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 감독 “게이라는 점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다”

“자고픈 남자는 많지만 손잡고 싶은 남자는 너뿐이야♬” 극 중 등장하는 게이들의 합창처럼 영화 (이하 )은 ‘엄청나게 발랄하고 믿을 수 없게 로맨틱한’ 영화다.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민수(김동윤)와 효진(류현경)의 결혼식으로 시작하지만 신부에게는 오래 사귄 애인 서영(정애연)이 있고, 신랑은 게이 바에서 만난 석(송용진)에게 첫눈에 반한다. 위장 결혼으로 엮인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 자칫 작위적일 수 있는 설정을 뛰어넘어 용감하고 유쾌하게 달려가는 이 영화는 단편 와 , 에 이은 김조광수 감독의 첫 번째 장편이다.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 겸 제작자인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연대할 수 있는 자리마다 달려가 울고 웃고 이야기하는 그의 삶이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결혼을 계획 중인 열아홉 살 연하 애인과의 신혼여행 예정지를 묻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쿠바!”라고 외치며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는, 마흔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러블리한 ‘청년’ 김조광수 감독을 만났다.

한창 영화를 홍보해야 할 때고, 지상파 홍보는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액수인데 며칠 전 MBC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김조광수: MBC 보도국 기자라는 분에게서 인터뷰 하고 싶다는 메일이 왔다. 파업 중인데 무슨 인터뷰를 하나 싶어 알아보니 임시직 기자였다. 맨날 김재철 사장 욕해온 내가 지금 MBC와 인터뷰 한다는 게 웃긴 것 같아서 안 한다고 했더니 그 분이 영화를 좋게 보셨는지 계속 연락을 하셨다. 그냥 안 한다고 하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MBC 파업을 지지하는 인증 샷을 올렸다.

‘그래도 일단 우리 영화부터 잘 되게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은 없었나. MBC 파업을 지지한다는 신념도 있겠지만, 이 널리 알려지면 한국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 나아질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고.
김조광수: 파업 중인 언론, ‘조중동’과는 인터뷰 안 하겠다는 게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지만 마케팅 하는 쪽에서는 고민이겠지. 조선일보 하나만도 아니고 ‘조중동’ 전부에, 방송 쪽도 파업 중인 매체가 많으니까. 대신 내가 다른 걸로 열심히 뛰겠다고 해서 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도 시작했다. 거기서 열심히 떠들면 조중동에 홍보 안 하는 만큼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내 영화 속 캐릭터들은 사랑에 있어서는 상당히 적극적”
김조광수 감독 “게이라는 점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다”
그럼 얼른 영화 얘기로 들어가 보자. 영화 속 민수와 석이는 찰나의 스침을 통해 서로 반하고 사랑에 빠진다. 전작 에서도 그 첫 만남을 굉장히 로맨틱하고 운명적인 순간으로 그렸던 것처럼 ‘고전적인’ 로맨스의 코드를 좋아하는 것 같다.
김조광수: 내가 항상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사실 그게 문제다. (웃음) 그렇게 첫눈에 반하면 좋은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나랑 맞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외모나 분위기에 끌려서 너무 훅 빠져 버리면 좋은 연애를 하기 어려운데, 이상하게도 그러다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날 때도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로망을 버릴 수가 없다. 지금 사귀고 있는 친구도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에서 만났는데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후광 같은 게 샤악 비쳤다. 세 사람이 같이 있는데도 걔만 보이고. (웃음) 변영주 감독은 우리 영화 보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고, 이게 만약 이성애자 로맨스였으면 관객들이 다 가방 던지고 ‘뭐 하는 거냐!’그랬을 텐데 동성애자 로맨스니까 유치하단 소리 못하고 참아주는 거라더라. 하하. 내 다음 영화에는 40대 게이가 나오는데, 변 감독이 40대 게이한테는 그런 것 좀 하지 말라고 해서 “아니, 나는 우리 애인하고 그랬단 말이야” 했더니 “형 얘기는 형 얘기일 뿐이야. 대중적이지 않아!”라고 해서 고민 중이다. 정말 대중적이지 않은 건가? 음…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경우는 많지만 대부분 용기가 없다 보니 짝사랑으로 끝날 뿐, 그 감정을 연애로 발전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김조광수: 그런데 나는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길거리든 버스 안이든 사무실이든 대시를 했다. 좀 잘난 척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패한 경우가 없다. (웃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게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차이인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첫눈에 반하더라도 일단 대시하기가 어렵고, 대시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해서 “왜? 나는 다 되던데…”했더니 “저리 가!”라고들 하더라. (웃음) 어쨌든 내가 그렇기 때문인지 내 영화 속 캐릭터들은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적극적인 편이다.

