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한예리, 깊고 깊은 그녀의 둘 혹은 하나의 이야기

[INTERVIEW] 한예리, 깊고 깊은 그녀의 둘 혹은 하나의 이야기

생후 28개월 후 부터 무용을 했던, 국내 최고의 무용수를 꿈꾸었던 소녀는 자라서 배우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원하는 만큼 키가 자라지 않아 직업 무용수로서 한계를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무용만을 바라본 외골수였던 그녀가 우연히 여배우가 된 이야기. 우리에게는 영화 <코리아>로 잘 알려진 배우 한예리의 성장 스토리.

무용할 때는 받기 쉽지 않았다는 상을 연기로는 덜컥 한 번 만에 받아버리면서 충무로 앙팡 테리블로 불리기 시작한 한예리는 <남쪽으로 튀어>와 <동창생> 등 상업영화 작업을 끝내고, 16일 독립영화 <환상 속의 그대> 개봉을 앞두고는 다시 무용 무대로 컴백한다.

한 때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지금 역시 그 마음은 변치 않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상황들이 미묘하게 변해버린 가운데 다시 무대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겨간 심정은 어떠할까 궁금해지던 차, 그녀의 무용공연을 볼 기회가 생겼다. 붉은 의상을 입고 무대를 휘젓는 그녀의 작은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큼직했고, 온 몸을 힘차게 휘젓다 사뿐한 손으로 옮겨가는 몸의 이완은 보는 이의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세상은 이제 한예리를 무용수 보다는 배우라는 수식어로 부르게 됐지만, 결국은 깊고 깊은 한예리의 세계 속 같은 자아다. 무대 위 그녀의 모습 역시 스크린 속에서 보여주었던 깊고 잔잔한 울림이었다.

22일과 23일 부산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정신혜무용단이 주최하는 <창작춤 소녀少女-춤으로 읽는 문학시리즈> 공연을 준비 중인 한예리와 잠깐 마주하고 앉았다.

 

Q. 꽤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것일 텐데, 정확히 얼마 만인가?
한예리 :
곧 개봉하는 영화 <환상 속의 그대>를 촬영할 때 공연을 했었다. 아마도 2011년 11월쯤. 그러니 1년하고도 6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Q. 그때와 다르게 배우로 알려지게 된 한예리가 무용 무대에 컴백하게 된 기분은 어떨까 궁금해지더라.
한예리 : 글쎄. 사실 나를 둘러싼 상황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그보다는 체력이 변한 것 같다(웃음). 이제는 더 이상 체력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은 밖으로 티는 안 나는지 선생님께서도 ‘예리는 참 그대로야. 안 변했어’라고 말씀은 해주시지만. 그러나 어쨌든 배우 한예리를 무대에서는 내려놓으려 한다. 무용실에서만큼은 무용수라고 생각하고 임하고 있다.

Q. 과거에도 인터뷰를 했을 때 무용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하트가 나왔었다. 언젠가 다시 무용무대에 서겠구나 짐작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이야. 그래도 이제는 배우가 본업이 돼버린 셈인데, 다시 무대에 서보니 이질감 같은 것은 들지 않았나.
한예리 : 그보다는 오히려 무용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무용을 하면서 지치고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왜 춤을 추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없었다. 그냥 한 것이지. 그런데 영화를 하게 되면서 또 나라는 사람이 조금 더 분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춤을 추는 방식 그리고 춤을 사랑하는 방식이 뚜렷해졌달까. 비록 남들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춤을 사랑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약간의 거리감이 생기면서 오히려 여유가 생긴 셈이다.
한예리 : 좀 더 여유 있고 즐기게 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더 행복하게 춤을 추게 됐다.

Q. 언어가 아닌 온전히 몸으로 소통한다는 것, 사실 일반인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든 일이다.
한예리 : 다른 방법은 없다. 서로 맞을 때 까지 연습해야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였을 때의 어떤 에너지가 있는데 때로는 내가 주고 때로는 내가 받으면서 언어가 아니더라도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순간 얼마나 집중해서 구현하려고 하는지가 잘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니 무척 고된 작업이다.

