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조용히 쌓인 눈의 위력

“너 정말 하얗구나” 박유천을 보면 떠오르는 이 문장은 물론 그가 출연한 라면 광고의 카피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박유천은 보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는 하얀색이다. 의욕과 호기심으로 가득 하지만, 아직 특정한 이미지에 구속되지 않는 그는 배우로서 어떤 그림이라도 그려질 준비가 되어 있기에 하얗게 보였다. 소년의 웃음과 남자의 어깨 사이에서 분명한 미숙함이나 완연한 성숙함으로 규정되지 않았기에 투명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SBS 의 마지막 회가 끝난 후, 더 이상 그는 새 캔버스나 빈 칸이 아니었다. 제법 제 몫을 해 낸다고 생각했던 이 신인 배우는 어느 순간 노련함이나 능숙함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장면들을 만들어 냈고, 급기야 화면을, 사건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색으로 칠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박유천은 정말 하얗다. 대신 밤사이에 내린 눈처럼, 그가 가진 순백의 정서는 단점의 발자국들을 감쪽같이 덮어 버릴 만큼 두텁고 위력적인 무기로 다듬어져 있었다.

결국엔 작품 전체를 설득시킨다
박유천│조용히 쌓인 눈의 위력
말하자면 홀인원을 종종 해내는 초보 골퍼의 경기를 보는 기분이다. 발음과 발성, 호흡과 동선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박유천은 신인으로서의 경력을 숨기지 못한다. 자세도 완전하지 않고, 퍼팅에도 서투르고, 언제 벙커로 공을 날려버릴지 몰라서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 하게 만드는 선수인 셈이다. 그러나 연습으로 실력을 쌓은 프로들도 마음대로 불러올 수 없는 홀인원으로 승부를 결정지어 버리는 묘령의 힘처럼, 박유천은 때때로 테크닉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감수성을 통해 시청자들과의 담판에서 승리한다. 대사와 지문을 놓고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 지적할 것들이 있겠지만 이각이 조선에 떨어졌을 때의 당혹감이나 박하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과 같이 정황에 대한 표현은 충분히 전달해 낸다. 훌륭한 배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연기의 이퀼라이저가 보통의 균형과 달리 조율된 배우인 것이다.

가수 출신의 신인배우들 중에서도 유독 박유천의 연기에 대해 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객관식 채점법으로는 미달인 답안지가 서술형 평가에서는 시험관을 만족시키는 사례다. 배우에게 훈련된 테크닉을 원한다면 그는 연기의 미학에 접근하지 못한 초보이지만, 배우의 몫이 인물을 설득하는 것이라면 박유천은 신기하게도 지름길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KBS 의 이선준이나 MBC 의 송유현이 보여준 성과와 한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풋풋한 그의 연기에서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모성애를 자극하는 인물의 특성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의 연기에 설득 당했으며, 나아가 드라마의 세계관에 동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유천이라는 열쇠에 들어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가 연기한 인물은 물론, 작품까지도 평가의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계산이 없어서 좋은 배우”라는 한지민의 평가는 분명 칭찬이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도박이기도 하다. 패가 뒤집어 지는 순간, 박유천을 향한 미지근한 평가는 없다. 동의하거나 부정하거나, 보는 사람의 입장은 선명하게 나뉘질 뿐이다.

120을 보여주고 싶은 배우의 캔버스
박유천│조용히 쌓인 눈의 위력
박유천이 자신의 연기 과정에 대해 “자연스럽게”라는 표현을 유독 많이 사용한 것은 그래서 주목할 부분이다. 그는 대본을 통해 자연스럽게 매력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인물에 동화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연기에 반응했다. 그에게 자연스러움이란 극사실주의적인 생활의 복원이나 빙의에 가까운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그저 캐릭터를 이해하고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설계도를 그리는 대신 “이각의 진지함과 근엄함만을 밀어”부쳐야겠다고 판단하거나, “더 이각이 되어 버리면 용태용을 연기하는 이각 역시 연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정하는 것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도출된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리고 또박또박 반듯한 길을 찾아 걷지는 않지만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박유천의 도박은 점수를 얻는다. 하지만 여전히 네비게이션 밖을 걷고 있음으로서 다음번에도 그는 경보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흥미로운 것은 가 시청자에게 소구하는 방식이 이러한 박유천의 연기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지점이다. 개연성과 논리, 캐릭터의 운용과 조율 등 드라마는 많은 부분에서 실패를 적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이라는 주제만큼은 확실하게 구현 되었고, 그 하나의 찬란함으로 다른 단점들은 희석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중요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드라마는 기상천외한 시퀀스를 만들거나 회자되는 명대사를 동원하는 대신 배우를 통해 시청자가 그것을 믿도록 만들었다. 이각의 사랑은 박유천의 눈빛, 박유천의 목소리, 박유천의 진심을 통해 설명되었고, 배우와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같은 속도로 같은 지점에 도달한 덕분에 20회의 마지막 장면은 작품이 쌓아온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이미 작가님의 진심이 전해졌다”는 박유천의 말이 인사치레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120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가 허무맹랑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인물을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박유천의 이퀼라이저는 기대 이상의 숫자를 기록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불안한 신인 배우이고, 또다시 기대하게 되는 유망주다. 그리고 양쪽 모두 계속해서 지켜보게 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의 힘을 발휘한다. 흰색이 결국에는 물들어 버릴지, 새하얗게 뒤덮어 버릴지, 결과가 궁금한 것은 매한가지니까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