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윤 “지금이 자신감, 용기, 배짱, 패기가 최고다”

곱게 자란 부잣집 막내 혹은 외동아들, 영화 (이하 )의 주인공 민수의 첫인상이다. 부모님에게는 무뚝뚝하지만 말 잘 듣는 아들, 직장인 병원에서는 착실한 의사, 심지어 자신의 비밀을 알 만큼 알고 있는 게이 친구들에게조차 속을 다 내보이지 않는 이 얌전한 청년이 어느 날 부뚜막에 올라간다. 레즈비언 효진(류현경)과 위장 결혼을 하고, 매력적인 애인 석(송용진)과 연애를 시작하더니, 마침내 자신이 꿈도 꾸지 못했던 다른 삶에 뛰어든다. 그래서 은 웃기고도 슬픈, 슬프고도 웃긴 로맨틱 코미디인 동시에 민수의 성장에 대한 영화다. 훤칠한 체격에 강아지 같은 눈매가 사랑스런 민수는 MBC 에서 ‘로미오 오빠’로 소녀들의 눈도장을 받았던 김동윤이 연기했다. 고생이라곤 좀체 모를 것 같은 개구진 웃음이 민수와 딱 어울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어느덧 데뷔 12년차에 접어든 배우 김동윤을 만났다.

“ 언론시사회는 제 1공판에서 징역 선고받은 느낌, VIP 시사회는 집행유예 같았다. 개봉하면 반성문 쓰는 느낌일 것 같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던데, 아무래도 반응에 대한 부담이 클 것 같다. 혹시 인터넷 평점도 줬나.
김동윤: 사실…10점 줬다. 시사회 때 영화를 보니 내용도 이미 알고 있고 내가 직접 연기도 했는데 보고 있으니 막 빠져들어서 눈물이 나는 거다. 평점이 스무 개도 안 올라왔을 때 줬더니 8.4에서 8.6으로 점수가 확 올라갔다. (웃음)

“우리 영화가 동성애자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김동윤 “지금이 자신감, 용기, 배짱, 패기가 최고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들었다. 어떤 점에 끌렸나.
김동윤: 일단 주인공이라는 거, 하하. 그리고 퀴어 영화에 위장결혼이라는 소재가 관심이 갔다.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 편견 때문에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흥행을 떠나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성애라는 주제 자체에 반감을 갖는 배우들도 있는데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을 접하기 전에는 어땠나?
김동윤: 원래 나는 ‘호모포비아’라는 말도 몰랐다. 동성애에 거부감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편이라 싫다고 유난히 티를 내고 다닌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깊이 생각해본 것도 아니었다. 이성애자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 레즈비언보다는 게이를 더 싫어했고 막연한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김조광수 감독님과 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동성애자들은 절대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존재가 아닌데 왜 아무런 피해를 본 적 없는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반성했다. 그래서 우리 영화가 사람들의 그런 오해를 해소시킬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사실 영화 속 민수는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흔히 말하는 ‘딱 봐도 게이 같은’ 인물은 아닌데, 어떻게 이 캐릭터에 접근해갔나.
김동윤: 처음에 민수는 좀 더 여성스러운 캐릭터였다. 게이바 언니들이랑 얘기할 때도 “어우 됐어, 언니가 몰라서 그래!” 하는 식으로 새침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감독님, 연기자들, 스태프들이 의논한 결과 민수랑 석이는 그러지 말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실 민수는 부모님이나 직장 때문에 커밍아웃을 못하고 살지 않나. 어릴 때부터 비밀을 가지고 있으니까 외롭게 자랐고 자기만의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이기적인 면도 가지고 있는데, 혹시라도 아우팅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큰 거다. 항상 이성애자 남자처럼 얘기하려 애쓰고, 조심조심하고, 게이 바에서도 언니들과 약간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소심함을 부여했다. 민수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벽을 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애자와는 미묘하게 다른 민수의 캐릭터를 살리려고 했던 지점이 있었다면.
김동윤: 샤워하고 나오다가 효진이한테 들켰을 때나, 혼자 엄정화의 ‘포이즌’ 따라 부르면서 춤출 때였다. 평소보다 감정도 크게 드러내고 음성도 하이 톤으로 연기했다. 마침 ‘포이즌’의 “다신 이런 아픔을 남기지는 마 나 하나로만 된 거야 / 모두를 속여 가며 사랑한 넌 더 힘들었니” 이런 가사가 영화 내용과도 잘 맞는다. 민수가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 연습에 너무 가고 싶은데 가면 공연을 해야 하니까, 혹시 병원 사람들이나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지나가다 라도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못 가지 않나. 그런데도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집에서 혼자 노래하고 율동까지 하면서, 이 미련한 찌질이가 본심을 숨기지도 못하고 호박씨만 깐 건지. (웃음)

