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오지은, “나만 들으려고 만드는 노래는 아니니까”

[INTERVIEW]오지은, “나만 들으려고 만드는 노래는 아니니까”

2007년의 오지은은 파격이었다. 녹음, 판매, 홍보까지 혼자 도맡아 하는 경우도 흔하진 않았지만 더 파격적인 건 그녀의 노래였다. 데뷔앨범 <지은> 속 노래는 예쁜 소리를 위해 꾸며지기보다 감정에 충실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목소리에 담았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사랑의 이면을 포장 없이 노래했다. ‘화(華)’의 가사 중 ‘널 갈아먹고 싶어’는 남녀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애증’에 대한 과격하면서도 적절한 표현이었다. ‘홍대 마녀’라는 의도치 않은 별명이 붙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2013년의 오지은은 어떨까. 그녀가 발표한 세 번째 앨범 <3>을 처음 들었을 땐 심심했고, 두 번째부터는 편안했다. 멜로디와 가사를 계속 곱씹게 된다. 시작부터 불편할 정도로 듣는 이를 몰아세웠던 예전 앨범과는 다른 느낌이다. 오지은은 차이를 인정했다. 그녀는 “그 때 내 감정이 명확했던 데 비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이 이도저도 아닌 감정을 표현하는 게 내 몫”이라고 말했다.

Q. 며칠 전 쇼케이스 때는 관객도 없이 기자들만 있는 곳에서 노래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나.
오지은 : 농담 삼아 ‘클럽 ‘빵’ 출신 뮤지션들은 어디서든 노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거기 관객들은 다들 팔짱을 끼고 노래를 듣는다. 그런데 그건 그들 입장에서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나름의 성의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2, 3년 정도 노래했으니 미동도 하지 않는 관객에 익숙해져 있다.

Q. 쇼케이스도 했고, 데뷔 후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단출한 구성이지만 혼란스러운 느낌이 노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지은 : 촬영장의 스태프들이 연기를 잘한다며 놀라더라. 그런데 사실 난 원래 노래할 때 팔도 뻗고, 고개도 젓는다. 그렇게 안 하면 안 불러지는 노래들이고, ‘고작’은 특히 더 그렇다. 그리고 난 뮤직비디오에 다른 서사가 들어가는 게 불편하다. 그러면 음악이 서브가 되어버린다.

Q. 음악과 다른 요소들 사이의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다. 1집 때 소속사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어렸을 적부터 어깨 너머로 보아온 음악 산업에 많은 경계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오지은 : 날 특정 지점의 뮤지션으로 만드는 게 무서웠다. 요즘은 이런 스타일이 장사가 되니까 넌 이걸 하라는 느낌. 이 노래는 19금이니까 타이틀곡으로 하면 안된다는 식의 그런 말들.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Q. 네이버 뮤직 앨범 소개란에, 수록곡별로 지인들이 코멘트를 한 게 인상적이었다.
오지은 : 개인적인 의도에서 시작했다. 1번 트랙 ‘네가 없었다면’은 소설가 김애란 씨의 결혼식 때 축가로 부른 곡이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코멘트를 듣고 싶었고, 그게 다다. 한효주‧최강희 씨 등 다른 분들도 그냥 내가 친구들의 감상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모아 놓고 보니 다들 빅 네임들이라 거창해졌다.

[INTERVIEW]오지은, “나만 들으려고 만드는 노래는 아니니까”

Q. 예전 인터뷰에서 “1집의 실연 노래들이 ‘헤어져서 아파…’ 느낌이라면, 2집은 ‘아, 이렇구나…원래 이래…’ 톤”이라고 설명했다. 3집을 그렇게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오지은 :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아”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1, 2집에 내 이야기를 워낙 많이 뱉어놔서 그걸 수습하고 넘어가야 더 가뿐하게 그 다음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3집에 너무 많은 얘기를 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쉬어가는 트랙이라고 넣은 곡들도 막상 말이 너무 많은 것 같고.(웃음)

Q. 홈페이지에 일기도 많이 쓰는데, 그런 생각들이 가사로 만들어지는 건가.
오지은 : 노래로 만들 정도로 생생한 건 아닌데 어떤 감정이 문득 스쳐갈 때가 있다. 그런 감정들을 오랫동안 핸드폰 메모장에 메모해왔는데, 그걸 다시 못 열어보겠더라. 가사로 만들 가치도 없는 ‘잡생각’에 불과할까봐. 그러다가 결국 여행지에서 열어봤는데, 그 메모들이 3집의 ‘고작’, ‘어긋남을 깨닫다’, ‘물고기’ 같은 노래가 됐다. 1, 2집에서는 딱 떨어지는 감정들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사실 지금은 확실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내가 표현해야 할 몫은 결국 그런 ‘이도저도 아닌 감정’이라는 걸, 뒤늦게 받아들이게 됐다.

