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백현진과 정차식 “우리 둘의 공통점은… 미혼남성이란 것 정도?”

백현진 정차식 1

14일 오후 4시경, 텐아시아 스튜디오의 안락한 소파에 백현진이 앉아있다. 같이 만나기로 한 정차식은 공연 준비 때문에 조금 늦는다고 했다. 백현진과 정차식은 이달 25일 LIG아트홀 합정에서 둘이 함께 ‘더 뺀드’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한다.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두 뮤지션이 차례로 공연을 하는 일이 별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백현진과 정차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백현진과 먼저 대화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정차식 씨가 두 장의 솔로앨범(황망한 사내, 격동하는 현재사)을 내면서 제 이름과 같이 묶여서 이야기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우리 둘의 어떤 비슷한 면을 부각해서 같은 카테고리에 넣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음악과는 매우 다르던데요.” 백현진에게 정차식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물으려던 차에 누군가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정차식 : 아이고 죄송합니다! 합주 마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백현진 : 차식 씨 음악이 어떤가 물어보는데 마침 오셨네요.
정차식 :이야기 잘 하셔야 합니다.(웃음)

백현진과 정차식이 함께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지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놀랐다.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와 레이니썬, 그리고 음반 〈반성의 시간〉과 〈황망한 사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 법하다. 진하고, 센 두 뮤지션의 만남. 감성을 미치도록 자극하는 질펀한 노래들.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레이니썬 시절부터 백현진과 정차식은 기괴한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인디 신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리고 솔로로 활동하는 지금은 속을 게워내듯 ‘짠’한 노래를 들려준다. 여러 접점 때문인지 둘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소위 라이벌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때문에 둘의 인터뷰를 주선하는 것은 여간 긴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웬걸?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둘은 공연준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긴장감을 이완시켰다. 배경음악으로 탐 웨이츠의 앨범 〈Real Gone〉이 흐르자 백현진은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했고, 서먹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화기애애해졌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됐다.

Q. 두 분이 원래 알고 지낸 사이신가요?
정차식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어요. 1997년 블루데빌에서 열린 ‘땅밑달리기’ 공연에서 처음 봤던 것 같아요. 그때가 자우림이 메이저로 진출한다고 하던 때인데… 우리는 부산에서 막 올라와 아무것도 모를 때 어어부밴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죠. “저 분들은 뭐지?” 그랬어요.
백현진 : ‘저분들’이라고 안 했겠죠. “저 새끼들 뭐지?” 그랬겠죠.”
정차식: 헤헤, 당연히 그랬죠. 점마들 뭐고!
백현진 : 당시가 블루데빌에서 한창 놀던 때죠. 레이니썬은 홍대 앞에서 금방 소문이 났어요. 하도 희한하다고 해서. 실제로 보니 정말 희한했어요. 특히 정차식 씨 목소리가 원체 독특하고, 특히 노래하는 자세가 특이했죠. 요새는 그렇게 안 하죠?
정차식 :이젠 그렇게 안 하죠.(웃음)

정차식

정차식

Q. 솔로로 조인트 공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둘의 음악이 닮아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정차식 : 1집을 〈황망한 사내〉를 내고 백현진 씨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들 해서 당최 뭐가 비슷한 건지 찾아 들어봤는데 저랑은 전혀….
백현진 : 성별이 남자라는 것, 미혼남성이라는 게 비슷한가?(웃음)
정차식 : 그래서 2집 〈격동하는 현재사〉에서 아예 백현진 씨와 듀엣 곡을 해서 직접 보여줘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언젠가 이런  공연 제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예상했죠.
백현진 : 정차식 씨 말처럼 언젠가 한 번 묶이겠구나 생각했어요. 무의식중에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색이 달라요. 그런데 둘 다 남들과 목소리가 도드라지게 구별되는 사람들이고, 외모도 껄렁껄렁해서 같이 묶는지도 모르죠. 정차식 씨는 저보다 리듬도 많이 쓰고 박력이 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도 선명하고. 사실 전 주제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어요. 흥얼흥얼거리다가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정도?
정차식 :저도 무슨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오는 데로 만든 거예요. 허밍을 하다가 말이 얹어져 노래가 된 거죠. 백현진 씨 음악을 들었을 때는 특유의 아우라가 잘 묻어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뮤지션이 별로 없죠.

