔리는 목소리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하고, 좀 더 얼터너티브록에 가까워진 기타와 감각적인 신시사이저는 헤비니스와 멜로디 사이에서 온전한 균형을 이룹니다. 과거 그들의 작품이 한국 록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느껴졌다면 ‘From This Black Day’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유연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세련된 흐름 안에서도 곡에 방점을 찍는 건 ‘I`ll Fly Away’라는 후렴부의 외침입니다. 2012년의 CG로 재탄생한 <마계촌>에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단순하지만 강한 소망인 것처럼, 피아의 세련된 사운드를 완성하는 건 불행한 이 순간으로부터 날아올라 널 찾겠다는 절박한 외침입니다. 이건 여전히 유치한 걸까요. 하지만 어떤가요. 시간이 오래 흘러도 끝끝내 남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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