Q. 나이가 들면서 덤덤해지고, 뭘 겪어도 쉽게 놀라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오지은 : 예전 노래들이 썰물과 밀물이 반복되는 파도라면, 3집은 잔잔한 수면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너무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머릿속으로는 ‘물고기’나 ‘Curse song’처럼 질풍노도의 가사를 쓰고 있는 거지. 아마 많은 30대들이 그렇지 않을까. 40대가 되어서 다시 보면 유치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감정을 남기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Q. ‘서울살이는’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 가사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건가.
오지은 : 사실 난 서울 출신이다. 이 말을 들으면 ‘싸구려 커피’의 장기하가 자취해 본 적 없다고 했을 때처럼 실망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지방에 내려가셔서 난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살았다. 결국 ‘서울살이는’은 내 얘기이기도 하고 남 얘기이기도 한 어떤 지점이 아닐까 싶다. 1, 2집이 내 얘기를 기록한 일기였다면, 3집은 일기를 돌아보며 완결 짓는 소설의 느낌이다. 자전도 아니지만 상상도 아닌. 앨범 타이틀이 ‘지은’이 아니라 ‘3’인 것도 그래서다.

Q. 나이 때문에 3이라고 한 건 아닌가.
오지은 : 아, 그러네. 생각도 못했다(웃음).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서른 하나까지는 30대가 되는 게 별 거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만 서른이 된 서른 둘부터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지더라. 20대가 끝났다는 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앨범은 20대의 나를 짚어보는 의미도 있다.

[INTERVIEW]오지은, “나만 들으려고 만드는 노래는 아니니까”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이번 3집은 오지은이 1, 2집에서 쏟아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앨범이다. 그래서인지 앨범의 분위기도 좀 더 차분하다. 성숙해진 건 노래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 음악을 만들 때의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듣는 이에 대한 배려는 물론, 참여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인터뷰를 하는 내내 느껴졌다. 그녀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표현 중 하나는,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

Q. 이전 앨범들에서는 ‘당신이 필요해요’, ‘화’, ‘진공의 밤’처럼 센 곡을 앞에 배치해 기선을 제압했다. 그에 반해, 이번 앨범의 배치는 좀 다르다.
오지은 : 그 땐 ‘애들은 가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젠 그런 자의식보다 어떤 배치를 했을 때 듣는 사람이 더 편안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배려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노래의 목적은 편곡을 세게 하는 게 아니라 정서를 잘 전달하는 거니까, 그러려면 온화한 방법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번 앨범 작업 때 많이 했다. 절규도 좋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무표정하게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면 그게 더 슬플 수 있는 거다. 이제 ‘니들 들으라고 만든 노래’는 아니지만 ‘나만 들으려고 만든 노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사운드도 많이 달라졌다.
오지은 : 예전엔 듣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한 사운드를 원했다. 절망에 빠진 애가 어떻게 촉촉한 목소리를 내나 싶어 보컬에 리버브도 다 뺐다. 그런데 피를 튀겨야만 잔인한 것은 아니지 않나. 이번 앨범의 최대 목표는 그냥 들을 때 편했는데, 잠시 가사를 곱씹어봤을 때 ‘아!’하고 멈추게 되는 노래다. 1, 2집은 사실 카페에서 BGM으로도 잘 안 나오고, 가끔 나와도 내가 불편하다. “가을방학이나 노리플라이 틀어주시면 안돼요?”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앨범은 카페에서 틀어도 될 것 같다. 꼭 그걸 목표로 한 건 아니지만.

