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황보령이 말하는 그림과 음악의 접점

황보령=SMACKSOFT 2013년 5기 멤버사진2

다양한 재능을 지닌 멀티 플레이어가 대접받는 시대다. 한국대중음악계에는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성공신화를 이룬 화가가수의 개체 수가 무수하다. 본업인 가수의 영역을 넘어 화가로 활동하는 조영남과 최백호도 그렇고 전설적인 록밴드 <QU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도 미대출신답게 공연 때마다 그림을 자주 그려 화제가 되었던 뮤지션들이다. 그림과 노래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빈 도화지와 오선지에 자신의 감성과 정서를 그려나가는 창작 작업이란 점에서 한 핏줄이다. 분명한 점은 화가가수들의 노래에는 회화적 이미지가 풍성하다는 사실이다. 눈을 감고 들으면 노래 속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떠오르는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차별적이다.

사실 대중이 음반을 구입할 때 재킷의 디자인이나 커버 이미지는 중요한 선택요인으로 작용한다. 재킷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높은 문화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하나의 예술장르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 점에서 황보령의 거의 모든 음반들은 재킷의 아트웍에 대한 대중의 인식전환을 환기시키는 독특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가며 상처투성이 세상에 치유의 미덕을 실천하는 그녀의 노래는 사실 달콤하지도 트렌드에 민감하지도 않다. 일반대중은 난해하게 여길 가능성이 농후한 어둡고 거친 질감의 음악이지만 황보령은 다양한 실험적 사운드를 통해 음악과 그림의 접점을 찾아 항해하는 독보적인 뮤지션이다. 대중음악을 예술적 경지로 견인하고 있는 국내에선 유일한 여성 펑크 뮤지션으로의 존재가치도 또렷하다.

그녀의 무대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대중이라면 중성적인 펑크적 분위기에 호기심을 품었을 것이고 거칠고 원초적인 허스키 보컬의 매력과 빈 공간에 물감을 푸는 것 같은 근사한 회화적 질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현재 한국대중음악계의 여성 뮤지션 중 음악적으로 가장 주목할 창작 앨범들을 생산하고 있는 그녀의 왕성한 창작 샘은 향기로운 감로주를 콸콸 쏟아내고 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상당수 멤버가 교체되었던 그녀의 음악여정은 고단했을지 모른지만 예술적 향내가 진동하는 선명한 궤적을 남기고 있다.

황보령이 리드하는 5인조 밴드 <황보령=SMACKSOFT>는 최근 Rainbow99(기타), 서진실(드럼), 강하늘(키보드), 신지용(베이스)을 영입해 5기 라인업을 구축했다. 현재 그녀는 차기 앨범을 위해 한국 대중음악계를 넘어 해외에서도 이제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매우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음악실험에 돌입한 상태다. 3집 이후 “그림과 음악은 뭐가 같고 다른지”에 대해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질문을 받고 있기에 말이 아닌 작품으로 대답하려 작심했다. 그러니까 그림 한 점이 완성되면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는 ‘그림 노래’ 작업이다. “어떤 형태나 심지어 다양한 색깔에서도 소리가 난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리며 붓을 움직이면서 쉭쉭하는 소리를 들을 때, 감정을 전달하는 어떤 미디움과 색감, 질감을 느낍니다.” 가을쯤 발표할 목표로 시작한 차기 앨범이 정규 6집이 될지 5-6곡 정도가 수록되는 미니 앨범이 될지는 미정이지만 프로젝트 앨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준다. ‘노래 그림’이란 화두를 잡았지만 구체적인 주제는 없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림과 곡의 흐름을 보고 앨범 타이틀도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

[인디10] 황보령이 말하는 그림과 음악의 접점

오래 전부터 화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황보령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지난 주말, 봄기운이 화사하고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서울 난지도공원과 그녀의 작업실에서 소원을 풀었다. “소리 자체와 연관된 그림이 2-3개가 나올 수도 있어요. 음악과 동영상을 보여주는 VJ들은 소리에 강약 멜로디 흐름을 이미지로 보여주지만 저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이라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가만있는 그림에서 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그녀의 창작 방식은 단순하다. 의도적으로 곡을 만들기 보단 멜로디가 떠오르면 녹음해 놓고 도화지에 코드를 적어서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즉흥방식이다. “저는 노래나 그림 작업할 때 멜로디와 가사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생각은 오래하지만 작업은 굉장히 짧고 빨리 하는 편입니다. 일단 시작하면 1-2달에 곡 작업과 녹음을 끝내는 스타일입니다. 곡이든 그림이든 이번 작업은 잠을 자지 않고 빨리 진행할 생각이에요.”

