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나는 나의 길을 갈 테니

사람들은 그를 신이라 부른다. 데뷔 이래로 이어진 그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개그의 신이며, SBS 의 충격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그는 콩트의 신이다. 지난 몇 년간 토크쇼에서 웃음을 자아낸 신동엽의 활약상 모음을 접한 사람에게 그는 ‘드립’의 신이기도 하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예능의 신이라고도 한다. 연기에 뿌리를 두고 다져온 관찰력과 표현력, 타고난 순발력과 기막히게 타이밍을 잡아내는 예민한 감각까지 신동엽은 드물게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전천후 예능인이다. 그가 tvN < SNL 코리아 >에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사람들이 흥분할 수 있었던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조합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한계의 울타리를 훨씬 뒤로 물려놓은 마당에서 그가 자유롭게 드러낼 능력의 크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신동엽의 지난 20년은 신의 역사가 아니었다. 슬랩스틱과 인물묘사가 주를 이루던 90년대, 신동엽의 등장은 물론 혁신적인 것이었다. 스스로 “안녕하시렵니까”가 유일한 유행어라고 말할 정도로 신동엽은 패턴을 구축하고 익숙함을 동력으로 삼는 고전적인 코미디쇼와 달리 순간의 아이러니와 즉흥적인 호흡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탁월한 연기력이라는 추진 장치를 장착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신동엽은 쟈니 윤에서 주병진으로 이어진 한국형 스탠드 업 코미디언의 계보에 가까웠던 것이다. 자신의 에피소드를 풀어 놓거나 ,주변 인물들의 특징을 포착해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 특히 빛을 발하는 그의 입담은 분명 어수룩하거나 까불거리는 기존의 코미디언들과 다른 노선의 것이었으며 그가 진행자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까지 그러한 방식을 버리거나 바꾸지 않았다. 세월은 흐르고, 환경은 변하고, 대중의 요구는 달라지지만 신동엽은 한결같이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해 오고 있다.

신이 아닌 학습으로 일궈낸 장인의 자리
신동엽│나는 나의 길을 갈 테니
KBS 에 출연했을 때, 대답을 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는 신동엽의 모습 위로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자막이 등장한 것은 그의 코미디 방식에 대한 가장 노골적이면서 명징한 설명이었다. 그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판단하고, 그 가운데 가장 웃음을 자아낼 확률이 높은 문장과 단어를 골라낸다. 선천적인 능력이 바탕이 되지만, 이것은 분명 오랜 시간에 걸친 학습과 훈련에 의한 방식이다. 가장 야한 이야기를 잘하는 예능인, 변태 이미지가 강렬한 코미디언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의외로 그가 비속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점은 그래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신동엽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스스로의 힘으로 가 닿은 사람, 장인인 것이다.

KBS 과 KBS 가 각각 신동엽의 생존을 알린 맥박이자 새 전기의 신호탄이 된 것은 그래서 필연적이다. 은 달리고 숨으면서 한 시간 이상의 드라마를 구현해 내야 하는 MBC 이후의 예능들과 달리 작은 세트에서 제작진이 정해 놓은 미션을 목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이 방송에서 초대 손님들을 적절히 놀리면서 말장난을 이어나가는 신동엽의 모습은 KBS 에서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해야 할 몫이 분명하고, 그것이 할 수 있는 만큼의 크기라는 점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이 방송에서 신동엽은 전체 흐름을 책임지거나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된다. 공동으로 진행을 맡고 있는 컬투와 이영자 역시 각자의 몫을 기복 없이 해내는 타입이므로 신동엽은 출연자와 방청객들을 살피며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기 쉬운 정보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엮어 즉흥적인 콩트를 만들어 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짧은 호흡의 상황들이 병렬적으로 구성될 뿐 아니라 소소한 공격을 분담하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는 SBS 이나 스탠드 업 코미디처럼 진행을 이어나가는 KBS 과 그의 궁합이 좋은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유재석도 강호동도 아닌 신동엽만의 것
신동엽│나는 나의 길을 갈 테니
그래서 다시, 신동엽은 신이 아니며 그가 출연한 < SNL 코리아 > 역시 신의 한 수라 불리기에는 아쉬운 방송이었다. “에서 조미령 씨가 형사로 나오고 내가 피해자로 나온 게 벌써 10년 전”이라는 그의 말처럼, 신동엽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청자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성적인 코드를 표출시키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충동이나 모험에 기대지 않고 세심하고 노련하게 대중의 반응을 느끼는 사람이 치밀하게 내려놓는 하나의 수였다. 그러나 < SNL 코리아 >는 그의 이미지와 연기력에 상당 부분 빚을 진 채 진부한 상황을 감수했으며, 심지어 은근하게 암시를 할 뿐 물러날 공간을 확보하는 신동엽 특유의 방식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사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방송의 과감함이 아니라 콩트를 리드하던, 상대의 연기를 받아주던, 심지어 맥락 없이 109세 할아버지를 맡아도 책임만큼의 연기를 해 내는 신동엽의 내공이었다. 지금 신동엽이 예능의 강자로 부활했다는 평가는 그런 점에서 부당하다. 신동엽은 사멸된 적 없이 계속해서 자신의 예능을 해 온 사람이며, 그의 예능은 감이나 트렌드가 아니라 테크닉으로 정리된 일종의 기술이다. 강호동이 내뿜는 카리스마나, 유재석 특유의 사려 깊은 배려나, 혹은 두 사람의 양강시절에 필수적이었던 형제간의 끈끈한 캐미스트리는 신동엽에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절이 저물 때, 신동엽은 다시 발견되었다. 밀물의 시절에 발돋움을 하거나 모습을 바꾸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킨 이에게 드디어 썰물의 시간이 온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미 오래전에 완성된 신동엽이 시대와 손을 잡았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