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人] 김태형 연출가 “마법 같은 순간을 기다리죠”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김태형,연출,매디슨카운티의다리,연습공개

공연 연출가 김태형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지난해 7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개막 때 만난 김태형 연출가(40)는 누구보다 공연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입학한 카이스트를 중퇴, 한국종합예술학교에 들어간 이력처럼 도전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실험적인 작품에 손을 뻗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2017년, 그의 작품 활동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연극 ‘모범생들’ ‘벙커 트릴로지’ ‘글로리아’ ‘오펀스’를 비롯해 뮤지컬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미 온 더 송(Mee on the song)’ 그리고 오는 10일 개막을 앞둔 ‘팬레터’까지, 그 장르도 무궁무진하다. 연극·뮤지컬을 넘나드는 것은 물론 작품의 분위기도 모두 달라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연출’로 단연 선두다. ‘이 많은 작품을 어떻게 다 진두지휘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최근 대학로에서 ‘팬레터’의 개막 준비에 한창인 김태형 연출을 만나 “공학도여서 시간을 과학적으로 쓰는군요”라고 묻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내키는 대로 하는 기분파”라고 웃었다.

10. ‘팬레터’의 재연은 언제부터 계획했습니까?
김태형 : 초연을 올릴 때부터 저는 물론 제작사도 재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본격 계획한 건 제작 지원금을 받고 확정됐고요. 올해 공연될 수 있도록 시기를 조율했습니다.

10. 중국의 영화감독 왕가위가 투자 제작에 나섰더군요.
김태형 : 저 역시 놀랐어요.(웃음) 제작사 대표의 수완에 감탄했고, 아마 이 작품을 통해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본 게 아닐까요?

10. ‘2015 우수 크리에이터 발굴 지원 사업’으로 뽑힌 ‘팬레터’를 재연까지 올린만큼 감회가 남다르겠습니다.
김태형 : 공연의 개발 단계부터 쇼케이스, 초연과 올해 재연까지 이 작품의 모든 과정을 함께했어요. 그러니 자식 같은 느낌이 드네요. 물론 재연으로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이 같은 규모로 성장하고 여러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 창작진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 지점 역시 충분히 사랑받고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10. 재연을 준비하며 ‘팬레터’의 작가와는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김태형 : 초연에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나눠 발전시켜 보자고 했죠.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서 작업했습니다. 새롭게 쓴 곡도 있고 기존 곡의 가사를 바꾸기도 했죠.

10. 초연과는 또 다른 부담이 있겠지요?
김태형 : 부담스럽기도 한데, 초연 때 관객들이 좋은 점을 알아줬기 때문에 재연은 오히려 수월했습니다. 사랑받은 점을 살리고, 아쉬운 부분을 줄이려고 했죠. 초연보다 수월하고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10. 보완하고 싶었던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김태형 : 예산의 문제로 인한 무대 디자인, 조명 등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쉬운 예산으로 뭐든 줄여서 해야 하는 도전이어서 거대한 상징을 활용했죠.  이번엔 무대와 조명, 미술 부분에 다른 시도를 했습니다. 작품이 갖고 있는 시대, 드라마가 잘 드러나는 무대로 콘셉트를 바꿨어요. 예쁜 무대에서 예쁜 이야기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자연광의 느낌을 살리거나, 아날로그 감성을 살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초연 때는 오히려 지나치게 현대적인 느낌의 무대와 조명을 많이 사용했거든요. 이번엔 더 섬세하게 꾸밀 수 있었습니다.

10. 대사와 음악도 바뀌었습니까?
김태형 : 7인회로 설정한 문인들의 이야기를 강화하고 그들의 노래를 첨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면과 가사를 조금씩 바꿨고요. 새롭게 참여한 배우들의 의견도 반영됐고, 인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리했습니다.

10. 새롭게 합류하는 배우들이 많아서 마치 새로운 공연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김태형 : 초연 때 배우들과의 작업이 좋아서 재연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일정이 여의치 않아 빠진 일부 배우를 제외하고 모두 다시 불렀어요. 초연 전 쇼케이스에 참여한 손승원, 문태유 등이 이번에 합류했고요.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 사진제공=라이브(주)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 사진제공=라이브(주)

