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

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
“아유, 저 주머니에 안 들어가요.”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만큼 작고 예쁜 그녀’에 대한 세상의 수식을 박보영은 손사래를 치며 어색해한다. 그리고 그녀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얼굴들은 마냥 주머니 속에 담겨 있을 천진난만한 소녀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 의 정남은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애를 써야 했고, 의 세희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촬영을 마무리 지은 에서도 그녀는 세상과 단절된 소년을 돌봐주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사극에서 학원물로, 코미디에서 공포영화로 성큼성큼 보폭을 넓히지만, 작품 안에서 박보영은 무리하게 변신을 시도하거나 타고난 이미지를 무너트리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조금씩 하지만 멈추지 않고 자신을 배우로 세공해 나간다. “공포영화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또래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이다 보니까 예전처럼 선배님께 여쭤보고 기댈 수 없어서 어렵기도 했어요. 게다가 그래픽을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주고받는 리액션이 아니라 가상의 대상을 향해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도 어려웠고요. 하지만 이번에도 제 한계에 부딪히면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냥 밝고 신날 수만 없는 것은 스크린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메신저 등 첨단의 문명을 반영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의 시나리오에 그녀가 유난히 끌렸던 것은 세상에 소리쳐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이에 비해 어두운 감정을 많이 경험했어요.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그런 점들이 결국에는 연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소속사 분쟁이 해결되고 다시 자유롭게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까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는 처음의 밝기를 잃어갔다. 하지만 박보영이 그 시간을 스스로의 자양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절망할 수 없도록 중요한 순간마다 도착했던 편지들 덕분이었다. “를 보고 은사님을 찾았다는 분, 을 보고 힘든 시기에 활기를 찾았다는 분이 편지를 주셨을 때 제가 드린 것보다 제가 받은 게 더 많았어요. 활동을 쉬고 있을 때도 온 가족이 저를 응원한다고 해 주신 분이 있는데, 그럴 때 이 일이 저 하나의 결정으로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저를 보고 계신 분들께 제가 보답해야 할 것이 많아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과정의 고단함은 큰 문제가 아니다. 배우로 살아야 할 이유를 확인한 박보영이 자신의 한계를 번번이 극복하고 결국 더 좋은 배우가 될 것을 믿게 되는 건, 그래서다. 그리고 그녀가 추천하는 다섯 곡의 노래는 그녀에게 편지처럼 도착한, 위안과 응원을 담은 반가운 음악들이다.

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1. 김광진의
박보영이 처음 김광진의 ‘편지’를 들었던 것은 라디오나 음반이 아닌 기업행사 현장에서였다. “그냥 회사원 같으신 분이 굉장히 쑥스러워 하시면서 노래를 한 곡 부르시는데 제가 너무 놀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 제목이 대체 뭐냐고 막 물었어요. 그랬더니 다들 어떻게 이 노래를 모르냐고 핀잔을 주시는 거 있죠. 전 90년생인데!” 휴대폰에 메모해 둔 노래 제목을 잊지 않고 찾아 들었던 그 날의 감동을 박보영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세상에 이런 노래가 도대체 어떻게 존재했나싶을 정도로 너무 좋더라고요. 지금도 기분이 좋은 날 감정 신을 촬영해야 하거나 하면 꼭 듣는 노래예요. 가사에 얽힌 실제 사연을 알고 들으니까 더 몰입이 되거든요.” ‘마법의 성’이라는 전설적인 노래를 남긴 더클래식 출신의 김광진은 펀드매니저로 성공을 거두면서도 꾸준히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발전시켜 온 인물이다.

