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리뷰] ‘1987’ 광장이 만들어낸 힘,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

[텐아시아=박슬기 기자]
영화 '1987' 포스터/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1987’ 포스터/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 한 마디는 불과 30년 전, 억울하게 죽은 고(故)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두고 경찰이 한 말이다. 언론을 통해, 교과서를 통해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이 말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987년 독재에 항거하며 억울한 죽음을 당한 대학생을 위해 모두가 거리로 뛰어들었다. 무자비한 폭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당하면서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냈다. 모두가 외쳤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영화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당해 피살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석)은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 화장을 경찰에 요청하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최 검사(하정우)가 부검을 밀어붙이면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첨예한 대결이 시작된다.

이 가운데 박 처장을 연기한 김윤석은 등장만으로 위압감이 대단하다. 어떤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가 가진 무게감과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악의 축이자 중심이 되어 영화를 끌고 가는 김윤석의 ‘인생 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다소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정우의 소소한 말장난과 유쾌한 연기가 극에 재미를 더한다. 상업영화의 특색이 짙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곧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한몫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1987’의 전개 방식은 다소 독특하다. 다양한 인물들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등장한다.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사회부 윤 기자(이희준),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한병용의 조카이자 87학번 신입생 연희(김태리)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비춘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담았는데 이는 곧 영화에 출연한 모든 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연희는 거리로 나서 시위하는 학생에게 말한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 날 같은 거 안 와요. 꿈꾸지 말고 정신 차려요”라고 말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한 마디지만 이후 연희는 깨닫는다. ‘나 한 명쯤이야’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모여 큰 힘을 내는 거’라고 말이다.

한 명, 한 명이 모인 광장은 큰 힘을 발휘한다. 그들의 뜨거운 투쟁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신기하게도 30년 뒤, 이 영화는 마치 현재의 우리 모습을 비추는 듯하다.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 자녀들과 손잡고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뛰어들었다. 또 한 번 싸웠고 희망을 품게 됐다.

영화에는 박희순, 문성근, 우현, 설경구, 오달수, 고창석, 김의성, 조우진, 강동원, 유승목, 여진구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상당수가 직접 그 시절을 겪었던 데다 연기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배우들이다.  극 중 캐릭터와 하나가 된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더했다.

많은 배우들이 열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건 장준환 감독이다. 그는 수천 장의 자료를 찾아 철저한 고증을 토대로 세트장을 완성했다. 4만5000평의 부지에 오픈 세트를 지었고 연세대학교 정문부터 시청 광장, 명동 거리, 유네스코 빌딩, 코리아 극장 등을 되살렸다. 건물의 크기부터 자재 하나까지 당시에 사용됐던 소재로 되살려 관객에게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영화 ‘1987’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잊고 있었던 현대사의 한 줄기를 온전히 되짚어보게 한다.

15세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9분, 27일 개봉.

박슬기 기자 ps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