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아무도 닿아보지 못한 늪

“뭔가 반투명한 것 뒤에 세우면 좋겠어요. 잘 알 수 없는 느낌이 있어서.” 사진 콘셉트를 고민하다 포토그래퍼에게 이렇게 말할 때부터 이미 결론은 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훈을 끝까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당신은 이제훈을 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이제훈을 알고 있나? 박해일부터 류승범, 엄태웅, 강지환, 그리고 조인성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한데 모아지지 않는 개성의 배우들이 동시에 거론되는 그의 얼굴에서 누구의 과거를 보는지, 채 2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독립영화의 기대주에서 한국영화의 미래를 거쳐 브라운관의 스타가 된 이 젊은 신성에게서 어떤 미래를 보는지 좀처럼 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이제훈과의 인터뷰 내내 의도했던 건 물수제비였다. 돌멩이를 던지면 그가 어떤 파문을 그려낼까 궁금했다. 하지만 매번 돌멩이는 가라앉았다. 마치 늪에 빠지듯이.

흥미롭게도 디시인사이드 이제훈 갤러리의 별칭은 ‘늪갤’이다. 영화 에서 이제훈이 분했던 신일영 대위의 대사에서 유래되었다. ‘늪에 빠지다’라는 상투적인 문장이 자연스레 연상되지만 이는 의외로 “나를 드러내는데 그다지 흥미를 못 느낀다”고 말하는 이제훈을 설명하는데 꽤 그럴듯하다. 물은 투명하지만 좌표를 남기지 않는다. 늪은 속을 보여주지 않지만 꼭 같은 흔적으로 화답한다. 닿은 손바닥 모양 그대로 담근 팔 길이 그만큼.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오므리며 표정을 숨긴다.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게 “이제훈으로서 웃겨 보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은데 배역으로서 빠져들어서 그 상황을 이끌어보라고 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을 드러내는 게 “재미없는 일 같다”고 말하는 그와 닮았다.

이제훈이라는 배우의 가능성과 위태로움
이제훈│아무도 닿아보지 못한 늪
지금 배우 이제훈은 아직 아무도 바닥에 닿아본 적 없는 늪이다. 얼마나 깊은지, 무엇이 있는지 심지어 자신도 아직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경력에 비해 캐릭터를 영리하게 해석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연기로 선보임에도 늘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사심 따위 한 톨도 없는 듯 웃다가는 갑자기 돌변해 친구의 뺨을 사정없이 치던 의 기태와 두려움에 떨다 다음 순간 텅 빈 눈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던 의 일영. 캐릭터는 물론 장르와 플롯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작품에서 이제훈은 유약함과 폭력성의 극단을 찰나의 표정에 담아내고 상처로 응축된 광기의 에너지를 분출하며 스크린을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듯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알 수 없어서 위험하고 매혹적인 배우 이제훈의 깊이는 그의 얼굴에서 먼저 비롯된다. 말갛게 순수하지만 음험하게 의뭉스럽기도 한 눈과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 게 어색할 만큼 중앙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아름다운 코가 호기심을 끈다. 여기에 안정적인 발성과 정확한 발음, 시선을 버거워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몸놀림이 더해져 연기파와 스타의 흔한 이분법 사이에서 그의 보폭을 크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기란 “내가 하는 것에 있어 자유롭고자 하지만 보는 사람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래서 배우라는 “감투를 쓰는” 순간 완벽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이제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를 숙지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작은 부분이라도 던져주는 것에 준비했던 것이 무너지고 새롭게 다시 쓰여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제훈이라는 배우의 가능성과 위태로움이 동시에 비롯된다.

결국 우리는 그를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한 이가 아니라 완벽하고자 하는 이기 때문에 때로 회의론자의 다른 이름이다. 재능을 과신하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규정되지 않는 동시에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내리지 않는 만큼 주위 환경에 누구보다 많이 휘둘리는 법이다. 그래서 서사와 연출의 완성도, 통제력이 연기의 안정감과 비례했던 영화 의 승민보다 스스로도 “배우 생활의 위기”라고 느꼈던 SBS 의 재혁이 더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리 없이 차갑거나 맥락 없이 뜨거워지는 인물 표현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고, 불편하고 어색한 걸음걸이도 기태나 승민을 연기한 배우의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온전히 제작진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납득이 되면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불편함이 드러나는 이제훈의 방법론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에 이제훈이 발산하는 긴장감이 한 번 담근 발을 쉽사리 뺄 수 없게 하는 힘으로 유효하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멘붕’을 경험하면서도 재혁을 보기 위해 을 놓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계속 재혁과 그를 연기하는 이제훈을 변호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어려웠던 재혁의 모호함은 시청자의 머리를 설득하진 못 했지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의 표정을 지어 동조할 수 없지만 결코 미워하거나 버릴 수도 없게 한 이제훈은 끝내 논리적인 정답이 무의미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검사에겐 유죄를 선고받아도 배심원들은 무죄에 손들게 하는 것, 이것이 이제훈이라는 배우의 무서움이다. 발이 닿지 않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그에게 자꾸만 돌멩이를 던져보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