Q. 고찬용, 신윤철, 윤병주 등 쟁쟁한 세션들의 참여가 사운드를 풍성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오지은 : 감히 말도 못 꺼냈던 분들이다. 멀리서 보고 꾸벅 인사하면서도 ‘나를 아실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기본적으로 난 그 분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컸으니까 신처럼 느껴지는 분들이다.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여쭤봤는데, 다들 너무 흔쾌히 해주셔서 오히려 내가 더 당황했다.

Q. 그런데 ‘서울살이는’의 기타는 스윗소로우 멤버이자 남자친구인 성진환이 쳤다.
오지은 : 내가 (기타줄을 뜯는) 아르페지오를 못해서 데모만 성진환 씨가 쳐줬고, 원래 당연히 이상순 씨에게 부탁하려고 했다. 데모를 듣고 “잘 치네. 이걸로 해”라고 하시더라. 그래도 이걸 어떻게 쓰나 싶어 다시 요청했더니 바로 기타를 꺼내 쳐주셨다. 그런데 상순 오빠의 ‘서울살이는’은 한강을 내려다보는 80평 맨션의 느낌이더라. 아무리 소박하게 쳐도 ‘원빈이 소박한 느낌’? 그래서 결국 성진환 씨가 치게 됐다. 기타가 기교를 많이 부리면 보컬의 길을 방해할 수도 있는데, 딱 기본적으로 노래 정서에 맞게 잘 쳤다. 본인은 ‘테이블보만 바라봐’ 보컬 피처링보다 신윤철, 윤병주와 같이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는 걸 더 영광스러워 하더라. 그러고 보니 세션비도 아직 안 줬네(웃음).

[INTERVIEW]오지은, “나만 들으려고 만드는 노래는 아니니까”

Q. ‘Not gonna fall in love again’에서는 정인, 린 등 여자 가수들이 피처링을 해줬다.
오지은 : 다들 절친이다. 우리끼리 핸드폰으로 수다를 떠는 대화창이 있는데, ‘나 이제 사랑 안 해’, ‘웃기지 마’ 그런 얘기들이 대화창에서 오갔다. 그 수다들을 재료로 만든 노래가 ‘Not gonna fall in love again’이다. 나는 스트레이트하게 지르는 보컬이다 보니 이 친구들이 멜로디를 쥐락펴락하면서 부르는 걸 듣고 싶었다. 나인이 쌓는 두터운 화음도 듣고 싶었고, 친구들이 웃으며 얘기하는 내레이션도 넣고 싶었다.

Q. 이이언이 참여한 ‘물고기’는 오지은과 이이언의 색깔을 정확히 50 대 50으로 섞어 만든 느낌이다.
오지은 : 맞다. 녹음할 때도 내 쪽에 치우치지 않게 최대한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이언씨가 워낙 섬세한 보컬이다 보니 난 오히려 담담하고 굵게 갔다. 음악할 때 예민한 사람 중에 실생활에서는 ‘빙구’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남자 중 대표가 이이언이고, 여자는 나다.

Q. 애착이 가는 곡이 매일 바뀐다던데 오늘은 무슨 곡인가.
오지은 : 오늘은 ‘그렇게 정해진 길 위에서’가 신경쓰인다. 가사를 얼핏 보면 훈훈한 노래인 것 같지만, 결국 너랑 난 언젠가 헤어져야 할 사이란 얘기다. 그런 슬픔을 절규가 아니라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때 가을방학 노래 중에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의 도입부 건반이 생각났다. 프로듀서 이병훈 씨였는데, 조심스럽게 여쭤봤더니 이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가 너무 많이 떠오르니까 빨리 하자고 하시더라. 이 노래는 특히 건반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시면 좋겠다.

Q. 7월 20일에 단독 공연이 잡혀 있는데, 아직 두 달여 남았지만 생각하고 있는 콘셉트나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면.
오지은 : 아직은 전체적인 얼개만 생각하고 있다.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많이 한다. 다는 아니지만 레코딩에 참여해준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와주시기로 했다. 드럼 신동훈, 기타 윤상익, 베이스 이랑(디어클라우드), 건반은 박별(랄라스윗). 녹음을 같이 했던 분들이랑 합주를 해보면, 이미 한 번 해봤으니까 곡을 더 잘 알고 그만큼 응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더 좋다. 이 친구들이 참여하게 된 것으로도 공연에 대한 부담은 많이 덜었다.

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