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아니어도 객석이 터지면 소름이 확 끼친다”

“주인공은 아니어도 객석이 터지면 소름이 확 끼친다”

개그맨 김기리와 서태훈을 아는가? ‘누구…?’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KBS ‘불편한 진실’에서 매주 눈물나는 우정과 사랑으로 범벅된 진부한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훈남’ 개그맨 두 명은 아는가? 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놀랍게도, 전자와 후자는 동일인물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건 막내 대열에 속하는 김기리와 서태훈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뒤에서 남을 빛내주는 역할을 도맡았던 7년차 개그맨 이종훈은 이름보다는 ‘음하하하하’ 웃음소리로 더 유명하고, 5년차 개그맨 김대성은 얼마 전까지 ‘위대한 유산’의 진행자였다가 지금은 ‘이 죽일놈의 사랑’에서 박지선이 스토킹하는 남자친구로 불리고 있다.

본인들조차 “이런 조합은 처음”이라고 어리둥절해하는 인터뷰를 진행한 건 그래서다. 얼굴을 봤을 때 대번 이름이 튀어나오는 것도, 사람들에게 각인된 대표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닌 네 명의 개그맨들이 어떻게 에서 살아남고 있는지 궁금했다. 스타가 되겠다는 욕심보다 10년 후에도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던 데뷔 시절을 지나 “이젠 내 것을 생각해야 되는” 시점에 이른 이종훈부터 대본을 뛰어넘은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김기리까지, 네 남자의 웃기고도 슬픈 생존기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어제 ‘교무회의’가 편집돼 얼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이종훈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네 명이 함께 인터뷰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조합이라 생각했나.
서태훈: 김기리 선배님, 김대성 선배님까지 듣고는 훈남들의 조합인가 했는데 이종훈 선배님도 같이 하신다니까…
김기리: (서태훈과 김대성을 가리키며) 이렇게 세 명이면 이해할 텐데 이종훈 선배님은… 뭐지?
이종훈: 으하하하하.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그랬다. 난 왜? 그 조합에 내가 왜? 넷이 친하니까 ‘누가 나랑 같이 한다고 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훈남 조합도 맞고 (웃음) 내 명품연기 4인방 콘셉트다.
서태훈: 요즘 ‘교무회의’에서 이종훈 선배님의 여자 연기 물이 오르셨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연기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여자를 많이 안다는 얘기다.
이종훈: (서태훈의 무릎을 꽉 누르며) 태훈이가 여자에 대해 많이 알려줬다. 그리고 연기는 기리가 진짜 잘한다.

“사람들이 ‘어? 그, 그 황현희! 그 불편한 진실!’이라고 기억한다”
“주인공은 아니어도 객석이 터지면 소름이 확 끼친다”
김기리는 ‘생활의 발견’ 때부터 연기력이 돋보였다. 비결이 뭔가.
김기리: 내가 있었던 대학로 소극장이 새로운 코너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코너에서 배역을 따내야 하는 시스템이라 모든 개그맨들이 다 연기를 잘했다. 그리고 이종훈 선배님처럼 생긴 분들이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들이 그냥 웃어버리니까 그 때부터 연기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걸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신보라, 송준근의 대사와 묘하게 맞물리면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는데 그 부분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표정이나 제스처 같은 디테일한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김기리: 하도 할 게 없어서 그랬다. 지금 ‘생활의 발견’ 대본을 보면 “어서오세요, 주문하시겠습니까?”외에는 대사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사를 넣을 순 없으니 송준근, 신보라 선배님 사이에 딱 서서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내가 카메라 위치를 좀 잘 보거든. (웃음)

스스로 방송분량을 확보한 셈이다.
이종훈: 같은 선수 입장에서 보면 똑똑한 거다. 잘 못하는 애들은 자기 역할만 하고 딱 빠지는데, 기리는 거기서 끝까지 뭘 해내려고 움직인다.
김기리: 나를 제일 인정해주고 좋아해주시는 선배님이다.

김기리가 ‘생활의 발견’으로 이름을 알렸다면, 서태훈은 ‘리얼리T’가 ‘불편한 진실’의 비중 있는 꼭지로 들어가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볼 것 같은데.
서태훈: 대부분 이렇게 알아보신다. 어? 그, 그, 그, 황현희! 그 불편한 진실! (웃음) 아니면 김기리 옆에 나오는 사람!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대성: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황현희로 불린다.
서태훈: 선배님들이 현희야, 라고 부르시면 둘 다 돌아본다. 그게 수식어가 됐다.

“주인공은 아니어도 객석이 터지면 소름이 확 끼친다”
‘리얼리T’는 신인 개그맨 두 명이 이끌고 가는 코너였는데, 김기리는 후배 서태훈의 연기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김기리: 그런 것보다는 태훈이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잘하는 애가…
서태훈: 아이고 선배님, 더! 더! 하하.
김기리: 잘하는 애가 만날 니쥬를 하고 있는 거다. 한 번은 보일러실로 불러서 이대로 이미지가 굳혀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태훈: ‘불편한 진실’ 코너 회의를 하다가 우리끼리만 재밌다고 생각한 아이템이었다.
김기리: 당시 황현희 선배님은 재미없다고 하셨는데 우리 둘이 눈이 마주쳤다. 마치 첫사랑에 빠지듯이.