Q. 어어부 프로젝트, 레이니썬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렵다’ ‘불편하다’는 평가들도 있었습니다.
백현진 : 레이니썬과 어어부밴드에 대해 그런 말이 많았죠.
정차식 :그런데 우리 음악과 어어부밴드의 음악은 아예 달라요. 우리는 헤비메탈이었죠.
백현진 : 레이니썬은 귀곡메탈이라고들 했잖아요?
정차식 : 제 노래가 괴기스러워서 그런지 거부감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백현진 : 그런데 그때는 싫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었죠? 오히려 더 재밌지 않았나요?
정차식 :오히려 자부심이 있었죠. 그런데 어머니께 레이니썬 1집을 들려드리니 왜 노래는 안 하고 울고만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일반인에게는 노래처럼 들리지 않았던 거죠.
백현진 : 낯설었던 것이겠죠.

백현진

백현진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와 레이니썬이 90년대 중후반에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성경책을 찢기도 하고, 바닥을 기어 다니며 노래하는 등 한 번 보면 뇌리에서 지우기 힘든 모습들을 선보였다.

정차식 : 레이니썬으로 공연할 때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를 화분에 꽂고 불을 지르기도 했어요. 마스터플랜에서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백현진 : 차식 씨는 산타클로스를 태웠구나. 우리는 슬랩스틱을 했었어요.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들뜨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촛불을 꽂은 몇 단짜리 케이크를 들고 무대로 걸어 나오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면 내 발에 걸려 넘어져 다 엎어버렸죠. 그런데 어어부밴드의 팬들은 그런 슬랩스틱에 반응해줬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참 불만들이 많았네요. 요새는 어때요?
정차식 :이젠 남사스러워서 그런 거 못 하죠.(웃음)

Q. 사람들이 둘에 대해 ‘괴팍할 것 같다. 마초일 것 같다’는 이미지를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백현진 : 보는 사람들 자유죠. 제가 판단할 것은 아닌 것 같네요. 솔로앨범을 낸 이후에 짐승, 괴물 같다는 이야기들이 인터넷 쳐보면 나오던데, 거기에 반응할 필요는 없죠. 차식 씨는 싸움 같은 거 하세요?
정차식 :전 메탈 할 때에는 괴팍했어요. 싸움도 많이 했죠. 그때는 어두운 음악을 해서 나도 늘 무게를 잡고 화가 나 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농담도 잘 하고요. 그래서 2집에서는 나다운 것을 해보자고 해서 위트도 담기 시작했죠.

Q.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 정차식의 〈황망한 사내〉를 아끼는 팬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남성들이 가슴으로 공감하는 앨범들이 아닌가 하는데요. 〈반성의 시간〉의 노래들은 백현진 씨가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반성하는 거라고 봐도 될까요?
백현진 : 지금 돌이켜보면 청춘을 정리하는 그런 앨범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그때는 만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만든 앨범이에요. 이제는 내가 청춘은 아니니까. 청춘을 저런 식으로 보냈구나 하는 기록은 되는 것 같네요. 반성할 거야 정말 많죠.(웃음)

백현진 정차식 2

Q. 〈황망한 사내〉는 만들 때 정차식 본인의 상황은 어땠나요?
정차식 :30대를 정리하는 느낌이었어요. 특별히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그 앨범을 만들 때 내가 30대 후반이었고, 마이크 한 대 놓고 주저리주저리 노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살아온 시간이 들어간 것이겠죠.

1998년 홍대 앞에서 열린 ‘거리미술전’에서 둘 사이에 작은 사건이 있었다. 앞서 공연한 어어부밴드의 백현진이 전구를 깨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뒤이은 레이니썬 의 공연에서 맨발로 무대에 오른 정차식이 전구조각을 밟고 피를 흘린 것. 인터뷰 중 이 일화가 나왔을 때는 분위기가 험악해질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허나 인터뷰 말미에 둘의 사이는 이미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해갔다.

정차식 :그때 제가 발이 찔려서 피가 질질 났죠. 그 이후로 백현진 씨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앙금을 계속 가지고 있었죠.(웃음)
백현진 : 제가 뭘 깼어요? 정말 위험했겠네. 그런데 요새도 맨발로 공연하세요?
정차식 :습관이 되다보니 맨발이 편해요. 그래서 가끔 문제가 있었죠. 예전에 노이즈가든의 보컬 박건 씨가 무대에 침을 뱉어서 그게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던 추억도 있고.(웃음)
백현진 : 이번에도 제가 먼저 공연을 하는데 뭐 안 깰게요. 오히려 베이비파우더를 뿌려놓고 내려올까요?(웃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