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세 번째 살인’ 다큐멘터리언 감독의 날렵한 변화구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세 번째 살인' 포스터

/사진=영화 ‘세 번째 살인’ 포스터

국내에 많은 팬이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가 개봉됐.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많은 영화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사람의 깊은 곳 어디를 묵직하게 건드려 ‘인간적으로’ 눈물을 멈출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은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리얼리즘적인 측면과 동시에 영화미학 측면에서의 모더니즘 경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런 감독의 법정 극영화에 영화팬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세 번째 살인’의 이야기는 아버지가 판결한 살인자의 두 번째 살인사건을 아들이 변호하면서 시작한다. 변호사 시게모리는 사형 구형이 예상되는 미스미씨를 감형시켜주기 위해 미스미씨의 주변을 탐문을 시작한다.

시게모리는 재판의 전략적 요소로써 살인 동기에 대한 의문을 파고들지만, 변호사의 이 법리적 의문은 곧 인간적인 의문, ‘이 사람은 어쩌다가 살인을 저질렀을까?’로 변한다. 그리고 그는 곧 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고 싶어 몰입한다.

30여 년을 건너서 일어난 두 개의 살인사건에서 아들은 이 범죄의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아버지 시대의 판단은 당시에는 보편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어쩌면 반복되고 어쩌면 완전히 다른 이 두 개의 살인사건 앞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분투하는 시게모리는 영화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감독과 닮아있다.

감독은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의미를 창조하고 전달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유리의 활용이 돋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닫혀있는 실내공간과 유리창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투명하지만 차가운 유리 벽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법 체계와 법 정의의 온도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에까지 화두가 확장되는 것이다.

/사진=영화 '세 번째 살인' 스틸컷

/사진=영화 ‘세 번째 살인’ 스틸컷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미스미와 시게모리가 구치소의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연기는 영화를 순식간에 연극적 공간으로 만든다. 둘의 연기 대결은 팽팽하고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유리 벽이 사라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양쪽의 공기가 같은 온도와 밀도로 존재하는 듯한 마법 같은 순간을 두 배우의 열연이 만들어낸다.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미스미와 그를 변호하는 시게모리를 둘러싼 공간들은 또 다른 등장인물이자 화자다. 법정, 구치소의 면회장, 변호사 사무실, 딸과 차를 마신 카페 등은 영화적 공간으로, 관객은 영화를 통해 감독과 담담한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가 조심히 담고 있는 도시의 풍경에서 근대라는 규격, 통제의 구조와 모더니즘 시대의 규격 속에서도 통제되지 않는 살아있는 인간의 기질을 응시하게 된다.

영화는 법 정의란 추상적인 개념을 법정 스릴러라는 장르를 빌어 스크린에 구조화하고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법정의’란 미로를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출구에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세 번째 살인이 일어난다. 우리는 미로를 빠져나오는 것을 지연시키면서 그 살인을 막을 수 있을까?

정지혜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