그렇게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웃음)
김조광수: 적극성인 것 같다. 적극성은 그 자체로 매력이 될 수 있다. 특히 이성애자들은 누군가에게 요만큼 호감이 생기면 ‘에이~’하고 이만~큼 호감이 생겨야만 움직인다면, 동성애자들은 특정한 장소나 커뮤니티에서만 상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면 ‘어디 가서 저만한 사람 만나기도 어렵지. 세상에 별 년 있겠니?’ (웃음) 하고 좀 끌려가는 것 같다. 게다가 게이들은 남자와 남자고, 남자들은 성적 충동이나 애정에 대한 욕망을 여자들보다 좀 빠르고 강렬하게 느끼니까 불꽃이 금방 튈 수 있다. 물론 한 쪽이 적극성을 띤다고 오랫동안 연애를 지속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초반에 시작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내 주변에서 연애를 오래 못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을 보면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건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김조광수: 그런가? 내가 늘 하는 말이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리고 폭을 좀 넓혀라. 나처럼 열아홉 살 연하도 사귈 수 있어야 된다”는 거다. (웃음) 사실 난 열아홉 살 연상도 괜찮다. 육십 대면 어떤가? 사람만 괜찮으면. 나이도 지역도 상관없다. 나는 먼 지방에 사는 사람과도 꽤 오래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기차 타고 만나러 갈 때의 두근거림이 너무 좋았다. 원주에 사는 사람과 사귄 적도 있는데, 밤 11시 10분 막차를 타고 가면 두 시간이 걸렸다. 애인이 원주역으로 데리러 나오니까 그 집 가서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사귀는 몇 개월 동안 거의 매일 그렇게 했다. 남들은 그게 쉬운 게 아니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집에 가도 일찍 안자잖아. 자는 시간은 대충 비슷해!’ 라고 생각한 거지. 연애할 때만큼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걸 아까워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민수와 석이의 연애에 있어 사소한 순간들이 굉장히 반짝반짝하게 그려진다는 느낌이었다. 이성애자들이 손잡고 길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당연하게 누리기는 어렵지만 떨어져 걸어가며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이들에게는 소중하겠다 싶은.
김조광수: 시나리오 회의 때도, 석이와 민수가 너무 금방 사랑에 빠지니까 로맨스를 좀 더 보여줘야 되지 않을까 하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이 둘이 진심으로 서로를 좋아한다는 느낌만 전달하기로 했다. 그래서 둘이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떨어져 걸으면서도 충분히 즐거워하는 상황을 보여주면 이성애자 로맨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게이 로맨스의 특별함이 더 달달하게 드러날 것 같았다.

이성애자 로맨스의 정석은 “나 잡아 봐라” 아닌가. (웃음)
김조광수: 하하하하. 사실 난 “나 잡아 봐라”를 정말 좋아해서 민수와 석이의 메타세콰이어 길 데이트 신에 넣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제발 그것만큼은 하지 말라고 했다. (웃음)

은 로맨틱 코미디지만 ‘장례식’이라는 제목대로 무거운 비극 또한 함께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에서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의 멤버로 활동하다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티나의 캐릭터가 두 작품을 잇는 중요한 끈인데, 어떻게 이 이야기가 연결된 건가.
김조광수: 처음 어떤 영화를 만들까 고민했을 때 출발이 티나의 장례식이었다. 티나를 떠나보내는 게 우리 모두 너무 슬펐지만 삼일장을 지내다 보면 슬픈 와중에도 그 사람을 추억하면서 막 웃고 떠들 때가 있지 않나.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웃기도 하고 엄청 울기도 하다가, 내가 만드는 영화에 이 장면을 잘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가 개봉했고, 장례식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먼저 나왔다. 느낌은 다르지만 자칫하면 따라한 걸로 보일까 봐 그냥 화장터에서 울며 노래하는 정도로 옮겼다.

