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유대인 학살의 비극 ‘주키퍼스 와이프’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메인 포스터

/사진=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메인 포스터

감독은 좋은 영화 소재를 발견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 동물원과 연관이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겪었던 유대인들의 비극이라면 누구나 관심이 갈만하다. 게다가 동물원 주인이 유대인들을 몰래 빼돌려 자유세계로 탈출시킨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유대인들의 비극을 보다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동물원과 유대인, 이 둘을 어떻게 조합해야 ‘이번엔 어떤 유대인 학살 이야기일까?’라는 기대를 줄 수 있을까.

이제까지 워낙 많은 홀로코스트(대학살) 영화가 만들어졌기에 변별력을 갖기도 그만큼 힘들다. ‘주키퍼스 와이프’(The Zookeeper’s Wife, 감독 니키 카로)에서도 같은 고민이 포착된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안토니나 자빈스키(제시카 차스테인)와 얀 자빈스키(요한 헨델베르크) 부부가 운영하는 동물원이 있다. 바르샤바 동물원은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기에 유럽 곳곳에서 동물학자들이 모여들어 연구 성과를 나누고 친교도 유지한다.

전 유럽에서 모이기에 독일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히틀러의 수석 동물학자이자 유전학 전문가인 루츠 헥(다니엘 브륄)도 자빈스키 부부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전쟁이 터졌다.

독일은 유럽에서 처음 정복한 나라인 폴란드를 마음껏 유린했고 귀한 동물들을 베를린으로 가져가겠다는 루츠의 제안을 얀 부부가 거절할 수 없었다. 아끼던 동물들이 끌려가도록 그저 눈뜨고 방치할 수밖에. 희귀 동물이 끌려가고 나면 나머지 동물들은 어떻게 할까? 평범하고 숫자도 많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 동물들 말이다.

나치는 이들을 불필요한 동물로 간주해 모조리 학살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독일 군인들의 먹을거리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영화 끝 무렵 바르샤바 온 시내에 눈이 내리는 듯 재가 날리고 그 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물 학살은 게르만 우월주의가 지향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려주는 은유다.

유대인의 비극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은 그들의 격리 수용이다. 온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을 잡아들여 수용소 안에 몰아넣었다가 때가 되면 아우슈비츠로 이동시키고 거기에는 거대한 소각장이 있어 유대인들을 불태웠다.

얀이 음식물 찌꺼기를 모으려 주기적으로 들어간 수용소 내의 상황은 지옥이었다. 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들과 다정한 이웃으로 함께 살았던 기억이 무참히 짓밟히는 경험을 한다. 벽이 둘러쳐진 수용소에 대한 묘사는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비극을 더해준다.

/사진=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스틸컷

/사진=영화 ‘주키퍼스 와이프’ 스틸컷

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안토니나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이고 독일군 장교로 나온 다니엘 브륄도 역량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배우이다. 이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신경전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루츠를 적절하게 속여야 숨겨둔 유대인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토니나와, 그녀의 호의에 의심은 가지만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루츠의 처지도 관심을 둘 만했다.

두 사람의 관계 설정에 따라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이 오가는 절박한 상황. 한 치 앞도 예측 못하는 상황 설정이 꽤 훌륭해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주키퍼스 와이프’는 인간과 동물과 야만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또한 결코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며 오히려 비극적인 역사를 보다 비극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

덕분에 엔딩에 나오는 구절 “20년 뒤 이스라엘 정부는 대전 중에 유대인 보호를 위해 투쟁한 얀과 안토니나의 공로를 바탕으로 ‘나라들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으로 인정한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서 닿았다.

우수한 유전자와 튼튼한 체격을 가진 특별한 인종이 아니라 위험에 빠진 이들을 진심으로 돕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의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동물원에 모여 기쁨을 나누고 폐허를 딛고 재건의 다짐을 하는 장면이다. 거기에는 물론 부부의 친구이자 유대인 동물학자 시몬도 있었다. 희망이 꽃피기 시작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들은 그 숫자를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TV를 켜면 종종 나치 독일의 잘못을 지적하는 프로그램이나 영화나 TV 시리즈들을 시청하곤 했는데 이 모두는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후 승전국들이 아예 고정적으로 나치의 잔혹함을 독일국민에게 일깨우려고 방영 의무를 지운 결과였다고 봄이 옳다.

‘유대인 학살’ 영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 ‘홀로코스트1978’ ‘소피의 선택1982’ ‘쉰들러 리스트1993’ 등이 그 모범적인 예다. 36년간 일제 강점 하에서 비극의 세월을 보낸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한 영화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