아이템에 대한 의견만큼 연기 호흡도 잘 맞았나.
김기리: 안 맞았다. 얘는 대충하는 스타일인데 난 아니거든.
서태훈: 선배님은 진짜 디테일하게 음료수를 마시는 장면도 종이컵 각도, 손을 내리는 시점까지 계산을 하신다. 난 그냥 여기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면서 연습을 많이 안했다.
김기리: 그렇게 해서 못 살린 부분이 몇 개 있었다.
이종훈: 물론 연습안하는 거 치고는 대박이다.
서태훈: 그래도 지금은 김기리 선배님 때문에 많이 바뀌었다.

연기력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의 각종 클리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한데, 평소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
서태훈: 어디서 본 듯한, 그것도 여러 드라마에서 본 듯한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에 옛날 드라마를 많이 본다. 딱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 있는 걸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생각해 봤다는 뜻이니까.

가장 호응이 좋았던 장르는 두 남자의 청춘 드라마, 스포츠 드라마였다.
서태훈: 그게 제일 오글거리지. (웃음) 이 코너에서는 제일 식상한 걸 하는 게 제일 웃긴다. 웃기는 걸로 웃길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진짜 짜증내하는 걸 건드려서 웃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요즘엔 개그에 공감 코드가 없으면 안 좋아한다”
“주인공은 아니어도 객석이 터지면 소름이 확 끼친다”
‘교무회의’에서 이종훈의 음악 선생님 캐릭터도 마찬가지 아닌가. 여자들이 흔히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부분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서태훈: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여자들이 많은데 그런 공감대 때문에 많이 웃는 것 같다. 선배님 캐릭터는 남자들이 더 좋아할 거다.
이종훈: 요즘엔 개그에 공감 코드가 없으면 안 좋아하신다. 옛날에는 유행어, 캐릭터만 기억했는데 요즘엔 개그 내용을 기억하신다. 개그를 짤 때 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초반 ‘KJOB 스타’의 보아 캐릭터에서 지금의 캐릭터로 바꾼 것도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였나.
이종훈: 보아 캐릭터가 2주 정도 먹혔는데, 3주째부터 안 웃더라. SBS ‘K팝 스타’도 끝나가던 시점이라 두 가지를 생각했다. 완전 착각하는 걸로 가든지, 여자처럼 말하다가 남자로 꺾이는 걸 하든지. 후자는 황승환 선배부터 다른 개그맨들이 많이 했는데, 남자 개그맨이 완전 여성스럽게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얼굴과 몸이 이러니까 사람들이 역겨워하면서 재밌어할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매주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김대성은 기분이 어떤가.
김대성: ‘정말 너~무 싫습니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정~말 싫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사다.
이종훈: 나도 절대 거울 보면서 연습 안하고 모니터링도 안 한다. 역겨워서. (웃음) 근데 사람들이 자꾸 사진을 캡처해서 보내준다.

김대성은 ‘교무회의’와 ‘이 죽일놈의 사랑’에서 모두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대성: 하다보면 그런 역할이 좀 재밌다. 상대방이 무대 위에서 이상한 얘기를 하고 있으면 나도 웃기고, 그러면 관객들도 웃는다.

받쳐주는 입장에서 상대방이 터질 타이밍에 안 터질 때 그걸 살려내는 노하우가 있나.
김대성: 하… 나도 같이 당황한다. (웃음)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이종훈: 이건 오로지 웃기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살려야 한다. 나도 과묵한 캐릭터를 맡았을 때 상대방이 안 터졌다고 해서 막 멘트를 던지면서 살릴 수 없었다. 대성이도 마찬가지다.
김대성: 웃기게끔 얘기는 한다. 예를 들어 의도대로 빵 터졌으면 ‘왜 이렇게 이상한 소리를 하세요?’라고 하면 되는데 안 터졌을 때는 더 큰 목소리로 ‘뭐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러세요?’라며 흥분한다.

김대성은 처음으로 사투리를 쓰고, 주로 과묵하고 남자다운 캐릭터를 맡았던 이종훈은 처음으로 여성스러운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획기적인 변화를 위한 시도였나.
김대성: 대구 출신인데 막상 사투리를 쓸 코너가 없었다. (김)기열이 형이 내가 사람들한테 사투리로 장난치는 걸 보더니 이번에 한 번 해보자고 하더라.
이종훈: 과묵한 캐릭터가 포인트는 확실하니까 재밌긴 했지만 너무 답답했다.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2년 전부터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근데 내가 말하는 캐릭터로 나오는 코너들이 조기 조영되고, 제작진도 내가 과묵한 캐릭터가 아니면 어색해하셨다. ‘KJOB 스타’에서 보아 캐릭터가 터지니까 믿어주셨다.