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2. 정엽의
깊은 밤잠이 오지 않을 때,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볼 때, 혹은 드라이브를 즐길 때, 박보영은 서정적인 노래로 자신의 감수성을 충전한다. 특히 정엽이 디지털 싱글로 발표했던 ‘잘지내’는 그녀가 밤에 듣기 좋은 노래로 손에 꼽는 곡. “최근에 정엽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우리 팬들이 사심 방송한다고 어찌나 야단들이던지. 그래서 ‘아, 들켰네’하고 생각했죠.” 배우로 생활하면서 기분을 바꾸는 방법을 터득한 그녀에게 음악의 분위기와 정서는 곧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다. 그래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동시에 노래가 자신에게 전해 주었던 감정을 다시 되새긴다. “짙은의 ‘디셈버’도 우울해지기 딱 좋은 노래예요! 반대로 기분을 좀 전환하고 싶을 때는 어반자카파를 들어요. ‘그날의 우리’라는 곡을 특히 좋아하는데 듣고 있으면 신날 준비가 막 되거든요.”

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3. 10cm의
어떤 노래는 분위기를 넘어 노래를 들었던 순간의 풍경과 온도를 그대로 소환하기도 한다. 10cm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를 들을 때 박보영이 떠올리는 것이 예쁜 카페의 분위기나 막 시작되는 사랑의 풋풋함이 아니라 나른한 어느 오후의 여유라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양수리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였어요. 대기 시간이 정말 너무너무 길어지다가 그냥 하루를 다 날리고 다음날로 촬영이 미뤄진 때가 있었거든요. 허탈하기도 하고 해서 스태프들과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려고 근처 슈퍼에 갔을 때, 이 노래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의 느낌이 고스란히 생각나요. ‘아, 오늘 촬영 없다!’ 그런 기분 있잖아요.” 쿡쿡 웃는 머리 위로 그날의 바람이 살랑 지나갈 듯 생생한 묘사를 하는 박보영에게 노래란 추억을 담는 사진이기도 한 것이었다.

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4. 타블로의
기억이 언제나 분홍빛의 희망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박보영이 선명하게 마음에 새긴 노래 중에는 눈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곡도 존재한다. “가사에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 이건 내 노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심취했던 타블로의 첫 솔로 앨범 은 어느 한 곡을 꼽을 수 없을 만큼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된 앨범이었다. “선공개 된 음원을 듣고 직접 앨범을 사려고 매장에 사흘이나 갔어요. 발매일을 잘못 알았거든요. 하하. 모든 트랙을 다 기억할 정도로 듣고 또 들었어요. 특히 ‘집’은 너무 내 마음 같아서 들을 때마다 참 많이 울었죠.” 타블로와 마찬가지로 오해와 의심의 사슬에 묶여 본 적 있는 그녀에게 이 앨범은 다만 노래가 아니라 소중한 악수이자 따뜻한 격려였을 것이다.

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5. 박효신의
손에 도착한 편지들로부터 기쁨과 위안을 받은 사람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아무래도 이제 도착할 다음 편지일 것이다. 그래서 박보영은 군 전역을 앞둔 박효신의 다음 앨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고백한다. “중학생 때 ‘좋은 사람’을 듣고 그 앨범에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그 이후로 쭉 박효신 씨의 팬인데, 한동안 새 앨범을 못 들어서 얼마나 다음 앨범이 간절한지 몰라요.” 기다림은 물론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곧 다가올 그 끝은 그녀에게 벌써부터 큰 설렘을 가져다주고 있다. “입대하시기 전부터 라이브 하는 목소리 톤이 좀 바뀌셨거든요. 그래서 더 다음 노래들이 기대되기도 해요. 얼마 전에 한정판으로 리패키지 앨범이 나왔는데 그 노래들 음원으로 들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

박보영│위안과 응원을 담은 음악들촬영장에서도, 그 바깥에서도 마냥 쉽지만은 않은 배우 생활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비결을 묻자, 박보영은 특유의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았다. “하하하. 어쩔 수 없어요. 이게 매력이 정말 넘치는 일이거든요!” 생각에 잠기면 화난 얼굴이라는 오해 때문에 일부러 더 웃으려 한다는 그녀는 어쩌면 애초에 오해에 맞서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늘 문제에 맞닥트리지만 주저앉기보다는 해결을 하려고 하는 그녀는 그래서 작고 귀엽지만, 그녀를 향한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좌절하지 않는 사람, 나아가 문제와 마주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늘은 발전이라는 선물을 주기 마련인 탓이다. 멀지 않아, 우리는 확인 가능한 박보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이진혁 el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