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앓] 저만의 항도니가 모두의 도니가 되어버렸어요

[Dr.앓] 저만의 항도니가 모두의 도니가 되어버렸어요
늦었지만 고백합니다. MBC 에서 만날 소파에 드러누워 탄산음료만 찾으면서 사오리, 태연 마음고생 시킨다고 욕먹을 때도 전 정형돈이 싫지 않았습니다. ‘빨리 친해지길 바라’ 편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하하와 데이트할 때도 전 정형돈이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남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제 남자, 저만의 아이돌, 저만 웃기는 개그맨이었던 정형돈이 어느 순간 홍대를 스캔하고, 레슬링 에이스가 되고, 수컷 냄새가 물씬 나는 영계백숙이 되고, 일수가방 들고 앨범까지 내더니 만인의 정형돈이 되어버린 거 있죠? 아까워 죽겠습니다. 도대체 정형돈은 못 하는 게 뭔가요? (개화동에서 한 모양)

[Dr.앓] 저만의 항도니가 모두의 도니가 되어버렸어요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점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매력 포인트가 될 수도 있고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어요. 환자분만의 남자이자 개그맨이었던 시절의 정형돈은 어땠나요? 소심하게 애드리브를 던지고 그마저도 반응이 좋지 않으면 머쓱한 표정을 지었잖아요. 개그맨이 안 웃긴다는 치명적인 단점과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는 연예인이 만날 똑같은 옷에 똑같은 가방을 매는 촌스러운 이미지를 아예 캐릭터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뻔뻔하게 들이미는 순간, 숨겨왔던 정형돈의 매력이 스물스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신발은 구겨 신으며 햇빛이 강하지 않을 땐 선글라스로 올백머리를 만들지만, 이젠 “F자도 모르면서 패션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며 겁도 없이 지드래곤, 정재형, 조인성의 패션을 지적하고 나섭니다. 말도 안 되는 분장을 하고 웬만한 여자들도 소화하기 힘든 쫄바지를 입고 벌칙을 받을 때도 마치 런웨이를 걷듯 홍대를 활보하는 정형돈의 발걸음은 위풍당당하죠.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는 거짓말 같은 명언을 정형돈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 최면에 성공한 정형돈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사람들마저 최면에 걸려들게 만들었습니다. 복숭아 뼈가 살짝 보이는 9부 팬츠, 하얀 뿔테 안경처럼 모델이 아니고서는 쉽게 소화할 수 없는 패션 아이템도 정형돈이 착용하면 멋스러운 느낌이 나잖아요. 근데 더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당당하게 모델 포즈를 취하는 자신의 모습에 피식- 수줍게 웃는 순간이에요.

[Dr.앓] 저만의 항도니가 모두의 도니가 되어버렸어요
자신이 실제로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포장해 웃기는 캐릭터로 승화시키는 방송인이 어디 정형돈 뿐인가요? 오히려 정형돈의 진가는 스포츠 경기를 할 때 발휘됩니다. 봅슬레이부터 프로레슬링, 조정경기까지 모든 종목에서 에이스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정형돈의 뛰어난 실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앞 뒤 가리지 않고 몸을 내던지는 정신력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스포츠 특집의 눈물 담당은 정형돈이었어요. ‘프로레슬링 WM7’의 마지막 경기 기억나세요? 경기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구토를 하고도 수건으로 입 한 번 닦고는 괜찮다면서 입장하는 정형돈, 톱 로프에서 자신을 향해 점프하는 유재석을 온 몸으로 받아주던 정형돈, 경기 후 다같이 얼싸안다가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던 정형돈. 그가 콕스를 맡았던 ‘조정 특집’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750m나 남았는데도 다 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고통, 무한도전 배만 뒤처진 광경을 혼자 지켜보면서도 동료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독려해야 하는 고통은 노를 젓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을 겁니다. 누가 정형돈을 진상이라고 했나요? 진상이 아니라 진국입니다. ‘프로레슬링 WM7’ 편에서 모든 경기를 끝낸 정형돈이 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죠. “저희 무대가 최고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선보였습니다.” 정형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웃기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광대가 되어줬습니다. 매번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의 믿음직스러운 멤버가 되어줬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정형돈을 좋아하는 겁니다. 그러니 정형돈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야말로 늦었다, 막힌다, 그냥 항돈이 아니다! 웃긴 정형돈이다!

앓포인트: [웃길 때 보면 더 웃긴 형돈이] 너는 웃기겠지만 형돈이는 진지해
프로 춤꾼 지드래곤 웃지마 / 흔한 저질 댄스처럼 보이겠지만 /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 불장난 댄스보다 나아 웃지마 / 전주 나올 때도 절대 웃지마 / 가라겟겟 붐붐붐에서 터지겠지만 /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 내가 바로 댄싱머신 웃지마

너는 웃기겠지만 형돈이는 열창해
늪 원곡 부른 조관우 웃지마 / 노래 망친 것처럼 들리겠지만 /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 듣고 나면 늪에 빠져 웃지마 / 옆에 있는 명수형도 웃지마 / 드럽게 재미없다 생각하겠지만 /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 이게 진정 소울 뮤직 웃지마

너는 웃기겠지만 형돈이는 얼얼해
옆에서 구경하던 샤이니 웃지마 / 별로 안 아플 것 같겠지만 /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 살 많아서 더 아파 웃지마 / 도니 족발 자막 봐도 웃지마 / 제작진은 습관처럼 넣었겠지만 /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 나 마음만은 홀쭉해 웃지마

너도 웃기겠지만 형돈이는 더 웃어
무대 위에 있는 형돈이 웃지마 / 뭐 이런 가사가 다 있나 비웃겠지만 /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 그거 네가 쓴 가사야 웃지마 / (중략) / 아직 이 영상을 보고 앉았네? / 벌써 형돈이 랩에 중독됐나보지? / 아직 이 영상을 보고 앉았네? / 벌써 형돈이 흰자에 빠졌나 보지?

글. 이가온 thirt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