“커밍아웃 신은 마치고 나서 계속 아쉬웠다”
김동윤 “지금이 자신감, 용기, 배짱, 패기가 최고다” 민수는 석이와 만나면서 생기를 찾고, 길에서 손은 못 잡지만 문자를 주고받으며 나름대로 알콩달콩한 연애를 해 나가는데 연애에서 그렇게 반짝거리는 순간은 어떤 걸까.
김동윤: 나도 민수 같은 면이 있어서 다정한 표현을 잘 못하고, 길거리에서 손도 잘 안 잡고 다녔다. 바다에 가도 여자친구 들어 물에 메쳐버리는 장난이나 치고, 학교 다닐 때 유도를 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드는 방법을 알거든. (웃음) 반면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번지점프를 못 하는데 여자친구가 같이 뛰어주겠다고 해서 끌어안고 번지점프를 했던 기억도 있다.

상대역 송용진과는 어떻게 친해졌나.
김동윤: 둘 다 축구, 이종격투기 같은 운동을 좋아해서 스포츠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용진이 형도 축구를 오래 전부터 하셨고 지금 복싱도 하시는데, 나도 웬만한 운동은 다 좋아해서 화요일엔 이문세 선배님이 하시는 배드민턴 팀, 주말이랑 목요일은 홍서범 선배님이 하시는 ‘공놀이야’라는 야구팀에 나가고 축구팀도 두 군데를 간다. 요즘은 드라마랑 홍보 때문에 못 나가지만 전에 스케줄이 없을 때는 좀 다쳤을 때 빼고 다 나갔다. 몸 쓰는 것도 좋아하고 체력에도 자신이 있어서 언젠가 리얼 액션물을 해보고 싶다.

답답할 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감춰오던 민수가 사람들 앞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신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분노와 슬픔 등 복잡한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기도 한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땠나.
김동윤: 커밍아웃 신은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마치고 나서는 계속 아쉬웠다. 분명 머릿속에 ‘이런 느낌’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지금 하고 있는 건 일반인 연기자 김동윤의 연기고, 게이가 커밍아웃하는 감정은 좀 다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표현의 한계가 느껴져서 어려웠다. 아무래도 내가 촬영 전 더 많은 시간을 게이로 살아보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엔딩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뮤지컬 공연을 했는데, 얼굴에 비해 체격이 큰 편이라 의상 문제로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김동윤: 춤과 노래를 한다거나, 드레스를 입는 것 자체는 별로 걱정이 안 됐다. 그런데 내 덩치에 맞는 드레스를 찾는 게 제일 어려웠다. 셔츠를 105 정도 입고 가슴둘레도 큰 편이고 발 사이즈도 280이라 제작팀이 엄청 고생했다. 다행히 좋으신 분들이 하이힐을 협찬해 주셨는데, 신어 보니까 리허설 두 번 만에 종아리 근육이 올라와서 ‘이 불편한 걸 여자들은 어떻게 신나’ 싶었다. (웃음)

남자 배우의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쓰는 김조광수 감독이 다이어트와 화이트닝을 권유했다고 하던데.
김동윤: 내가 7, 8kg 정도 뺐는데 용진이 형은 11kg을 뺐다. 지독한 사람이다! (웃음) 닭 가슴살에 양상추만 먹어야 했는데 당시 KBS 촬영 중이라 옆에서 순대국, 뼈 해장국 먹고 있으면 옆에서 풀 뜯어 먹으며 쳐다보기만 했다. 다이어트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도 많이 빠졌다. (웃음) 게다가 충남 예산에서 촬영을 하는데 바로 앞에 저수지가 있고 뒤는 산이라 해가 엄청나게 쨍쨍했다. 아무리 센 선크림을 세 번씩 바르고 잠깐 쉬는 타임마다 우산 받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냥 새까맣게 타 버렸다.