10. 극중 캐릭터의 변화도 있을까요?
김태형 : 캐릭터의 성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훈이라는 인물이 주위와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 수동적인 부분을 매력으로 살려서 끌고 가야 해요. 다른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면서, 해진과 세훈, 히카루의 이야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만들려고 했죠. 일제 강점기에 글을 쓰고 예술을 하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10. 중국의 투자를 받은 ‘팬레터’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태형 : 그렇지 않아도 ‘왜일까?’ 생각을 해봤어요. 공연 자체의 매력에 대해서 말입니다. 극중 세훈의 선생님을 향한 존경과 연민, 사랑을 조명하는데 그 감정이 동경인지, 존경인지, 사랑인지 모른 채 흘러가는 상황이죠. 그것이 글을 쓰는 행위로 연결되고요. 아티스트와 그를 존경하는 팬의 관계가 유독 동양 문화권에서 흥미롭게 다뤄지는 것 같아요. 중국 역시 문인들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이죠. 또 옛날이야기를 다루지만, 누군가의 팬이 되고 좋아하면서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형태가 현대에도 익숙하지 않습니까? 히카루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욕망,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죠. 그런 지점이 드라마 안에서 매력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10. 이것만큼은 놓치지 말자고 생각한 부분은요?
김태형 : 초연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경성 시대 문인들의 먼 이야기 같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살리려고 했어요. 재연 역시 장점을 강조하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무언가에 설레고 마음을 준 시절을 겪었거나 그런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흥미 있는 공연이 될 겁니다.

10. 지난해 말부터 쉬지 않고 공연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른 공연을 보러 갈 여유는 없지요?(웃음) 다른 작품을 통해 영감을 받기도 할 텐데요.
김태형 :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건 없지만, 예전만큼 공연을 자주 못 봐서 속상하긴 합니다.(웃음)

10.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글로리아’ ‘오펀스’ 등 원작이 있는 작품을 하면서도 최근 아내이자 배우인 이영미와 아주 특별한 공연 ‘미 온더 송’도 완성했습니다.
김태형 : 그 어떤 작품보다 힘들었어요. 하하. 잘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어서죠. 아내가 곡을 쓰고 노래하고, 제가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같이 완성했죠. 마치 가내수공업처럼요.(웃음) 조명이며 음향까지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만들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었죠.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내는 늘 제가 만든 공연을 보고 감상평을 써주곤 해요. 좋은 공연을 만들었을 때 “감동 받았다”고 얘기합니다. 가장 행복한 칭찬이죠. 그 누구보다 아내를 감동시키고 싶고요. 그 원동력으로 공연을 허투루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형 연출 / 사진제공=스토리피

김태형 연출 / 사진제공=스토리피

10. 지금까지도 자극을 받는 작품이 있습니까?
김태형 : 뮤지컬 ‘빨래’예요.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학교 공연으로 동기인 민준호가 연출할 때 스태프로 참여했어요. 동기의 작품이기도 하고 볼 때마다 눈물나는 좋은 작품이에요. 그 작품이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항상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거든요. 오랫동안 발전해오는 걸 보고 있죠. 좋은 작품으로 계속 사랑받는 걸 보면서 자극도 받고요.

10. 작품을 열심히 만든 만큼 끝난 뒤 공허함도 클 것 같습니다.
김태형 : 여러 변수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죠.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유독 더 아픈 손가락이 있거든요. 지금은 남탓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책임을 지고 잘해야죠. 예전엔 남탓을 하면서 도망치기도 했는데, 이젠 책임감도 커졌고요. 결혼 후에 집착도 덜었습니다. 과거의 저는 공연에 온 마음을 다 쓰고, 거기에서 보상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삶은 오롯이 공연장에만 있었죠. 사실 그 시절 그렇게 집착하면서 집중했기 때문에 오늘이 있는 거겠죠? 집착을 덜어내고 삶과 공연을 분리하니,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보이고 좀 더 효율적으로 쥐어짤 수 있게 됐습니다.

10.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는데,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공학도 출신이라 분 단위로 쪼개 과학적으로 쓰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만.
김태형 : 전혀, 그렇지 않아요.(웃음) 엉망진창이에요. 하하. 기분파에 마음가는 대로 움직여요. 다만 해야 할 때 바짝 몰입하죠. 효율적으로 잘 쪼개 쓰는 건 전혀 아니에요. 엉망이에요. 예전엔 집에서도 일을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물론 메모를 하거나 업무상의 전화 통화는 하지만, 계속 일 생각만 하지는 않죠. 3살 된 아이와 놀아주는데, 애를 보고 있으면 사실 다른 생각이 안 들어요. 정신이 없거든요.(웃음)

10. 연출가로서 언제 가장 행복합니까?
김태형 :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연습실에서 고민한 장면 혹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하는 정서나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에요. 그게 처음부터 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정리가 되거든요. 풀리지 않았던 것이 해결되고 만들어질 때가 행복하고,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연출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작가, 배우, 디자이너, 조명, 음향 등등 모든 스태프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어느 순간 터지는 건데,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즐겁죠. 사실 그것 때문에 계속 공연을 하고 있는 것 같고요. ‘관객들도 느끼고 있구나’ 싶을 때도 벅차고요.

10. 다음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태형 : 곧 지이선 작가와 뮤지컬 ‘룸스(Rooms)’를 합니다. 구체적인 제목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요. 지난해에 만났을 때 시나리오 한편을 완성하는 게 목표라고 했죠? 틈틈이 쓰긴 했는데 정말 어렵더군요. 마음먹은 것이니 쓰긴 써야 하는데…노력해보겠습니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