내가 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반응이 좋지 않을 땐 많이 속상했겠다.
이종훈: 자신감도 많이 잃었다. 그리고 내가 짠 코너인데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데뷔했을 땐 개그맨이 됐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고 스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7년 후에도 그냥 이 무대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정말 웃긴 캐릭터를 짜도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저 사람한테 줬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그 사람이 잘해서 뜬 거고, 난 못하는 개그맨이다. 게시판에 ‘저 병풍 왜 나왔냐’는 글이 올라오면 정말 서럽고 속상했다. 이젠 내 것을 생각해야 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내가 돋보여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이종훈: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나 혼자 살았으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다. 근데 주위 사람들이 ‘넌 왜 그런 역할 안 맡아?’, ‘넌 왜 그런 거 못해?’라고 하니까 조바심이 나고 초심도 흔들렸다. 공을 많이 들였는데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때 힘들어지는 직업이니까 내가 잘 돼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김대성도 비슷한 고민을 할 시기일 텐데.
김대성: 오래간 코너가 없어서 참 고민도 많았고,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과장된 연기를 했다. 그게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러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현재까지는 나보다는 코너가 더 잘됐으면 하는 생각인데 조금 더 지나면 내가 잘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뀔 것 같다.
이종훈: 난 이미 한계를 넘어섰어.

“객석이 터지면 기분이 상쾌하고 더 웃기고 싶다”
“주인공은 아니어도 객석이 터지면 소름이 확 끼친다”
최근 인터뷰에서 “코너 ‘네가지’로 치면 난 촌에서 온 인기 없는 키 작은 남자”라고 말한 것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이었나.
김대성: 개그맨으로서 지금 내 모습을 비유한 말이었다. 기열이 형한테도 늘 얘기한다. 형은 이제 인기 있으니까 그 캐릭터는 내가 해야 된다고.

개그맨이 되기엔 외형적인 조건이 평범한 편인데 유치원 선생님의 꿈을 버리면서까지 개그맨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뭐였나.
김대성: 대학교에서 개그 동아리를 하면서 사실은 개그맨이 아니라 코믹 연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개그맨도 희극인이니까 이 길을 택했다. 드라마 출연하시는 개그맨 선배님들 보면 멋있고 좋아 보인다. 기회가 있으면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김기리도 롤 모델로 임하룡을 꼽았는데, 김대성처럼 연기에 관심이 있나.
김기리: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개그 중에서도 콩트를 좋아한다. 예전부터 SBS 의 ‘행님아’ 같은 스타일의 콩트를 하고 싶었다. 소설 라는 모티브도 있고, 아이디어를 정말 잘 짜시는 김태현 선배와 정말 잘 살리는 (김)신영이 누나가 있고, 개그인데도 기승전결이 있다.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는 코너가 드물다. ‘생활의 발견’에서도 삼겹살을 뒤집으면서 정말 진지하게 연기하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MC나 라디오 DJ가 꿈이었던 서태훈은 컬투의 정찬우로부터 “재치가 있고 입담도 세다”는 칭찬도 들었다. 버라이어티적인 재능이 있는 편인가.
서태훈: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친구들과 재밌는 일이 있었으면 다음 날 가서 원래 에피소드에 살을 붙여서 얘기하는 정도다. 여기서 웃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안 웃으니까 나도 모르게 펌프질이 들어가던 게 버릇이 됐다.
이종훈: 술자리에서도 태훈이가 분위기를 다 끌고 간다. 이런 언변은 진짜 변기수 이후 처음이다. (웃음)

코미디 외의 다른 영역도 생각하고 있는 세 사람에 비해, 이종훈은 오로지 코미디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이종훈: 어렸을 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고, 개그가 정말 좋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닥터피쉬’나 ‘착한 녀석들’을 할 때 다 같이 등장하면 객석에서 와!! 소리가 들린다. 함성소리가 살갗을 치고 지나가면서 소름이 확 끼친다.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일주일동안 힘들었던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 미친 듯이 코미디를 계속 하고 싶다.

서태훈은 아직 신인이니 이런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겠다.
서태훈: 이종훈 선배님처럼 살갗을 치고 지나가는 것까지는 못 느껴봤지만 소름은 확 올라온다. 객석이 터지면 기분이 상쾌하고 더 웃기고 싶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일주일 내내 고생해야 되는 부분이 굉장히 큰데, 그걸 받아들일 준비는 됐나.
서태훈: 전혀 문제될 게 아니다. 여기 계신 선배님들도 내 위치부터 시작하시지 않았나. 그걸 걱정하는 건 욕심이다. 당연히 감수해야지.
이종훈: 자기 고집이 세서 왜 내가 이걸 해야 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태훈이처럼 이걸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 그 시기가 잘 지나간다. 예쁨 받는 후배 중 한 명이다. 후배가 아니라 동생이다.

글, 인터뷰. 이가온 thirteen@
인터뷰.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