현재 그녀는 함께 살고 있는 페르시안 고양이와 자신을 그린 ‘바우와 나(가칭)’라는 그림을 완성시킨 상태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바우가 막 뛰어다녀서 발자국이 나 있어요. 고양이와 제가 함께 그린 거죠(웃음). 20분 만에 완성하는 빨리 그리는 그림이 있고 몇 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는 것도 있어요.” 그녀는 음악이 그림으로 보여 지고 그림이 소리로 들려지는 새로운 실험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그림 노래’라는 특성상 차기 앨범은 이전과는 달리 어쿠스틱 사운드가 주류를 이룰 예정이다. “저는 곡 작업을 하면 소리로 허공에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붓을 따라 ‘쉬익’하고 소리를 내며 작업하죠. 일단 이번 앨범은 밝은 분위기로 가려해요. 노래는 어둡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제 스스로 그림을 어둡게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최근 <좀비 전시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좀비를 좋아하지 않아 참가하지 않기로 했어요(웃음). 노래들은 가사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보컬 곡으로 혼자 작업하려 합니다. 만약 진행이 느려지고 느낌을 이끌어내는데 무리가 있어 ‘레인보우99’의 기타가 필요하면 부탁할 수 있고. 리얼 드럼이 필요하면 서진실이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황보령은 노래 잘하는 아버지의 ‘황성옛터’ 노래 가락을 듣고 성장했다. 아버지는 아침에 자식들을 깨울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LP를 틀었던 분이라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근을 간 아버지를 따라 한 학년을 부산에서 다녔던 그녀는 아버지가 함경북도 청진 이북출신인지라 기분 좋게 명절을 보낸 적이 없다. “중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올라와 언니들과 자취 생활을 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생일선물로 통기타를 받으면서 음악을 시작했지만 부모님이 시끄럽다고 부셔버렸는데 그때 ‘아침이슬’이나 ‘새벽길’ 같은 노래 가사를 일기에 섰던 기억이 납니다.” 1985년 15살 소녀시절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그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교를 4번이나 옮겨 다니다 ‘RUSH-HENRIETTA 시니어 하이스쿨’을 졸업했다. 1990년 뉴욕 프랫대학교에 입학해 회화를 전공했지만 휴학계도 내지 않고 중도에 나왔다가 2004년에 다시 들어가 조소를 전공하고 2007년에야 졸업했다.

[인디10] 황보령이 말하는 그림과 음악의 접점

황보령은 그 어떤 일에도 적극적인 생각을 품었던 아이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학교 졸업하라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그저 밥 먹고 물 마시는 것처럼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1990년 우연히 대학친구 커크와 만나 듀오 밴드 <SUN&FISH>를 결성해 카피 곡을 위주로 뉴욕 길거리에서 버스킹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자신이 다니던 대학으로 유학 온 후배 이상은을 만나 함께 한국에 들어와 그녀의 5집 <언젠가는>에 피쳐링을 했고 1995년 이상은에게 음악적 터닝포인트를 마련해준 6집 <공무도하가> 뮤직디렉팅에 참여했다. 당시 그녀는 문화공간 <선&피쉬>를 만들었지만 8개월 만에 망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1996년에 다시 귀국해 <유엔미블루> 방준석의 소개로 드러머 김책, 최임식과 함께 3인조 밴드 <유력한 형님들>을 결성해 잼 형식으로 아방가르드한 공연을 시도했다. 이후 홍대와 신촌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에 들어간 그녀는 1997년 김창완, 이상은, 어어부, 삐삐롱스타킹, 황신혜밴드 등과 함께 했던 컴필레이션 앨범<도시락 특공대>에 참여했다. 1998년 솔로 1집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와 2001년 밴드를 결성해 발표한 2집 ‘태양륜’ 이후 독특한 음악성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학업을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다시 떠났다. 오랜 공백기를 딛고 다시 정규앨범을 낸 원동력은 미국에 있을 때 다음 앨범을 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 당시 삶의 경계를 넘나든 극심한 고통을 겪은 그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애틋함을 더해져 좋은 음악을 위해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황보령=SMACKSOFT’ 공연

‘황보령=SMACKSOFT’ 공연

2008년 2.5집 <SmackSoft>로 돌아온 그는 2009년 3집 <Shines In The Dark>를 발표하며 완벽하게 컴백했다. 3집은 그녀 스스로는 물론이고 한국대중음악계의 축복과도 같은 명반이다. 수록된 노래들은 삶의 힘겨운 나락에서 회생한 자신에게 찬란한 구원의 빛이 되었고 다시 꿈과 희망을 생각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제껏 그 누구도 구현하지 못한 아트록의 지평을 펼치며 평단과 록 애호가들의 찬사를 이구동성으로 이끌어냈다. 긴 공백기 동안 실제로 죽음직전에 도달했던 고통과 아픔에서 스스로를 구원한 생명과 희망의 빛으로 스스로를 진보시킨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3집은 미술과 음악의 경계를 부유하며 예술적 접점을 찾기 시작한 회화적 이미지가 탁월한 앨범이다. 흥미로운 점은 홍보가 부족했던 초반을 절판시키고 자신의 그린 그림들로 재킷을 다시 구성해 재발매를 했다는 사실이다. 초반의 재킷 그림은 멤버들과 친해지고 싶어 그녀가 의도적으로 그려본 귀여운 느낌의 캐리컬처였다. 각기 6개의 다른 앨범으로 보여 질 수 있도록 시도한 재발매 음반의 아트웍 실험은 흥미롭다. 수록곡 “해 海 解 GO”는 ‘해’를 여러 가지 의미로 풀어낸 우리 시대의 명곡이다. 황보령 자신이 가장 만족해하는 트랙인 ‘한숨’ 오리지널 버전은 향후 그녀의 음악적 지향점을 예시하는 전형이다. 사실 이 노래는 옥상에서 걸려있는 행업에 누워서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지하철과 하늘에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느낀 단상을 옮겨 본 노래다.

