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초점] “표정, 다시”…누가 이윤택을 ‘괴물’로 만들었나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사진=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논란에 대해 공개 사과한 연출가 이윤택. /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과를 하고 있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타고난 연출가여서 리허설 없이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해 수년 간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사과를 하는 자리도 꼼꼼하게 리허설을 거쳤다. 연극계에서 영구 제명 당한 극단 연희단거리패 전 예술감독 이윤택 이야기다.

이윤택은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를 비롯해 연희단거리패 단원이었던 배우 등 여러 여성 연극인들이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지난 19일 오전 기자들을 불러 ‘공개 사과’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성추행은 인정하면서도 성관계에 강제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윤택의 말이 거짓이라고 반박하며 또 다른 배우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심지어 임신에 낙태까지 고백하며 사태는 커졌다. 이윤택은 서울연극협회, 한국극작가협회 등에서 영구 제명 당했고, 30년간 키워온 연희단거리패는 해체됐다. 그럼에도 논란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윤택의 사과는 개운하지 않았다. 1년 전에도 이윤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나왔지만 연희단거리패 측이 침묵하고 방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이윤택의 공개 사과 기자회견에서 “성폭력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며 구차하게 해명했다.

김소희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극단 해체를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홍선주는 최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에 대해 “(이윤택에게 해야 하는) 안마를 조력자처럼 시키고 후배들을 선택하는 역할을 했다. 안마를 거부했더니 쟁반으로 가슴팍을 밀고 치면서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이냐. 빨리 들어가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방관이 아니라 명백한 가담이다.

급기야 이윤택의 사과 기자회견 역시 잘 짜인 ‘쇼’라는 주장도 나왔다. 연희단거리패의 배우이자 상임 연출가 오동식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이윤택 전 감독과 단원들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연극 리허설처럼 사전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이윤택은 단원들에게 ‘안마로 인한 성추행 말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제보가 사실입니까?’ ‘낙태는 사실입니까?’ 등 예상 질문을 하게 했고, 자신은 “사실이 아니다”고 답변을 연습했다고 한다. 경악할 만한 사실은 이 과정에서 김소희 대표가 “선생님(이윤택) 표정이 불쌍하지 않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조언했고, 이윤택은 다시 표정을 지으며 “이건 어떠냐”고 물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동식은 “일부 단원이 이윤택에게 성폭행을 당해 낙태한 배우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윤택과 김소희 대표 등은 연희단거리패의 해체를 결정하면서 언론이 잠잠해지면 약 4개월 뒤 극단을 재건할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오동식은 “연희단거리패를 버리고 극단 가마골로 모여 이 일이 잠잠해진 4개월 뒤 다시 연극을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 전 감독은 자신이 당분간 연극을 나서서 할 수 없으니 앞에는 저와 같은 꼭두각시 연출을 세우고 간간이 뒤에서 봐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소희 대표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으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 진심이 필요하다’는 의도에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소희 대표가 진심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극단 해체를 결심했다면,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안 씻지 못할 상처를 입은 후배들을 챙기는 게 먼저 아니었을까. 성폭력 가해자의 사과 기자회견마저 마치 새로운 공연을 올리듯, 다른 표정을 지어보라고 권유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