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전지현: “배우로서도 요즘은 시작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감독님(최동훈)께서 그러셨어요. 여배우는 서른이 넘고 봐야지 라고. 제가 서른둘인가요? 사실 나이로 크게 달라진 것은 모르겠어요. 20대와 30대의 느낌이 다르다고 하는데 저는 어제와 오늘이 같아요. 다른 것은 확실히 점점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좀 더 많은 경험을 한다는 것, 느끼는 표현들이 성숙해진다는 것 정도에요. 또 새로운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들을 20대에 가졌기에 이제는 연기를 하는 것에 있어 새롭고 또 다른 시작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전지현, 와의 인터뷰에서

전지현
오종록: 전지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연출자. 자신이 연출한 SBS , 등에 출연한 전지현에게 본명인 왕지현의 성 왕(王)에 “삿갓을 쓴 폼”이 멋있다며 ‘왕’을 ‘전’(全)으로 바꿔 전지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당시 오종록은 큰 키에 “선이 나타나지 않는 도화지 같은 아기 얼굴”을 함께 가진 전지현에 대한 인상이 워낙 강해서 이름까지 지어주게 됐다고.

정훈탁: 전지현을 데뷔시킨 제작자. 정훈탁은 16세의 전지현을 보고 영화 의 마틸다처럼 “어린데도 성숙한 여인”과 “소년의 분위기”까지 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실제로 정훈탁은 전지현에게 해맑은 소녀의 얼굴에 섹시함까지 표현할 수 있는 여성의 느낌을 동시에 더하는데 주력했다. 에서 전지현은 이병헌에게 아직 소녀 같은 여동생이면서 차태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성이었고, 그 유명한 ‘테크노댄스’를 추는 CF에서는 섹시함을 극대화 시켰다. 대중은 아직 아이 같은 느낌이 남아있는 10대의 얼굴로 섹시함을 부각시키는 전지현에게 거부감 대신 호기심을 가졌고, 그는 순식간에 CF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가 됐다. 21세기의 걸 그룹들이 등장하기 전, 걸 그룹이 CF에서 했던 모든 것을 혼자서 했던 세기말의 아이콘.

차태현: 에 이어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에서 전지현이 발랄함, 애교, 청순함,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슬픈 사연까지 모두 가진 비현실적인 여자친구라면, 차태현은 평범한 남자친구의 시선에서 전지현이 현실에 발붙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구토를 하고, 남자친구를 과격하게 때려도 예뻐 보이는 여성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전지현이 비현실적인 존재감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는 CF 속에나 있을 것 같던 환상 속의 여신을 여자친구처럼 느끼게 했고, 원래의 매력에 친근함까지 갖춘 그는 문자 그대로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전지현의, 전지현을 위한 CF가 쉴 새 없이 들어왔고, 한 때 한국 영화의 시나리오 중 80%가 전지현에게 갔다는 말이 나왔다.

박신양: 전지현과 영화 , 에 함께 출연한 배우. 특히 은 전지현이 이후 인간의 심리적 공포를 그린 작품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전지현은 “이제부터 더 잘해야 되는데 사람들이 이미 다 와버린 것처럼 대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잘못하면 내 자신에게 치일 것 같다는 걱정”을 했다. 은 “항상 같은 것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던 전지현에게 넘어야할 고비였던 셈. 그러나 시나리오를 읽은 뒤 “너무 낯설고 부담”스러웠던 시나리오는 촬영 당시에도 어렵게 다가왔고, “나를 벗어난 아주 다른 사람”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또한 그동안 몸을 사용하는 연기에는 익숙하되 아직 정교한 심리묘사에는 능하지 못했던 전지현의 연기 역시 한계가 있었다. 배우로서 도전적인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아쉬웠고, 그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재도전이냐, 스타의 입지를 다시 굳히느냐.

