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날개가 있다면 날아, ‘레이디 버드’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레이디 버드’ 포스터/사진제공=UPI코리아

영화 ‘레이디 버드’ 포스터/사진제공=UPI코리아

엄마는 정말 왜 그럴까? 그리고 딸은 정말 왜 그럴까? 내가 생각하기에 딸과 엄마는 남미의 밀림이나 남극의 심해 만큼이나 알 수 없고 복잡한 세계다. 거길 다녀온 사람은 있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고, 왔던 길이라도 돌아가면 다시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치열하다. 아무도 이 둘의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없을 거다. 언제나 내게 헤어지자고 행패를 부리는 애인, 언제나 나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베스트 프랜드, 사채 수준의 대출이자, 그야말로 지긋지긋하다.

엄마와 딸은 아무렇지 않게 벗은 몸을 보이고 침입하고 참견하면서도 서로를 대접하기는 남보다 못한 사이다. 매일 만나는 실용적 관계, 영원히 자신들의 인생에 원초적이고 깊은 인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상, 엄마와 딸이다.

나는 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영웅이나 아들들의 성장 드라마 이상으로 딸의 성장 드라마는 유쾌하고 섹시하고 사랑스럽다. ‘레이디 버드’는 딸의 이야기다. 영화는 내내 우리를 웃기고 울린다. 캘리포니아의 세크라멘토에 살고 있는 크리스틴은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서 동부의 대도시로 나가고 싶어 한다. 하고 싶은 말(대게는 욕이다)과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의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소개한다. 이름을 기명할 때는 꼭 따옴표를 달아준다.

크리스틴을 연기한 시얼샤 로넌은 낯익은데 이미 아역부터 일반적인 아이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다. 시얼샤 로넌은 청춘의 상징, 사랑스러움의 상징, 현명하고 지적인 상징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청춘의 아름다움과 성장해 나아가는 소녀를 구성해낸다. 레이디 버드의 사춘기 소녀 마음을 이해하고 나면 ‘아니 정말 엄마는 왜 그럴까?’ 하며 나의 엄마를 떠올리게 되고, 엄마의 얼굴을 보다 보면 ‘참, 나는 왜 그랬을까?’ 하고 내가 엄마에게 준, 수 없는 상처를 떠올리게 된다. 이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뻔뻔하게 실수를 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는 점,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레이디 버드’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고 이 마법은 관객을 자신들의 유년기로 데려간다. 마음은 어느새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 준비 시절로 달려간다. 이 난리 법석의 크리스틴의 ‘고딩기’는 우리의 유년기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만든다. 코미디의 힘이 아닌가 한다. ‘레이디 버드’ 특유의 유머는 사랑스럽고 힘이 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레이디 버드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모녀의 이야기는 신파에 기대기 쉽지만 영화는 이러한 클리셰를 캐릭터의 힘으로 극복한다.

나는 늘 딸을 응원한다. 딸은 종종 엄마를 미워하는 힘으로 세상에 맞선다. 딸은 종종 엄마의 존재를 통해 누군가에게나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엄마의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레이디 버드’가 떠나간 자리에 남아있을 마더 버드도 지긋지긋하게 뒤엉킨 남도 아니고 나도 아닌 딸과 엄마에서 천천히 고민해 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딸이 아닌 관객으로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한가지의 진실이 있다면 무엇일까 혹시 이런 말은 아닐까?

“너는 자유롭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너는 나를 떠나 날아가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어쨌든 영화에서 레이디 버드는 원하던 곳으로 날아간다. 약간 취하기는 했지만.

정지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