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만기’ 종영] 엇갈린 평가, 시청률은 웃었다

[텐아시아=이은호 기자]
/ 사진=KBS2 '우리가 만난 기적' 방송화면

/ 사진=KBS2 ‘우리가 만난 기적’ 방송화면

용두사미다. 방영 내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던 KBS2 월화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이 후반부로 갈수록 무리한 전개로 시청자의 지지를 잃었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천상계 메신저 아토(카이)의 실수로 인해 중국집 사장 송현철B(고창석)의 영혼이 은행 지점장 송현철A(김명민)의 몸에 깃들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유능하지만 냉혈한이던 송현철A의 삶은 인간미 넘치는 송현철B의 영혼 덕분에 바뀌어나갔다.

송현철의 삶은 누구의 것인가를 두고 긴 시간 갈등하던 송현철A와 송현철B의 가족. 진난 29일 방송된 최종회에서 양 쪽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조연화(라미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아토가 시간을 되돌린 덕분이다. 미래의 기억을 갖고 과거로 돌아간 송현철A는 송현철B의 대출 조작 사건을 미리 막았다. 아내 선혜진(김현주)과 자녀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날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가족애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송현철B 역시 중국집 잔금을 무사히 치르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진짜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만난 기적’이 던진 질문은 흥미롭다. 육신과 영혼 가운데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송현철B의 영혼이 송현철A의 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인물들이 확신하거나 적어도 의심하게 되면서, 송현철(송현철 B의 영혼을 가진 송현철A)이 송현철A와 B 중 누구의 인생을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송현철B의 영혼은 누가 봐도 이상적이다. 따뜻하고 상냥하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송현철B의 영혼이 송현철A의 주변을 온화하게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송현철B의 삶을 지지하는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이 가진 문제는 훨씬 복잡하게 드러난다. 송현철B의 영혼이 그가 육체를 빌리고 있는 송현철A의 인생을 바꿔놓는 게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인가. ‘우리가 만난 기적’은 안방극장에 발칙한 질문을 던졌다.

/ 사진='우리가 만난 기적' 방송화면

/ 사진=’우리가 만난 기적’ 방송화면

◆ 희석된 기획의도, 뒷심이 부족하다

문제는 작품의 기획의도가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데 있다. ‘나’에 대한 고찰이 힘을 잃고 송현철을 둘러싼 조연화와 선혜진의 삼각관계가 작품의 주된 내용이 됐다. 극 초반만 하더라도 선혜진에게 송현철의 감정은 측은지심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송현철A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선혜진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 자리로 돌아가겠다”며 선혜진에게 이혼을 요구하고도 자신을 잡는 선혜진에게 흔들렸다. 결국 조연화가 “내가 당신을 버리는 것”이라며 송현철을 놓아줬다.

송현철의 정체성에 대해 그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송현철과 선혜진의 러브라인은 ‘불륜’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조연화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벌어지는 일들은 더욱 뜨악하게 만든다. 그의 앞에서 오열하던 송현철은 다시 선혜진에게 돌아가 사랑을 속삭인다. 자신이 송현철A인지 송현철B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면서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했다. 조연화의 존재는 마치 송현철과 선혜진의 사랑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방해물처럼 쓰인다. 보편적인 정서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휴먼 드라마의 성격을 잃고 어설픈 멜로로 급선회한 꼴이다.

‘우리가 만난 기적’을 집필한 백미경 작가는 그동안 JTBC ‘힘쎈여자 도봉순’ ‘품위 있는 그녀들’로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우리가 만난 기적’ 또한 ‘육체 임대’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호기심을 끌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안겼다.

송현철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 사진='우리가 만난 기적' 방송화면

송현철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 사진=’우리가 만난 기적’ 방송화면

◆ 명불허전 김명민

송현철A와 B를 오가며 1인 2역을 소화한 배우 김명민의 연기력은 빛났다. 냉소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송현철A와 사람 냄새나는 송현철B의 모습을 대조시키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연기로 안방극장을 울리고 웃겼다. 마지막 회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 송현철A의 모습을 송현철과는 또 다른 온도로 그려냈다.

라미란과 김현주의 활약도 눈여겨볼만하다. 가난한 여성을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그리던 기존 드라마들과 다르게 라미란은 조연화를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인물로 표현했다. 조연화에게 그만의 기품을 준 것이다. 선혜진은 정적인 인물이지만 김현주는 그가 느끼는 혼란을 또렷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비판의 여지가 많은 송현철·선혜진 커플이 동정표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가 만난 기적’은 자체 최고 시청률인 13.1%로 종영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