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영화 마주하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시간의 향기

[텐아시아=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1983년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 SF 영화에서 마주하는 미지의 시공간처럼 묘하게 설렜다. 시간과 공간 그 자체로 특별한 프롤로그로 다가왔다. 눈이 부신 그곳에서 찬란한 첫사랑이 시작된다.

열일곱 소년 엘리오의 가족이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로 보내는 별장에 올리버가 손님으로 찾아온다. 자신의 방을 내어주는 엘리오는 그에게 점점 자신의 마음까지 내어주게 된다. 처음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미묘하게 껄끄러운 존재였다. 감정의 결을 따르다가 발견한 진심에 흠칫 놀라며, 올리버의 마음까지 흘끗거리게 된다. 나이도 성별도 망설여야 할 대목이기에 선뜻 손을 내밀 수 없어서 표현할 수 없는 소년의 마음은 저릿하게 졸아든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푸릇하다.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지 싶다.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그들의 관계는 응원 받아 마땅하다. 그들에게는 그저 사랑일 뿐이다.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상대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자고 제안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수줍고 내밀한 호칭은 직접적인 사랑의 그 어떤 표현보다 풍부하다.

극장을 나서자마자 이 영화의 OST를 구매했다. 하늘에 총총 떠있는 별처럼 엘리오와 올리버의 감정에 방점을 찍는 음악들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수프얀 스티븐스의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 톤은 이야기와 완벽한 합을 이룬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이 작품의 각본가로 참여했다. 아흔이 넘은 백발 노감독의 묵직한 각색은 영화의 탄탄한 골격을 만들어준 듯싶다.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 올리버는 잠이 든 엘리오를 시린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올리버 역을 맡은 아미 해머의 물오른 연기가 돋보였다. 아미 해머 하면 따라붙던 전형적인 미국인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소거되었다. 그의 민낯 같은 연기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엘리오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치명적인 매력을 뿜는다. 그가 영화 속에서 악보를 기보하면 음표들은 시어가 되어 화면을 수놓는다. 특히 책을 읽는 모습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된다. 명화처럼 책을 읽는 그의 이미지가 뇌리에 각인된다. 필자는 행복한 4월을 보내고 있다. 그레타 거윅의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도 책을 읽는 티모시 샬라메를 마주한 까닭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섬세한 연출은 이번에도 돋보였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이전의 영화에서와 달리 확실한 자신의 색을 부여받는다. 또한 우리가 시각에 의존해서 잊고 지내던 감각을 훅 끌어올려 준다. 결결이 향기로운 냄새가 화면 너머로 다가온다. 인위적인 4D 관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법과도 같은 연출력이다. 좀 더 마법을 누리고 싶다면, 그의 빼어난 다른 영화들과 마주하면 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오래된 물건들이 담긴 상자를 꺼냈다. 바싹 마른 시간 속에서도 향기는 남아 있었다. 영화의 말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엘리오처럼 첫사랑에 울고 있던 10대의 나와 마주했다. 눈물만으로도 이미 애틋하던 그 시절과 오래도록.

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press@tenasia.co.kr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