코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티나(박정표)나 ‘언니들’이라 불리는 중년 남성 게이들의 캐릭터가 영화 전반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캐릭터가 가진 생동감이 느껴졌다.
김조광수: 처음에는 티나가 주인공이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보니 민수와 석이로 중심이 이동했지만 티나의 캐릭터를 잘 그려내고 싶었다. 이 친구가 좀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관객들이 티나에 대해 사랑스럽고 애틋하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언니들’의 캐릭터는 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가져왔다. 두 명 정도를 섞은 캐릭터도 있고, 왕언니(박수영)와 외모는 다르지만 성격이 아주 비슷한 분도 있다. 티나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동의를 구했고, 사실 내 의도는 티나를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은 거지만 보는 사람들에겐 그렇지 못할까 봐 많이 걱정했는데 모니터해준 분들이 “영혼이 있다면 티나도 좋아할 거야”라고 말해줘서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도 청소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해보고 싶다”
김조광수 감독 “게이라는 점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다”
전작 의 신체 노출이나 접촉 수위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정성과 모방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동성애에 대한 심의의 잣대는 이성애를 재단할 때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반증일 텐데, 이 은근히 과감한 표현에도 15세 관람가를 얻어낸 비결이 궁금하다.
김조광수: 때 재심의까지 요청했는데도 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이 나온 바람에 소송을 제기해서 1심과 항소심을 다 이겼다.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그 때 내가 너무 열심히 싸우니까 ‘아우, 얘는 그냥 좀 넘어가는 게 낫지 괜히 건드리면 또 지랄할지도 몰라’ 하며 똥 밟기 싫은 심정으로 넘긴 것 같기도 하다. (웃음) 그리고 은 기획과 촬영 단계에서 제작사와 투자사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나올 확률 100%”라고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15세 관람가를 목표로 했고, 어떻게든 거기 맞춰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베드 신도 화끈하기보다는 좀 코믹하게 찍었고, 택시 기사(정인기)의 욕설도 편집하면서 너무 심하지 않게 걷어냈다. 내가 청소년기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많이 우울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이 단체관람을 조직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청소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해보고 싶다.

작품 안에서 상조회사 간접광고가 상당히 재치 있는 유머 코드로 쓰이기도 했는데, 혹시 동성애 영화라는 이유로 협찬의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
김조광수: 은 순 제작비 3억 원의 저예산 영화다 보니 결혼식과 장례식 등 중요한 신을 찍는 데도 많이 쪼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대충 찍을 수는 없고 해서 협찬을 받아보자고 했는데, 의외로 굉장히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다. 웨딩 업체의 경우 점점 비혼 인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젠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거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이 될 경우 굉장히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보신 것 같다. 상조회사 역시 영화에서 장례식이 의미 있고 잘 쓰이면 그만이지 동성애라는 건 중요하지 않게 여기셨다. 다만 장례식 신에서 업체 명을 잘 보이게 해 달라고. (웃음)

민수와 석이의 로맨스가 낭만적 판타지에 가까운 반면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이나 호모포비아의 문제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스로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이라고 여기는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개입하고 그들의 행복을 무너뜨리는가를 보여 준 부분이었다.
김조광수: 을 민수의 성장영화라고 본다면 커밍아웃이 굉장히 중요한데, 특히 커밍아웃과 아웃팅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성애자들은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선의로 행했던 일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아웃팅을 당하고 굉장히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잘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부모가 민수와 석이, 혹은 효진과 서영의 관계를 발견해서 갈등이 생기는 것보다 제삼자로부터 문제가 시작되고 주인공들이 사회 활동을 하는 직장에서의 아웃팅, 커밍아웃으로 이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민수와 석이가 가장 극단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처럼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를 독려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복잡한 문제인 것 같다. 특히 한국은 차별금지법조차 제대로 제정되지 않아 동성애자가 겪을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아무런 안전망이 없는 상태인데 가족은 물론 대중에게도 커밍아웃을 한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김조광수: 커밍아웃은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양심의 문제라고 얘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쪽이다. 왜냐하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커밍아웃 이후 훨씬 자존감을 크게 얻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 TV에서 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을 때 좀 불만이었던 것도, 방송에서 대부분 울고불고 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에게 ‘역시 커밍아웃은 힘든 거야’라는 막연한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내 주위에서도 한 5, 6년 전 까지는 부모님께 커밍아웃했다거나 아웃팅을 당했다고 하면 같이 울고불고 했는데 요즘은 꽃다발 주면서 축하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우리한테 얘기해. 너는 지금부터 출발이야.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라고 격려한다. 사실 커밍아웃 자체가 행복은 아니지만 우리가 같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상황이 같을 수 없고, 커밍아웃에 따르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장점을 더 많이 보려고 하고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향한 편견이나 부당한 폭력은 계속되고 있고, 타인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면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는 태생적으로 비극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들 때는 그 안에서 밝고 유쾌한 지점들을 찾아내려 하는 이유가 있다면.
김조광수: 얼마 전 라는 책을 냈는데,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단도직입적으로 “게이는 불행한 거 아니에요?”라고 하길래 나는 불행하지 않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 하시는 거다. 물론 동성애자로 사는 게 이성애자로 사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로 사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만은 아니고, 동성애자라고 주구장창 365일 내내 울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영화를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 게이 영화가 꽃미남들을 사용해 판타지를 준다는 것을 비난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우울함만을 전달하는 게 좀 싫었다. 극장에서까지 현실을 목도하고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는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이성애자들이 극장에 와서 멜로에 대한 로망과 판타지를 꿈꾸듯이 동성애자들도 해피엔딩의 로맨스에 대한 판타지를 꿈꿀 수 있길 바랐다.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다른 게이 감독들 보다는 밝고 명랑하게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장성 면에서도 밝고 즐거운 이야기가 갖는 장점이 있고.

