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더 포스트’, 언론은 국민을 섬긴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영화 ‘더 포스트’의 포스터.

 

우리나라에서 마지막까지 식자인쇄 기법을 사용해 출판을 한 매체는 무용전문 잡지 ‘춤’이다. ‘춤’의 출판인이셨던 조동화 선생님은 인쇄를 현대식으로 전환하던 날, 몹시 우울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영화 ‘더 포스트’에서 그야말로 오랜만에 식자인쇄 장면을 만나보았다. 1970년대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결코 과거로 내버려 둘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같은 역사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간쯤 닉슨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맥나마라(부르스 그린우드)가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에게 닉슨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바비나 린든도 선량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그러나 닉슨은 개자식(son of bitch)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닉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당신과 당신의 신문사를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을 거요.” 닉슨은 케네디나 존슨 대통령과 근본부터 다른 사람으로, 복수와 편법의 화신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더 포스트’라는 영화가 노리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대통령의 품성이라곤 전혀 갖추지 못한 미국의 현 대통령을 닉슨에 빗대는 것이다. 따라서 ‘더 포스트’를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풍자물 범위에 넣어도 무방하겠다.

1971년, 워싱턴 포스트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지역 신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회사가 거느린 방송이나 잡지에 비해 수익도 못내는 형편이었다. 적자에 시달리자 이사회는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하기로 결정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은행과 협정을 맺는 과정이 필요했다. 협정에서 걸리는 문구는 단 하나, ‘상장한 후 일주일 동안 천재지변이나 치명적인 일이 생기는 경우 은행이 협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럴 일이 있을라고? 단지 1주일인데… 캐서린과 그녀의 충실한 조언자인 프리츠 이사 사이에 오간 대화였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훌륭한 암시였다.

‘더 포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는 베트남 전쟁이 미국에 불리하게 진행될 줄 알면서도 참전했고 어마어마한 물자와 꽃 같은 미국 젊은이들을 희생시켜가며 확전시켰다. 맥나마라는 10년 동안 정부에 있으면서 기밀문서들을 자료로 전쟁에 질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 연구를 했는데 그만 이 연구서가 외부로 유출되었다. 처음 특종을 잡은 뉴욕 타임즈는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폐간 위기에 몰린다. 사주와 편집장 에이브 로젠탈(마이클 스털버그)이 실형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이 때 대타로 나선 언론사가 바로 워싱턴 포스트다.

영화는 불과 열흘 정도에 생긴 일을 다루고 있지만 워싱턴 포스트에겐 사활이 걸린 기간이었다. 특히 최종 결정자 위치에 있었던 캐서린에게는 지극히 괴로운 시간이었다. 특종을 이어받아 회사와 정계의 친구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것인가, 아니면 특종을 포기해 어렵사리 상장한 회사를 살릴 것인가?

이쯤에서 우리가 주의해 볼 대목이 있다. 캐서린은 창업주의 딸이기는 했지만 원래 안방마님에 불과했고 남편 필이 회사를 이어받아 운영했다. 그러다가 필의 자살 사건이 터지자 얼떨결에 사주가 되었다. 그녀는 협정을 맺는 자리에 나가서도 은행 측의 예리한 질문에 한마디도 못한 채 프리츠가 대답을 하도록 만든다. 프리츠는 어쨌든 그 분야의 전문가였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남자들이 모두 뒤로 물러서더니 이제 사주인 그녀에게 최종결정을 내리라고 요청한다.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댄을 지지할까, 회사부터 챙겨야 한다는 이사들을 따를까?

‘더 포스트’는 언론의 목적과 생리를 잘 표현하는 영화다. 한 순간 한 순간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나게 만들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다. 여기에 더해 당시 남녀 구별이 뚜렷했던 시절에 용감하게 앞장서 나갔던 선구자 여성을 다루는 측면도 있다. 대법원 심리가 끝나자 법정 입구에 서서 뻐기는 자세로 한 말씀하는 뉴욕 타임즈의 사주와는 달리 캐서린은 ‘이미 할 말을 다 했다.’며 옆으로 빠져나간다. 그녀가 지나가자 많은 여성들이 길을 만들어주었다. 앞으로 바꿔나가야 할 미래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의미심장한 장면이었다.

“언론이 섬기는 것은 국민이지 국민의 통치자가 아닙니다.” 이름 하여 ‘펜타곤 페이퍼’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언론의 의무를 정의하는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권이 무서워, 혹은 정권에 빌붙어 이득을 보고자 하는 언론 자신에게 경고하는 말처럼 들렸다. 1972년, 워싱턴 포스트는 다시 한 번 능력을 발휘해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뜨렸고 결국 닉슨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망하고 만다. 언론이 잠자코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