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황제’ 신유, 아이돌급 ‘팬덤’ 장착 “트로트로 1등 하고 싶어요” (인터뷰)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이신 인터뷰

‘아이돌급’ 팬덤을 자랑하는 트로트 가수  신유. “트로트의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트로트 가수 신유(35)가 무대에 서면 객석은 핑크색 풍선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40대 이상 주부 팬들이 마치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듯 풍선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팬클럽 회원이 1만 명을 넘는다. 국내 팬 뿐만이 아니다. 일본 팬들까지 풍선을 들고 바다를 건너 왔다. 전국 각지를 누비며 노래하는 신유 곁에는 늘 핑크색 ‘풍선 부대’가 함께한다. 아이돌급 ‘팬덤’을 장착하며 최근 가장 ‘핫한’ 남자 트로트 가수로 떠올랐다.

“1등을 하고 싶어요. 나훈아 선생님을 레전드라 말하잖아요. 저 또한 트로트 가수로서 그렇게 되고 싶어요”

신유는 2008년 발매한 1집 앨범 ‘럭셔리 트로트 오브 신유(Luxury Trot Of shin Yu)’의 타이틀곡 ‘잠자는 공주’로 트로트계에 혜성 같이 등장했다. ‘잠자는 공주’외에 ‘시계바늘’ ‘일소일소 일노일노’ ‘꽃물’ 등 다양한 히트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나훈아, 남진, 태진아, 설운도를 잇는 ‘대어(大魚)’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10. 트로트계에서 ‘행사의 황제’로 불리는데 행사를 얼마나 다녀요?

신유: ‘황제’까지는…(웃음) 9월부터 11월 사이에 지역 행사들이 정말 많아요. 바쁠 때에는 한 달에 60개가 넘는 행사 무대에 섭니다. 하루에 두세 번 꼴이죠. 2~3년 전에는 하루에 5~6개 행사를 뛰었어요. 요즘에는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10. 전국 각지를 돌잖아요? 하루 5~6개면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인데. 

신유: 회사 차를 2년 이상을 못 타요. 우리나라 최북단부터 최남단까지 이동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하루에 1000km를 달린 적도 있어요. 지금 타고 있는 차는 5개월 밖에 안 됐는데 5만km를 넘겼어요.

10. 그러면서도 ‘대학축제’는 안 간다던데. 이유가 뭐예요?

신유: ‘대학축제’에 가면 출연가수 대부분이 아이돌이에요. 어린 팬들 앞에 제가 서면 ‘뭐하는 사람이지?’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라고요. 아니면 제가 노래하고 있을 때 휴대폰을 들여다보고요. ‘욕심내지 말자’ 라고 생각했죠. 제 노래의 소비 대상은 40대 이후 분들인 것 같아요.(웃음)

10. 그 정도 활동이면 수입도 만만찮을 텐데 돈 관리는 누가  하나요?

신유: 10년 가까이 활동 하면서 수입에 대해 관여해본 적은 없어요. 소속사가 가족회사여서 회사 대표인 친형과 아버지가 모든 걸 관리하시죠. 인기도 많이 올라갔고, 예전보다 안정감이 있는 걸로 봐서는…열심히 뛰는 만큼 적게 벌지는 않겠죠?(웃음)

10. 같은 시기에 데뷔한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못지 않게 팬덤이 굉장한데 팬클럽 회원수는 얼마나 돼요?
신유: 1만 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일본 팬들도 많습니다. 지방 행사장 까지 찾아와주시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에요.

10. 방송 무대나 행사장에서 보이는 핑크색 ‘풍선 부대’는 마치 아이돌을 보는듯 해요. ‘핑크’가 상징하는 건 뭔가요?
신유: 사실 잘 모르겠어요. 팬들이 신유의 색깔은 ‘핑크’ 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신유 풍선 부대

 

10. 2008년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는데 그 전에 앨범을 낸 적이 있죠?
신유: 2000년 SBS 드라마 ‘승부사’ OST ‘약속’으로 데뷔했어요. 발라드 가수로 시작한 거죠. 18살 때 친구 따라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대상을 수상했어요. 당시 최우수상은 JK 김동욱 씨였고요. 이후 많은 기획사에서 러브콜이 왔고, 한 회사에 들어갔는데 5년 동안 발이 묶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죠. 고심 끝에 20대 중반이 되어서 군대에 갔어요. 그때는 사람들 눈을 피하고 싶었고,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10. ‘트로트 가수’로 다시 데뷔한 거군요. 
신유: 트로트 가수인 아버지(신웅)께서 “너한테는 뽕필(트로트 감각)이 있다”면서 트로트를 권유하셨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축구선수로 활동했어요. 유소년 대표까지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뒤쳐지더라고요. 계속해서 게임을 뛰지 못하니 스스로 무너졌어요. 이후 가수로 데뷔 했지만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일로 힘들었고, 군에 다녀와서도 마음을 못잡고 있으니 아버지께서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셨겠어요. “널 위해 썼다”면서 데뷔곡 ‘잠자는 공주’를 주시더라고요.

