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박세라 “‘은명’, 지금껏 겪지 못했던 신선한 경험”

[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박세라 인터뷰

영화 ‘은명’을 통해 처음 연기에 도전한 모델 박세라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올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받은 영화 ‘은명’(감독 김한라)의 영문 제목은 ‘Goner’다. 극 중 퇴물이 되어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이 든 모델, 은명을 의미하는 말이다. 영화 ‘은명’이 울림을 주는 건 실제 10여년 경력의 모델 박세라가 연기한 덕분이다. 몇 년 전까지 은명과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했던 그는 관객들에게 은명의 괴로운 마음을 그대로 전달한다. 관객들은 서서히 은명의 마음에 동화되고, 그가 느끼는 답답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박세라는 이전까지 한 번도 연기를 해 본 적이 없다. 모델 일이 타성에 젖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법한 시점에 박세라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했다.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어느 누가 극 중 은명에게 했던 것처럼 박세라를 멸시할 수 있을까. 박세라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모델이다.

10. ‘은명’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 받았을 때 기분은?
박세라: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배우를 꿈꾸던 사람도 아니고 우연히 소속사의 도움을 받아 영화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 영화가 영화제에 출품되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게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10. 소속사에서 영화 출연을 권유했나?
박세라: 소속사 대표님이 ‘은명’ 시나리오를 읽고 “이건 박세라가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가진 우울함을 일찍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다.(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 칭찬도 많이 받았다.

10.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데 처음 ‘은명’ 출연을 제안 받고 뭐라고 했나?
박세라: 하겠다고 했다.(웃음) 대신 쉽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있다. 다른 배역은 정말 많은 오디션을 봤다고 들었다. 나는 감독님과 첫 만남 자리가 오디션을 보는 자리인지도 모르고 그냥 갔다. 감독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회사 스태프가 대본을 주면서 감독님 앞에서 읽어야 한다고 해서 당황했다.

10. 오디션은 잘 봤나?
박세라: 읽을 수는 있지만 연기의 ‘연’자도 몰라 감정적인 부분이 잘 드러날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끝까지 안 들었다.(웃음) 한번 대본을 쭉 읽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감독님께 얘기했다. 내가 은명 역을 소화할 수 있을지 감독님께서 전체적으로 테스트를 한 거였다.

10. 처음 연기를 해 본 소감?
박세라: 정말 재미있었다.(웃음) 배우들처럼 연기하는 건 아니었지만 화보 촬영을 할 때, 패션쇼에 설 때 나름대로 옷에 어울리는 눈빛과 행동들을 보여주려 했다. 워킹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느낌을 그대로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려고 했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연기를 한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박세라 인터뷰

박세라는 첫 연기 도전이었지만 극 중 역할의 직업도 모델이었기 때문에 캐릭터에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 사진제공=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연기 경험은 없었지만 극 중 은명의 직업이 모델이라 편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박세라: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모델 역할이기 때문에 “해 볼만 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몇 년 전 나도 은명처럼 고민했고, 그가 느낀 감정들을 충분히 느꼈다. 또 그 감정들을 추스르는 과정도 경험했고.

10. 은명의 어떤 부분들에 공감했나?
박세라: 후배들이 준 케이크를 은명이 억지로 먹고 화장실에 가서 토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어릴 때 음식을 먹고 토해본 적이 있다. 집에서 혼자 워킹 연습도 했고, 내가 아니라 후배 모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옮겨가는 걸 느끼면서 ‘난 지금 여기 왜 서 있지?’ 하고 생각도 했다.

10. 은명에 많이 공감한 만큼 연기할 때 몰입도 많이 됐을 것 같다.
박세라: 영화를 3회에 걸쳐 찍었는데 1~2회차는 이틀 연이어 찍었다. 그런데 이틀 촬영이 끝나니까 너무 우울해 미칠 것 같았다. 친하게 지내는 모델 스테파니 리를 만나서 영화 얘기를 하면서 우울한 기분을 좀 풀었다. 모델을 다룬 이야기라 처음 연기를 했음에도 마치 내 이야기처럼 굉장히 몰입했다.

10.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박세라: 영화에선 결국 편집이 됐는데, 부모님이 시골에서 보내준 반찬거리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장면이 있다. 부모님의 마음은 알면서도 직업상 마음껏 먹지 못하는데 그걸 알아주지도 않고 먹을 걸 보냈다고 답답한 마음에 짜증을 부리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특히 집중해서 찍었다.

10. 은명처럼 스포트라이트가 점차 자신을 비껴가고 있다는 걸 느낀 적이 있나?
박세라: 일을 10년 넘게 했지만 매체나 광고 쪽으로 순조롭게 일이 풀리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5년 차가 됐어도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일이 기회가 돼 그때부터 조금씩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 후 절박한 마음보다는 지금 내 나이에 가능한 일이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을 하고 있다.

박세라 인터뷰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박세라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영화를 보면 디자이너가 ‘옷은 젊을 수 있지만 사람은 아니다’라고 은명에게 말한다. 모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날카롭게 느껴지는 대사였다. 
박세라: 영화의 주인공인 은명이 모델일 뿐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어린 후배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에 대한 고민 같은 것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울면서 영화를 봤다. 난 여전히 모델로 살고 싶고,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건 카메라 앞에서의 모습인데 나이라는 외적 이유 때문에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10. 앞서 ‘은명’과 비슷한 고민들을 했지만 잘 추스렸다고 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나?
박세라: 이건 박세라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모델이 되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린 모델들이 가능한 일이 있고, 아직 그들은 표현 못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도전을 해가며, 40세가 돼도 찾아주는 모델이 되는 것이 목표다. 그때까지 모델로서 열심히 일 해보려 한다. 회사가 든든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10. SNS에 ‘은명’을 소개하며 ‘수많은 기회와 도전 속에 각자의 실패와 성공을 경험한다’고 썼다. 자신에게 ‘은명’은 성공인가?
박세라: 성공이다. 아무래도 연기를 배운 적이 없다보니 촬영하면서 작은 실패들을 경험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경험이다. 또 ‘은명’을 찍고 욕심이 조금 생겼다. 연기를 배워보려고 연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은명’을 찍으면서 발성에서 부족하단 걸 많이 느꼈다. 영화를 볼 때 내가 말하는 장면이 나오면 손발이 오그라든다.(웃음) 나중에 좋은 기회를 만나 다시 한 번 연기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나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10. 욕심 나는 역할이 있는지?
박세라: 키 때문에 역할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웃음) 이번처럼 이 역할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바로 하겠다고 말할 수 있게 기초를 다져두고 싶다. 연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연기를 경험하고 나니까 에너지가 생겼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다는 감독님 연락을 받고 가슴 속 깊이 뭔가가 끓어오르는 데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10. 여러 모로 ‘은명’은 좋은 자극이 된 셈인데.
박세라: 내가 모험심이 없다. 밥을 먹더라도 좋아하는 식당 몇 군데만 돌아다닌다. 진짜 맛있다고 검증된 집만 새롭게 가는 편이다. 취미도 보통 앉아서 할 수 있는 자수나 꽃꽂이를 좋아했다. 그런데 ‘은명’ 이후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차올랐다. 연기뿐만 아니라 도자기 만드는 교실에도 등록해뒀다.(웃음)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