극 중에서 석이의 옛 애인인 유부남으로 친형인 연기자 김혁이 출연한 게 재미있었다.
김동윤: 감독님께서 혹시 주변에 아는 연기자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셔서 형을 추천했다. 형도 시나리오를 보고 좋다며 “키스신만 없으면 하겠다”고 했다. (웃음) 돌이켜보니 이번 기회에 형에게 복수를 한 것 같다. 2002년 바이브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뮤직비디오 에서 형이 내 여자를 빼앗아갔는데, 에서는 내가 형이 놓친 애인과 사귄 거니까. (웃음)

“만약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되면 신인 연기자들을 후원하고 싶다”
김동윤 “지금이 자신감, 용기, 배짱, 패기가 최고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 혼자 삼형제를 키우셨다고 들었다. 남자만 넷이 사는 집이란 어떤 곳인가.
김동윤: 한 마디로 어둡다. (웃음) 큰 형이랑 일곱 살, 둘째 형이랑 여섯 살 차이가 나는데 엄마 노릇 하는 둘째 형이 정말 무서웠다. 어린 마음에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까 얼른 학교 그만 두고 돈 벌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 반항이나 탈선의 기운을 주먹으로 다스린 것도 둘째 형이었다. 덩치도 커서는 “집만 나가 봐라,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어디 하나 부러뜨린다. 못할 것 같지?” 이 한 마디가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여태껏 가출한 적은 없다. (웃음)

그런 둘째 형의 뒤를 이어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김동윤: 고등학교 3학년 때 뮤직비디오 편집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연출로 2년 정도 일을 했는데 돈벌이가 너무 안 되는 거다. 그러다 우연히 고호경 씨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형 매니저의 소개를 받아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미팅하자마자 공유 씨랑 같이 맥주 광고 메인을 땄고, 한 달 뒤에 코카콜라 광고를 찍었으니까 그 당시엔 ‘아, 이렇게 스타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웃음) 그리고… 험난한 12년을 채워왔다. 하하.

JYP 엔터테인먼트 연기자 1호로 꽤 오랜 시간 소속되어 있었는데 눈에 띄는 활동은 하지 못했다. 혹시 그 시기가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나.
김동윤: 아니다. 그 때는 그냥 남 탓만 했던 것 같다. 연기의 ‘연’자도 제대로 못하면서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돌아다녔으니까. 가수 위주의 회사다 보니까 연기 쪽 매니지먼트가 좀 약해서 내가 이렇게 못 뜨는 거라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회사에서는 내가 상처받을까 봐 ‘쟤 연기 못해서 미팅 탈락했대’라는 말을 안 한 건데, 만약 연기를 잘 했다면 거기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겠지. (웃음)

데뷔 초의 기대나 포부와 달리 지난 12년이 결코 화려하거나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시간은 아니었을 텐데.
김동윤: 연예인은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 정말 맞는 얘기다. 연예인은 집 앞에 쭈쭈바를 사먹으러 가도 연예인이다. 이쪽 일을 하는 데도 최소한의 돈이 없으면 연기를 할 수가 없다. 집안 환경이 괜찮으면 용돈을 받아쓰겠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많다.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가끔 오디션이랑 미팅 때문에 잠깐 쉰다고 하면 누가 쓰려고 하겠나. 얼마 전에도 어느 연예인이 생활고로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도 그 마음을 아니까. 나이 스물일곱, 여덟에 수입 한 푼 없는데 아카데미 수업은 나가야 하고. 연기에 대한 자기 벽도 못 깨는데 돈도 못 벌고 계속 카메라 앞에 설 기회도 없고. 이런 기본적인 금전 문제에 다른 요소까지 더해지면 정말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 시기에 군산 가서 아파트를 지었다. 한 달 정도 막노동을 하면서 돈을 벌어 버텼다. 살려고.

어쨌든 멈추지 않고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는데, 연기자로서의 삶 외에 꿈꾸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김동윤: 어느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연기자라는 직업이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건 말로 못 한다. 그래서 만약 내가 성공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되면 신인 연기자들을 후원하고 싶다. 한 달에 얼마씩 용돈을 지원해준다던가 아카데미 수업료를 내 준다던가, 내가 누군가 그렇게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남에게 해 줘서 그 친구들이 훌륭한 연기자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유망주 축구선수를 키운다던가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한국에 데려와 공부도 축구도 시켜주고 싶고.

을 통해 지금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김동윤: 지금은 내가 이 일을 시작한 12년 중 자신감, 용기, 배짱, 패기가 최고인 것 같다. 이성애자로 남자와 키스도 해봤는데 뭘 못하겠나. (웃음) 단순히 게이 역할을 해서가 아니라, 한 작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역으로 촬영을 아무 탈 없이 끝내고 좋은 작품의 한 역할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생긴다. 어떤 작품, 어떤 역이든 나에게 맞는 게 있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맡겨만 주시면…아, 비싸지도 않다. 하하.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