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장고 인 멜로디’ 난 음악을 모르지만, 음악은 나를 압니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장고 인 멜로디' 포스터

/사진=영화 ‘장고 인 멜로디’ 포스터

1945년 5월 해방된 파리에서 ‘집시 형제들을 위한 진혼곡’이 연주됐다. 작곡자는 장 라인하르트(1910-1953), 일명 ‘장고’였다. 공연 장소는 시각장애인아동협회 성당. 장고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 당한 모든 집시들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장중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창으로 진혼곡이 연주되는 동안 올라오는 곡 설명이다.

‘장고 인 멜로디’(Django, 에티엔 코마 감독, 극영화, 2017년, 117분)의 자체 홍보에서는 “단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자유를 연주한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장고에 대한 기록”이라 한다.

장고(레나 카텝)는 원래 떠돌이 집시로서 기타연주자다. 나라 없이 온 유럽을 떠도는 게 집시의 운명이었으니 정식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악보도 읽지 못하고 글도 모르지만 음악 재능과 연주 솜씨가 워낙 뛰어나 파리의 ‘닥터 재즈 극장’에 발탁되었다. 그가 연주하면 객석은 늘 만원이었다.

장고가 파리에 머물던 1943년, 프랑스는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 있었다.  ‘장고와 핫 클럽 5중주단’의 연주를 접한 베르너 에프만 대령은 악단의 독일 투어를 제안한다. 말이 좋아 제안이지 실은 명령에 가까웠다.

그는 특히 고급장교들의 파티에서 연주를 요청했는데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대령이 내린 지시에 따르면 흑인 음악은 절대 안 되고 스윙은 전체 연주의 20% 미만, 연주 중 발 구르기 금지, 발목에 매다는 방울 악기 불가, 더블 베이스 연주자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인사하기 등.

독일에 가면 다신 못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짐작한 장고는 스위스로 피신하려 파리를 떠나 토농 레 뱅에 도착한다. 스위스와 프랑스가 맞닿아 있는 레만 호숫가의 도시다. 파리 사교계의 꽃이며 장고의 애인인 루이즈(세실 드 프랑스)가 피신을 주선했는데 그만 차질이 생겨 장고는 두 달 동안 토농에 머무르고 결국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독일로 압송되기 전 독일 장교 파티에서 연주하라는 지시를 받은 후 그는 모든 인맥과 재능을 동원해 어머니와 아내,  집시 친척들을 피신시키려 한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했고 장고는 자신의 눈앞에서 집이 불타고 친척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만다. 영화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다.

2차 대전 때 재능 있는 음악가가 스위스로 망명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게 없는 간단한 내용이다. 하지만 몇몇 장면은 꼭 기억에 담아둘 만하다.

우선 독일의사가 장고의 신체검사를 하는 장면이다. 그는 갖가지 측정기구로 장고의 두상과 체형을 재다가 왼쪽 두 손가락이 불구이고 손등에 뭉쳐 있는 근육을 보더니 한 마디 던진다. “근친 교배가 계속되면서 나타난 퇴보 현상이요, 그리고 이건 선천성 근육 위축증과 단지증의 전형적인 경우네.” 의사의 엉터리 진단에 장고는 “어릴 적 화상을 입은 건데요”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것은 프랑스인들마저도 장고와 그의 가족을 야만인으로 간주해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럽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전통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통계를 보면 유대인은 2차 대전 때 600만 명이 살해 당했다지만 집시들은 유랑민이라 그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그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인들도 아마 ‘양심의 소리’라는 유혹(!)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심의 깃발이 나부껴야 할 자리에 총통의 명령이라는 깃발을 세워놓았고 스스로 합리화 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평가했다. “맙소사, 독일인들은 그런 유혹에 어떻게 저항하는지 배워버렸다.”

또 하나는 장교 파티에 앞서 함머슈타인 중위가 지시를 하는 장면이다. 식사 중엔 피아노 연주만 한다, 화성 장음계는 좋지만 블루스는 안 됨, 당김음은 5% 미만, 즉흥곡은 금지, 독주는 5초 이하, 알레그로와 프레스토는 자제한다. 일장 연설을 마친 후 중위는 장고를 깔보는 듯 거만한 자세로 물어본다. “네가 음악을 알기나 해?” 장고는 대답한다. “난 음악을 모르지만, 음악은 나를 압니다.”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온 몸으로 받아낸 비극적 운명을 다룬 영화이니만치 역시 최고의 장면은 그의 연주를 재연하는 것이다. 장고는 관객이 가득 들어찬 무대에서나, 싸구려 술집에서나, 겉멋만 잔뜩 든 독일 장교 파티에서나, 심지어 가족들 앞에서도 최고의 연주를 한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아무리 마음이 굳은 냉혈한이라도 어깨를 흔들 수밖에 없다. 필자의 글 솜씨로 장고의 능력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필자 역시 영화를 보면서 흥이 절로 나 발을 구르게 되었다. 그처럼 음악은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장고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다. 그녀는 할머니임에도 모든 연주 섭외와 돈 관리를 하며 아들만 만나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아들의 연주에 어머니가 보여주는 표정 변화와 자세에 주목하기 바란다. 얼마나 깊이 있게 아들의 연주를 받아들이는지 알게 될 것이다.

독일에 살던 시절 밴드를 하던 독일친구에게 장고에 관한 이야기를 스쳐가듯 들은 적인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죽은 장고에게 다시금 숨을 불어넣어준 영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장고 인 멜로디’는 제67회 베를린영화제 공식 개막 작품이었다.

박태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