Q. 고되기 때문에 쾌감은 더욱 클텐데.
한예리 :무수히 같은 것을 반복해서 어떤 지점에 도달한다면, 또 그것을 무대에서 쏟아낸다면 그 때는 정말이지 몸이 찌릿해지는 희열이 느껴진다. 반면 연기의 경우, 자연스럽게 그 인물에 슥 스며들어 약간이라도 그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질 때의 기쁨이 상당히 크더라.

Q. 무용 연습 때 ‘그분’이 오시길 기다린다 말한 적이 있다. 반복적인 트레이닝이 끝난 뒤에는 아무래도 영감의 힘이 크게 작용하나보다.
한예리 : 기술적인 측면을 갈고 닦는 것은 베이스 단계이고 이후부터는 자극을 받고 영감을 받는 것의 비중이 크다. 특히나 창작품의 경우 더구나 더 그렇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Q. 몸의 움직임을 체득했다는 점이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과거에 이야기 했었다. 역으로 다시 무용을 하면서 연기 경험이 득이 된 점은 없었나.
한예리 : 그간 무용을 하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참 서툴렀다. 어떻게 밖으로 끄집어내서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도 잘 몰랐었는데 연기를 하면서 그런 부분은 확실히 플러스가 됐다. 덕분에 무용의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관객들이 좀 더 내 감정과 감성, 표정의 변화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INTERVIEW] 한예리, 깊고 깊은 그녀의 둘 혹은 하나의 이야기

Q. 잠깐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환상 속의 그대> 속 차경은 대중이 생각하는 한예리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지만 단단하고 한없이 자유롭고 그러나 예민한…
한예리 : 당연히 내가 연기를 했으니 나의 어떤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차경은 환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시간이 길었다. 따라서 그 때의 차경은 진짜 차경이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떠나야겠다 결심하는 순간에야 가장 차경답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니 그 장면 전까지는 차경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하지는 않았다. 혁근(이희준)의 차경, 기옥(이영진)의 차경이라고 생각했었다. 질문이 나와의 싱크로율이었지? 잘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어딘가 흐르고 있었을 것 같긴 하나.

Q. 음…그렇다면 차경처럼 감정의 기폭이 심한 사람은 결코 아니라는 말인데…
한예리 : 아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아이고 어떡하나’ 싶다.(웃음)

 Q. 언론시사회 때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잔잔한 충격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고도 차경을 실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말한 대로 차경을 혁근의 또 다른 자아, 기옥의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잘못했구나 싶었다.
한예리 : 촬영할 때는 잘 몰랐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서 자꾸만 슬퍼졌다. 그러다 영화를 보고나니까 그제서야 왜 슬펐는지 왜 내가 무거워졌는지 알게 됐다. 기자간담회 때는 감독님과 희준 오빠, 영진 언니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영화는 남아있는 이들의 힘든 모습을 보여주었고, 우리도 모두 남아있는 이들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차경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안쓰러웠다. 속상했다. 차경의 잘못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Q. 그런 차경과의 만남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내면의 깊은 우울함과 마주해야했을 테니까.
한예리 : 죽음 보다는 이별에 관해 생각을 하고 연기했다. 만약 죽음을 생각하고 연기했더라면 웃으면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었기에 고통 까지는 아니었다.

Q. 무용수 한예리도 배우 한예리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두 자아를 이분화할 수는 없겠지만, 무용수 한예리, 배우 한예리의 목표지점에 대해 각각 들려 달라.
한예리 : 나이가 한참 들어서 할머니가 되더라도 작은 내 방에서 춤을 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 스스로 즐겁고 내 삶에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면 한다. 연기 역시도 나이 들어서 까지 하고 싶다. 너무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배우만큼 다른 삶을 많이 살아볼 수 없으니까. 그러나 연기는 춤과는 다르게 누군가 시켜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감독님이든 나를 써주신다면 늙어서도 배우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할테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야만 할 것 같다.

글. 배선영sypova@tenasia.co.kr
사진. 채기원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ji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