곽재용: 와 의 연출자. 는 전지현을 톱스타로 만들었지만, 는 위기가 됐다. 지나친 PPL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했고, 감정선을 놓친 편집은 영화의 내용조차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이후 전지현은 , 등 해외 합작 영화에 출연했고, 이 작품들은 흥행과 작품성 모두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연기변신을 시도한 , 역시 이 작품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공개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나름대로 꾸준한 활동을 하면서도 어떤 쪽으로든 일관된 방향을 갖지 못하면서 국내 공백기는 길어 보이는 애매한 상황에 놓인 셈. 그럴수록 전지현의 CF는 몸매 만들기처럼 몸 그 자체에 집중했다. 전지현만의 독특한 캐릭터는 사라지고 시각적 이미지만 부각되면서 대중에게 더 멀게 느껴지는 존재가 된 것. 그는 “매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진실 되게 반영하는 배우”가 되길 바랐고, “전지현 하나만을 보는 영화”를 찍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오히려 점점 더 자신의 산업적 영향력을 고려한 작품들에 출연했던 것이다. 데뷔 당시 장점이었던 철저한 매니지먼트가 20대 후반의 전지현에게는 위기로 다가왔다.

웨인 왕: 전지현이 출연한 영화 의 감독. 는 해외에서 제작한 작품이었지만 나 와 달리 전지현에게 일종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이 작품에서 메이크업을 지운 채 일상의 연기를 했고, 함께 출연한 리빙빙이 현지 스태프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며 스타가 현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할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전지현은 를 찍으며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만족할만한 연기를 했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자신감은 생겼다”고 말할 만큼 자신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었고, 데뷔 후 “스스로가 자신을 많이 닫아버리게 된 것”같다던 성격도 조금씩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만을 찍을 수는 없다. 반대로 처럼 평범한 옷을 입고 턱살이 접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에만 집중할 수도 없다. 너무 스타이기 때문에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지현은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최준혁: 전지현의 남편.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전지현을 “다툰 뒤에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남자. 다툰 다음 날 전지현을 일본에 데려가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하면서 프러포즈를 했다고. 그는 결혼 후 “어른 같은 느낌이 들면서 연기를 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 여유가 묻어나는 것 같다”고 했고, 영화 과 을 선택했다. 두 작품은 전지현을 앞에 내세우는 대신 출연진 중 한 명으로 다루고, 담배를 피우게 하는 등 그녀에게 새로운 모습을 요구한다. 과거만큼의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강한 스타성을 갖고 있는 지금, 전지현은 자신이 작품을 끌고 가는 대신 힘을 더하는 위치에 서면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서른이 넘으니 오히려 할 수 있는 연기폭이 넓어졌고, 결혼을 한 뒤 에서 김수현과 처음으로 키스신을 찍었다. 스타의 끝에 가본 전지현은 그렇게 배우의 출발선에 다시 섰다.

최동훈: 의 감독. 은 전지현을 재발견하기 보다는 재확인 시켜준다. 그는 CF에서 그러하듯 몸짓 하나하나가 강한 인상을 남기고, 에서처럼 남자 앞에서 청순함이나 애교 대신 능청맞은 화법으로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전지현은 에서 아주 새로운 연기를 하는 대신 자신이 잘 하던 연기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폭을 조금 넓혔고, 최동훈은 그런 전지현의 장점이 가장 잘 살아날 수 있는 배경을 제시했다. 시절의 그가 남자친구와의 로맨스 안에서 자신의 매력을 보여줬다면, 먼저 최동훈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 에서는 자신이 한 팀의 일원이 되어 일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덕분에 전지현의 몸이 가진 매력은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행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캐릭터는 보다 다양한 매력을 얻는다. 에서 전지현은 자신의 연기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의 연기를 지금과는 다른 위치와 배경에서 보여줬다. 그렇게 보는 그는 더 현실 속에 존재하면서, 여전히 기이할 만큼 소진되지 않은 어떤 매력을 가졌다. 그동안 전지현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장이나 색다른 배역이 아니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놀이판은 아니었을까. CF를 통해 소비됐던 전지현의 매력이 다시 작품의 일부로 활용됐다. 그리고, 전지현이 돌아왔다. 예전 매력 그대로, 조금 더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곳에서.

Who is next
전지현의 에 함께 출연한 송승헌과 영화 의 주연을 맡았던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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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기자 t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