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탈>, 영웅 혹은 악인으로 떠밀린 이들의 기록

<각시탈>, 영웅 혹은 악인으로 떠밀린 이들의 기록 8회 KBS2 수-목 9시 55분
이강산(신현준)의 비극이 대의를 위해 개인의 생을 말소함으로써 완성되었다면, 이강토(주원)의 비극은 말소할 인생조차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강산에겐 대업을 완수한 후 가족에게 진실을 밝히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강토에겐 대업 후의 삶이 없다. 그가 ‘왜놈의 개’ 소리를 들어가며 경찰이 된 이유인 형과 어머니(송옥숙)가 숨을 거둔 지금,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형의 유업을 물려 받는 것뿐이다. 심지어 항일영웅으로서의 자부심마저도 그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강토가 지켜야 할 조선의 민중은 그에게 돌을 던지고 집에 불을 지르지만, 그는 정체를 감추기 위해 ‘사토 히로시’라는 더 악랄한 가면 뒤로 숨을 수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조선 민중을 구한다 한들, 이강토로서의 자신은 항구적인 증오의 대상인 것이다. 첫사랑 목단(진세연)에게서조차 “너 같은 놈이 죽고 각시탈이 살아야” 한다는 저주를 듣는 강토에게, 이제 이강토로서의 삶은 본질인 각시탈을 감추는 얼터에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기무라 ?지(박기웅)도 마찬가지다. 형 켄지(박주형)의 죽음으로 조선에 대한 애정도 사라졌고, 목단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천호진)와 거래를 맺으며 선생으로서의 삶도 끝났다. 앞으로 제국 경찰로 살아가야 하는 ?지에겐 독립투사의 딸인 목단과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다. 그의 삶은 이제 각시탈을 잡아 복수를 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으며, 그나마 복수가 끝난 후에도 형 켄지의 대체품으로의 삶만이 남는다. 국가와 민족 단위의 대의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삶에 충실하던 두 젊은이를 내세운 은 그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 후, 오로지 복수와 파멸만이 남은 길 위에 둘을 마주 세워 놓음으로써 비극의 2막을 열었다. 대의에 공감함으로써 각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파괴되었기에 영웅과 악역의 자리로 떠밀려 간 주인공들이라니. 이 서사가 그려 보일 암울함의 깊이가 쉬 보이지 않는다.

글. 이승한(자유기고가) 외부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