“호모포비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리 편”
김조광수 감독 “게이라는 점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회인만큼 어떤 면에서는 관객들을 위한 ‘눈높이 교육’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것 같다. 동성애자 관객과 이성애자 관객 양쪽의 취향이나 정보 수준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했을 텐데 어떻게 수위를 조절했나.
김조광수: 그 줄타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타깃을 동성애자 관객들로 할 것인가, 이성애자 여성 관객으로 할 것인가를 가지고도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이성애자 여성들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퀴어 영화의 본질을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모니터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수가 어머니에게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도 들어간 거고, 원래 어머니가 민수가 게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에 더 집착했다는 내용 같은 건 빠지기도 했다.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의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이나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에 대한 기독교 보수 단체의 반대 여론 등 동성애 관련 이슈들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동성애혐오세력의 움직임도 눈에 띄는데, 현재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김조광수: 한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2, 3년 사이 호모포비아 단체들이 마구 발언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후퇴하는 느낌이 들었다. 권력이 보수화되면서 그 보수화된 권력을 쥔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인 게 중요한 맥락이겠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도 다시 뭉쳐 전진하려는 움직임도 느껴져서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 때문에 사회적으로 환기가 되는 효과도 있고, 오히려 우리가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 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호모포비아들이 주장하고 행하는 방식이 너무 낡은 것이다 보니 대중적으로 그렇게 먹히지는 않는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게 두렵지는 않다.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이상 주위에서 동성애혐오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없겠지만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의 비난이나 공격에는 어떻게 대응하나.
김조광수: 처음에는 포털 사이트 댓글 같은 데 상처받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됐다. 일단 댓글은 잘 안 보려 하는 편이고, 트위터에서 안 좋은 내용의 쪽지 같은 게 오면 그냥 지우고 차단한다. 물론 며칠 전에도 기사 댓글을 한 번 봤다가 ‘아우, 괜히 봤어’ 하고 상심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래도 작년에 비해선 우호적인 댓글이 훨씬 많다”고 했다. 예전에는 9대 1이었다면 지금은 8대 2 정도? (웃음) 사실 호모포비아들이 절대 다수는 아닌데 워낙 적극적이다 보니 많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편을 더 많이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지 적과 싸우는 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호모포비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리 편이거나 우리 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에는 대학 시절 민주화 투쟁을 했던 경험과 함께 ‘죽을 때까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내용이 있다. 이십대에 ‘운동권’이었던 사람이라 해도 계속 그러한 신념을 갖고 행동하며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는 태생적으로 기득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지킬 수 있는 태도인 것일까.
김조광수: 그런 것 같다. 나는 남자고, 40대 후반이고, 영화사의 대표니까 만약 게이가 아니었으면 벌써 기득권 세력이 되었거나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으로 변질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이 어쩔 수 없이 많이 차단되어 있고, 그게 내가 갖는 한계인 동시에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전히 내 영화 관객들의 다수는 여성이고, 그들 또한 사회적 약자라는 면에서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감독, 제작자로, 게이 인권운동가로서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결혼식부터 LGBT 센터 건립까지 꿈꾸고 있는 일 또한 많을 텐데 이것만큼은 꼭 해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김조광수: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이슈는 법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주장을 하는 단계였다면 앞으로는 법적인 것들을 획득해 나가는 단계인 것 같다. 내가 공개 결혼식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동성결혼이라는 이슈를 알리고 쟁취하는 첫 번째 단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많은 것들을 하나씩 획득해가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꾸준히 기여하고 싶다. 영화를 통해서든, 사회운동으로든.

을 청소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기는 그 자체로 굉장히 예민하고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인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게다가 성 지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지면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모두와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 시기를 지난 사람으로서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김조광수: 나는 좀 철없이 사는 편인데, 오히려 그 시기에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데 대한 고민 때문에 철없이 살지 못했다. 암흑 같은 시기였다. 그래서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동성애자인 게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 철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주면 좋겠다. 모든 걸 계획에 의해 거시적으로 내다보며 살지 않아도 된다. 당장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걸 하면서 얻고 잃는 게 있을 거고, 그 얻고 잃음을 통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자기가 지금 좋아하는 게 있다면 거기에 올인 하는 삶을 살아 보는 것도 좋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