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러스트 앤 본’, 언제라도 내뱉는 한 마디 “너를 사랑해”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러스트 앤 본' 포스터

/사진=영화 ‘러스트 앤 본’ 포스터

쥬 뗌므(je t’aime)!

이 한 마디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로 보이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연출력이 뛰어난 감독이라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이 한마디가 적재적소에서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스테파니(마리옹 꼬띠아르)와 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서로 사랑하지만 무엇인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을 하기는 멋쩍다. 각자의 처지도 처지려니와 두 사람의 성격이 선뜻 말을 내뱉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경우이기에 두 사람은 그토록 자기표현을 못할까?

‘러스트 앤 본’(De rouille et d’os, 자끄 오디아르 감독, 극영화/애정물, 프랑스/벨기에, 2012년, 120분)은 분명 애정물인데 무엇인가 색다르다.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겠다.

알리는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원래 벨기에에서 킥 복싱 선수였지만 아내가 갑자기 떠나버리면서 5살 아들 샘을 혼자 떠안는다. 제 맘대로 무책임하게 살아왔던 까닭에 아들의 존재는 심히 부담스럽다.

고민 끝에 프랑스에 사는 누나에게 아들을 맡길 요량으로 돈 한 푼 없이 벨기에를 떠난다. 다행히 누나 마린과 매형 리차드는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라 샘을 맡아주는 것은 물론 알리의 취직 자리까지 알선해준다. 무책임한 아빠가 열악한 조건에서 과연 아들과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스테파니는 놀이공원에서 범고래 조련사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팀원들을 이끄느라 무대 중앙에서 진두지휘를 하는데 어느 날 사고가 터져 두 다리를 잃고 만다. 갑자기 통제 불능이 된 범고래가 발을 물어뜯었던 것이다.

사실 범고래의 외모는 그럴싸하지만 상어를 사냥할 정도로 거친 동물이기는 하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쳐버리면 이런 꼴이 되기 십상이다. 이제 휠체어 신세를 져야하는 스테파니는 몇 달 전만 해도 아름다운 외모와 강인한 체력으로 부러울 것 없는 처지였다. 과연 그녀가 목숨을 부지해나갈 수 있을까?

‘러스트 앤 본’은 칸 영화제 공식초청작이었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여우주연상어까지 노미네이트된 수작이다. 자칫 빤한 애정물이 될 수도 있었던 영화에 왜 심사위원들이 주목했을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마리옹 꼬띠아르가 기울인 각고의 노력에 감동한 것일까, 아니면 거리의 파이터로 상대를 한 방에 제압하는 알리의 거친 모습에 시선이 꽂힌 것일까?

사실 영화를 보면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에 감탄할 만하다. 분명 두 다리가 멀쩡한 배우인데 무릎 아래로 발이 잘려나간 게 영 CG 같지 않은 현실감이 있다. 또한 약간은 권태로웠던 모습에서 엄청난 좌절을 겪어내고 다시 한 번 도약하기까지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상황을 그려냈는데 연기변신이 뛰어났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본능에 충실한 남성 알리는 몇 번이나 거리에서 맨주먹으로 싸운다. 어금니가 빠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눈이 퉁퉁 붓도록 얻어맞는데 한 번도 지는 법이 없다. 마치 실제 격투기를 보는 듯 패기가 넘쳐났다. 뛰어난 연출력이다. 게다가 맘이 내키는 대로 애정도 없이 성관계를 갖는 게 꼭 감정 없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알리는 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 지 궁금했다.

사실 제목만 보고는 ‘뼈와 가죽’이 영화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두 인물의 묘사를 보았더니 그런대로 이해가 갔다. 이 세상에는 종종 뼈와 가죽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감독은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매우 경솔한 짓이라고 경고한다.

바닥 생활을 하는 남자라고 해서 무시해선 안 되고 두 발이 없는 여인이라고 경계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을 하지 않는가!

영화를 두 번 보았는데 처음에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어 쫓아가기에 바빴고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러스트 앤 본’이 갖는 특유의 애정물 공식을 읽어낼 수 있었다. 스테파니가 샘에게 모성애를 느껴 알리에게 측은지심을 가진다는 구태의연한 공식도 없고 두 사람이 서로를 공적으로 대하느라 성관계도 마치 업무처럼 느껴졌다.

싹수가 안 보이는 사랑이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을 확인하고야 만다. 누군가 절박한 처지에 놓이는 순간, 또 한 사람의 절박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방에만 처박혀 있던 스테파니를 알리가 번쩍 들어다가 바다로 향한다. 그날 스테파니는 해가 어두워질 때까지 수영을 했다.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표시였다.

알리가 흠씬 얻어터져 땅바닥에 뒹굴던 날 의족을 한 스테파니가 미니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알리는 일어선다. 스테파니 덕분에 그에게도 새로운 삶이 열린 것이다. 두 장면이 참 좋았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순간이 닥치더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래서 손가락 마디뼈가 잘게 부서져 펀치를 날릴 때마다 마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박혀있는 듯 고통스럽더라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비록 수줍지만 언제라도 내뱉어야 하는 한 마디.

너를 사랑해, 쥬 뗌므!

박태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