3집이 비상구가 없는 시커먼 어둠 속에서 희미한 구원의 빛줄기를 갈망하는 절절함을 담았다면 4집 <Mana Wind>는 삶의 원동력인 ‘꿈’을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으로 풀어내 음악으로 평단과 팬 모두에게 ‘꿈을 꾸는 듯하다’, ‘귀로 듣는 신비체험’, ‘소리라는 물감으로 시공간의 캔버스에 펼치는 그림이다’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5집 <Follow Your Heart>는 음악의 본질적 결인 록 정신을 유지하면서 사운드에 대한 흥미로운 시도를 담아낸 앨범이다. “꿈은 시작도 끝도 없는 최초의 상태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에게 외모나 돈 말고 아름다움이 뭔지 묻고 싶어요. 도대체 우리들은 뭘 추구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영혼은 바닥을 칠 것이기에 음악 하는 사람들이 다른 부분을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집 shine in the dark(2009), 4집 MANA WIND(2010), 5집 Follow Your Heart(2012) (왼쪽부터)

3집 shine in the dark(2009), 4집 MANA WIND(2010), 5집 Follow Your Heart(2012) (왼쪽부터)

세상과의 단절을 슬픈 정서로 노래한 1집, 더욱 공격적이었던 2집과 삶에 대한 고민이 염세가 아닌 절절한 애정으로 승화된 3집 그리고 꿈과 희망을 노래한 4집과 다채로운 사운드를 실험한 5집까지 그녀의 앨범들은 희망과 빛을 찾는 치열한 음악여정에 다름 아니다. 가식보다 진실은 늘 불편한 존재이듯 인위성이 배제된 날 것 그대로의 어두운 질감인 그녀의 음악에 불편함을 느낄 대중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멜로디를 떼어내면 그대로 하나의 시가 되고 몽롱하고 환상적 멜로디는 청자에게 소리여행을 함께 떠나자고 유혹하는 매력적인 음악이다. 대중음악의 소임 중 으뜸은 위로다. 황보령의 음악은 바쁘고 힘겨운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소임을 발휘하는 따뜻한 가락이다. “저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행위는 못할 것 같아요. 사실 3집 때는 조금 의식했는데 별 반응이 없더군요. 음악도 과거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했다면 이제는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합니다. 궁극적으로 제 노래가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음악이 내게 즐거움과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인 에너지를 제공하듯 제 노래가 많은 분들에게 똑같은 마술을 발휘한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황보령=smacksoft 프로필
2000년 1기 4인조 황보령(보컬, 기타), 이민정(베이스), 윤성훈(기타), 허쉬(드럼)
2008년 2기 4인조 황보령(보컬, 기타), 정현서 (베이스), 박종근(기타), 박진선(키보드)
2009년 3기 5인조 황보령(보컬, 기타), 정현서(베이스), 박종근(기타), 박진선 (키보드), 김헌덕(드럼)
2010년 4기 5인조 황보령(보컬, 기타), 정현서(베이스), Nick/윤성훈(기타), 서진실(드럼), 박진선(키보드)
2012년 5기 5인조 황보령(보컬, 기타), Rainbow99(기타), 서진실(드럼), 강하늘(키보드), 신지용(베이스)

황보령 프로필
출생 1970년 2월 26일
학력 미국 뉴욕 프랫대학교 조각 학사
1990년 뉴욕에서 미국인 커크와 듀오 밴드 <Sun&fish> 결성
1993년 문화공간 <Sun&fish> 창립
1995년 황보령 이상은 정규 6집 공무도하가 뮤직디렉팅
1996년 황보령 4인조 밴드 <유력한 형님들> 멤버
2000년 4인조 밴드 <황보령=SMACKSOFT> 결성
2001년 황보령 이상은 정규 10집 뮤직디렉터
2008년 2.5집 가슴네트워크 선정 올해의 앨범 선정
2009년 3집 웹진 100beat 2000년대 베스트앨범 선정, 가슴네트워크 선정 2009년 베스트 앨범, 한겨레신문 선정 올해의 음반
2010년 4집 네이버 뮤직 이 주의 국내앨범, 2010년 베스트7 선정, 대중음악사운드 선정 올해의 앨범, 다음뮤직선정 2010년 올해의 앨범, 웹진 weiv 선정 올해의 앨범
2012년 5집 네이버 뮤직 이 주의 국내앨범 선정, 다음뮤직 이 달의 앨범, 2012년 베스트앨범 선정, 웹진 WEIV 선정 2012년 베스트 앨범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