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손현주: “초심을 잃지 말고, 모든 걸 단기간에 끝낼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가면 되는 거다. 죽을 때 자기 연기가 완성됐다고 생각하고 죽는 사람은 없지 않나. 연기에 완성이 어디 있나. 가다 보면 좋은 게 있을 수도 있고 나쁜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의 승부인데 그걸 단기간에 뭔가 얻겠다고 하는 건 도둑놈 심보다.”
손현주, 와의 인터뷰에서

손현주
권해효: 손현주와 극단 미추에서 함께 연기를 하던 배우. 당시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공부하고, 극단 사무실에서 숙식하는 고된 생활을 하다 잠시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다. 이 때 선배가 운영하는 곱창집 주방장을 했고, 온갖 곱창요리를 하며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1,000원 빼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깨달으면서 관객들에게 돈값 제대로 하는 감동을 선사하겠다고 다짐한다. 손현주는 이 곱창집에서 일하던 도중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 본격적인 직업 연기자로 살아간다. 네 살 넘도록 말을 못하다 당시 방영하던 라디오 연속극 제목을 태어나 처음으로 말하고, 중학교 시절부터 연극을 했던 남자가 연기의 기술과 세상에 대한 경험을 쌓은 시간.

이병헌: 손현주의 KBS 동기. 데뷔 직후부터 각종 드라마의 주연급으로 활약했고, 이후 한류스타가 됐다. 반면 스스로 “(얼굴이) 넙데데한데다 그나마 성한 곳이 없다. 전봇대에 부딪혀서 코가 비뚤어졌고 턱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철심을 박았다”는 손현주는 KBS 의 ‘의사’ 편에서 병원복도를 지나가는 의사 등 단역으로 시작했다. 연기자로서 그리 쉽지 않았던 출발. 하지만 손현주는 “극단에서 마당놀이 한 번 하면 1인 10역을 맡는 것도 당연했기 때문에 배역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가 한 신만 나가서 연기하더라도 ‘내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었다”고.

황은진: 손현주가 처음으로 중요한 배역을 맡은 KBS 의 연출자. 손현주가 평생의 은인으로 꼽는다. 원래는 잠깐 출연하는 머슴 역할을 했는데, 출연이 끝날 때 쯤 연기를 더 하고 싶어서 술 마시고 운 것이 소문이 났다고. 그 소식을 들은 의 김운경 작가가 “이 촌놈의 새끼, 뭘 그런 걸 갖고 울어?”라며 계속 기회를 줬고, 손현주는 연기자로 안착했다.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게 된 KBS 역시 당시 연출자가 “사흘 나올 수도 있고 1주일 나올 수도 있고, 그 이상 나오는 건 너 하기 나름”이라 말하고 출연시켰다. 시청자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은 배역 하나가 연기자에게는 얼마나 소중할 수도 있는 것인지 보여주는 예.

송채환: KBS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최고 시청률 60%가 넘은 의 인기와 함께 극중 무명가수 주정남을 연기한 손현주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 등 두 장의 앨범을 냈을 정도. 특히 이 작품에서 손현주는 지능이 떨어지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로 출연, 본격적인 멜로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멜로는 주연 배우들처럼 극적이거나 멋있는 이야기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진 것 없고, 조금은 모자란 듯한 모습으로 일상 속에서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는 손현주의 모습은 주연배우들의 로맨스 못지않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평범한 남자의 순애보가 대중에게 먹히기 시작한 순간. 또는 손현주식 멜로드라마의 시작.

장진: 영화 에서 처음 만난 감독. 손현주는 장진이 자신처럼 도라지 담배를 피는 걸 알고 호감을 느꼈다고. 장진은 군복무 시절 도라지가 없어진다는 소식에 전매청장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손현주는 에서 계속 꼬이고 꼬인 상황을 당하는 소시민을 연기했고, 에서는 조폭 두목을 연기하기도 했다. TV에서는 대부분 순박하거나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영화에서는 신경질적이거나 악한 얼굴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 단역을 연기하던 배우가 어느 순간 TV에서 친숙한 배우가 됐고, 그 얼굴로 보여주는 연기도 조금씩 더 다양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주연 시대.

