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이엘 “과거에는 외모가 단점…틈새시장 노렸죠”

[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영화 '바람 바람 바람'에서 제니 역을 맡은 배우 이엘 / 사진제공=NEW

영화 ‘바람 바람 바람’에서 제니 역을 맡은 배우 이엘 / 사진제공=NEW

“제가 연기한 제니는 솔직해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죠. 또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인물이에요. 저 역시 그렇거든요. 저랑 닮은 점이 많은 캐릭터라 애착이 갑니다.”

영화 ‘바람 바람 바람’에서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제니를 연기한 배우 이엘이 이렇게 말했다. ‘바람 바람 바람’은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바람의 전설’ 석근(이성민)과 뒤늦게 바람의 세계에 입문한 매제 봉수(신하균), 봉수의 아내 미영(송지효) 앞에 치명적 매력의 제니(이엘)가 나타나면서 관계가 꼬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니는 모든 인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본인이다. 석근과 친구가 되고 아내가 있는 봉수를 유혹하는 모습은 비도덕적이지만, 이엘은 제니의 행동보다는 그의 감정에 집중한 연기로 설득력을 높인다. 이엘은 단순히 섹시한 캐릭터가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최근에 했던 연기 톤 때문에 섹슈얼한 말투가 배어 있더라고요. 담백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꽤 어려웠습니다. 미묘한 차이로도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거든요. 이병헌 감독님의 지시를 많이 받았고 한 신을 여러 번 촬영하기도 했어요. NG(엔지)도 많이 냈죠. 하하.”

영화의 배경이 제주도여서 이엘을 포함한 모든 배우들은 제주도에서 합숙하며 촬영했다. 영화에 담긴 인물들의 찰떡 호흡이 마냥 연기는 아니었던 것. 이엘은 함께 연기한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가족 같다”며 해맑게 웃었다.

“촬영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는 길에 매니저들을 보내놓고 우리끼리 드라이브를 했어요. 바다 구경도 하고 맛집에도 갔죠. 맥주 한 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게 행복했어요. 우리가 가까워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니까요. 영화 홍보 일정을 소화하면서 더 끈끈해졌어요. 최근에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했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뜬 걸 보고 하균 선배가 캡처를 해서 보내줬어요.”

배우 이엘이 함께 연기한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를 두고 "가족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 사진제공=NEW

배우 이엘이 함께 연기한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에 대해 “가족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 사진제공=NEW

2009년 데뷔한 이엘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황해’(2010)에서 주영 역을 맡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주목받기 시작했고 ‘내부자들’(2015)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이후 드라마 ‘도깨비’(2016) ‘화유기’(2017) 등 화제작에 잇따라 출연하며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는 인터뷰 전날인 지난 25일 연극 ‘아마데우스’ 첫 공연을 했다. 목소리가 갈라진 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첫 공연이라 너무 오버했다”며 행복하게 웃었다.

“친한 (조)정석 오빠와 (김)재욱이, 연출 선생님을 볼 겸 ‘아마데우스’ 연습실에 놀러간 적이 있어요. 모차르트의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희열을 느꼈죠. 저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늦었을지 모르지만 제가 합류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봤어요. 선생님은 ‘고생하겠지만 함께 하면 좋겠다’고 했죠. 급하게 출연을 결정할 정도로 홀려버렸어요. 지금 너무 바쁘지만 오히려 배우고 있어요. 복잡한 상황에서도 집중하는 힘을 기르고 있죠.”

쉬지 않고 달린 덕분일까. 이엘은 맡은 캐릭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하며 특유의 존재감을 뽐낸다는 평을 듣는다. 사실 시작부터 승승장구는 아니었다. 지금은 개성 있는 미모로 꼽히지만 그가 연기를 시작하던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제 외모는 단점이었어요. 어떤 작품에 어떤 역할이 어울릴지 모르는 얼굴이잖아요. 하하. 그 덕분에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었죠. 중성도 아닌 무성의 느낌을 냈으니까요. 트랜스젠더 역할을 두 번이나 하면서 재미를 느꼈어요. 삼신 할매, 요괴 등 특이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됐죠. 지금은 외모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엘은 작품에서 만큼은 배우가 아니라 온전히 캐릭터로 보이는 것이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기에 대해 말할 땐 누구보다 열정적인 이엘이지만 일상은 다소 평범했다. 혼자 밥 먹고 미술관에 가고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MBC ‘나 혼자 산다’ 출연을 추천했더니 “너무 재미가 없어서 못 나간다. 아마 음소거 방송이 될 것”이라며 웃었다.

올해 서른일곱. 연애와 결혼에 대해 묻자 “지금은 독신주의자”라고 밝혔다. “이런 생각을 흔드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결혼을 할 수도 있다”면서도 기혼자가 책임져야 하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설명했다. 결혼 대신 예술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출연 중인 ‘아마데우스’에서의 대사 “욕구는 주셨는데 재능은 안 주셨다”를 언급하며 “딱 내 얘기”라며 웃었다.

“연기 외적으로 저를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실력이 부족하죠. 그림도 그리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악기도 다뤄보고 싶어요. 요즘은 춤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에 도전하는 데 늦은 시기는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 이엘이 "그림, 글쓰기, 춤 등 예술 활동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NEW

그림 그리기, 글쓰기, 춤 추기 등 예술 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배우 이엘. / 사진제공=NEW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