유호정: MBC 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결혼은 유호정과, 사랑은 다른 여자와 하는 불륜남을 연기했다. 딱히 돈이 많지도, 잘 생긴 것도, 이른바 나쁜 남자도 아닌 남자가 젊은 여자와 불륜에 빠지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설정이었다. 손현주 특유의 서민적인 느낌이 아니었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캐릭터. 이후 손현주는 KBS , SBS 등에서 불륜남 또는 이혼남을 연기했는데, 그럼에도 이른바 ‘불륜 전문 배우’나 ‘이혼남 전문 배우’로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은 것은 불륜 상대와 찜질방에서 계란을 깨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일상의 디테일 때문일 듯. 또한 손현주는 아내가 자신 때문에 전공인 성악을 포기한 것이 늘 미안하고, 집에서 “물 갖다줘”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으며, 가족을 생각해 집 공개를 하지 않는다.

문영남: KBS 부터 SBS 까지 손현주와 아홉 작품을 함께한 작가. 특히 은 손현주가 , KBS 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세 편으로 뽑은 드라마. 에서 손현주는 불륜을 저지르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이혼을 강요한다. 하지만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안 뒤에는 아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앞뒤가 안 맞는 캐릭터지만, 손현주는 순진하지는 않아도 순박한 느낌으로 캐릭터를 소화하며 캐릭터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은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손현주의 연기력은 오히려 이런 드라마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고 밥 벌어 먹는 사람”이라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대본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이 배우는 “무언가 담겨져 있는 바구니를 작가가 주면 그것을 열어서 어떻게 조리를 해서 맛있게 할 수 있을 까 생각할 뿐”이라는 마음으로 연기한다. 거품 따윈 없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직업적 소명에 가장 충실한 연기자의 초상.

고준희: MBC 와 SBS 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 손현주는 모델을 연기한 고준희와 사귀는 사업가를 연기했다. 자수성가로 부자가 됐고, 겉으로는 천박하고 촌스러운 듯하지만 내면에는 인간미가 살아있던 의 캐릭터는 그 당시 배우로서 손현주의 위치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KBS 에서는 주연과 조연으로 만났던 유호정을 에서는 상대역으로 만나고, 으로 최진실과 함께 미니시리즈 주연이 된 그는 그만큼 존재감이 확실한 배우로 떠올랐다. 하지만 손현주는 “이보다 더한 바닥은 없을 거 아니냐, 하루 4만 원 받고 12시 넘으면 2만 원 더 주니까 그냥 기다리는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연속극의 매너리즘에 빠져나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끊임없이 단막극에 출연한다. 후배들에게 “자기 중심이 있으면 최소한 나처럼 ‘생활 배우’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중심을 가진 채 우직하게 한 방향으로 일가를 이룬, 그저 밥값만 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배우.

에반젤리: 손현주가 단장으로 있는 장애어린이 합창단. 천주교 신부 홍창진의 권유로 창립 기금 마련부터 지금까지 에반젤리와 함께 하고 있다. 그 사이 합창단의 아이들은 20세에 가까워지고 있고, 손현주는 그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사회적 일거리를 어떻게 창출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봉사 활동을 통해 자신 역시 성장하고 있는 셈. 그는 봉사에 대해 “움직이면 목표가 생기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연기 역시 봉사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늘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의무”가 있다는 것. 배우의 자의식을 내려놓고,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되, 그것을 최대한 성실하게 하면서 조금씩 깊이를 쌓아간다. 이만하면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연마, 큰 바위 얼굴에 가슴이 넓은 남자 상”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거의 실천한 것인지도.

김상중: 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 손현주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에 맞서는 형사로 출연한다. 다시 말하면, 는 손현주의 분노와 열의의 에너지로 움직이고, 그렇기에 손현주밖에 할 수 없다. 딸의 상태가 잠시 호전되자 아내 옆에서 방귀를 뀌면서 웃을 만큼 평범한 소시민인 동시에 권력에 물러서지 않고 돌진하는 남자의 연기는 손현주 아니면 생각하기 어렵다. 는 평범한 시민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사를 방해하는 권력에 맞서 어떻게든 기어올라 권력의 상투를 잡아채는 이야기다. 그리고 손현주는 가장 평범하게 데뷔했고, 평범한 역할을 하면서 결국 비범한 배우로 자리 잡았다. 손현주처럼 “부도덕하게 부나 명예를 거머쥐면 반드시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발언이 진심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손현주는 지금 그것을 할 수 있는 배우다. 우리 안에서 나온, 우리의 이웃 같은 배우. 그 배우는 에서 우리의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Who is next
손현주와 함께 영화 에 출연한 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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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기자 t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