10. 부친께서 권유하셨어도 당시 나이에 ‘트로트’는 확 와 닿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어요. 
신유: 처음에는 진짜 싫었어요. 원래는 발라드 가수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차라리 아버지 지원을 받아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가족들이 용기를 줬어요. 마음이 서서히 열린 거죠. 아버지와 함께 발성부터 창법, 감성까지  1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노래 연습을 했습니다. ‘소질이 보인다’는 걸 연습하면서 느꼈어요. 축구를 할 때와는 달리 점점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간절함도 컸던 것 같아요.

10. 대부분 인기곡이 부친께서 만든 노래죠?
신유: 90% 정도는 아버지가 작곡하셨어요. 제 음색, 감성, 장단점 등을 가장 잘 아는 분이니까요.

10. 타이틀 곡을 ‘잠자는 공주’로 내세운 건 의외였어요. 당시에는 ‘세미 트로트’ 붐이 일 때였는데. 
신유: 데뷔 당시에 이미 박현빈, 장윤정 두 분이 스타로 자리잡은 상태였어요. 덕분에 트로트 붐이 일었고, 젊은 층도 많은 관심을 보였죠. 그러면서 ‘세미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가운데 저는 ‘시계바늘’을 제쳐두고 ‘잠자는 공주’를 타이틀로 발표한거죠. 주변 사람들이 “요즘 같은 추세에 느린 노래로 나오는 건 ‘미친 짓이다’ ‘망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반대로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신의 한 수’ 였던 것 같아요. 당시 유행했던 장르가 아니었고, 계속 서서 노래하는 평범한 콘셉트였는데 그게 튀어 보였던 거예요.

10. ‘잠자는 공주’로 안착한 뒤  ‘시계바늘’은 중년 가요팬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됐죠?
신유: ‘시계바늘’은 회사에서도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는데 ‘시계바늘’이 들리는 거예요. 그 이후에는 휴게소에 갈 때 마다 흘러나오더라고요. 1년 넘게 계속 나왔던 거 같아요. 휴게소를 통해 입소문을 타서 많이 알려지게 된 노래예요.

10. 최근에도 세미 트로트를 주력으로 활동하는 가수들이 많은데 ‘정통 트로트’를 지향하는 이유가 있나요?
신유: 평생 트로트를 불러오신 대선배들 앞에서 제 노래를 ‘정통’이라고 감히 얘기할 순 없어요. 하지만 ‘정통 트로트’를 하는 가수로 맥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이에요.

10. 트로트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만 못하죠?
신유: 안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윤정, 박현빈 같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요. 후배들이 이어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 줬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그 분들과 저 같은 젊은 가수들이 계속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어요. 여전히 대중들은 트로트 가수들을 한 단계 아래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회사 CEO를 하다가 돈 좀 있다고 트로트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솔직히 그런 분들은 안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10.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신유: 지상파에서 자신이 발표한 트로트 곡을 온전히 부를 수 있는 무대는 ‘전국노래자랑’을 제외하고는 없어요. ‘가요무대’에 출연은 하지만 자기 노래는 못 하거든요. 어필할 수 있는 무대가 없어요. 하물며 라디오에서도 트로트를 들려주던 시간대에 1980~90년대 노래가 나와요.

10. 트로트 가수들의 고충이 꽤 많겠어요. 
신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트로트계에서 제가 막내 였는데 어느덧 중견 아닌 중견이 돼 버렸어요. 그러다보니 트로트 발전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나 혼자 잘 되면 과연 트로트가 살아날까요? 여러 명이 붐을 일으켜줘야 활성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상부터 무대까지 후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줘요. 장르의 발전을 위해서 인기를 얻고 올라오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좋은 후배들이 많은데 그들이 또 다시 붐을 일으켜 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이신 인터뷰

발라드 가수로 출발했다가 트로트로 다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신유가 서울 중구 청파로 텐아시아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얘기를 나누다 보니 꽤 진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 성격은 어때요?
신유: 지금 인터뷰하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지극히 평범해요. 집에서는 축구게임 하고 골프, 복싱 등 운동을 즐겨요. 샌드백을 치니까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웃음) 술은 한 잔도 못했는데 이젠 자기 전에 맥주 한두 캔 하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10. 트로트가수로서 꼭 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신유: 1등을 하고 싶어요. 나훈아 선생님을 레전드라고 하잖아요. 저 또한 트로트 가수로서 그렇게 되고 싶어요.

10. 새 앨범 계획은 있나요?
신유: 지난해 ‘반’과 ‘애가’ 라는 곡을 발표했어요. ‘반’ 역시 아버지가 만든 곡인데 반응이 좋아요. ‘애가’는 다른 작곡가께서 만들어 주셨는데 요즘 같은 계절에 딱 듣기 좋은 발라드풍 곡이고요. 사실 데뷔 연차에 비해 곡은 많은 편입니다. 트로트 가수라 해서 한두 곡으로 3~5년을 활동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계절이나, 환경,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곡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새 곡도 준비 중이니 기대해 주세요.

10. 힘들진 않아요?

신유: 사실 예전에는 이 길을 그만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서였는데, 제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땐 특히 더 그랬어요. 무대 위에서는 늘 행복했는데 내려오면 뭔가 허탈한 거예요. 개인적인 행복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0년을 넘게 활동해도 히트곡 하나 없고, 어디서도 불러주지 않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행복한 사람이잖아요. 어느 순간 다시 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가족들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인기는 거품과 같은 거잖아요. 영원한 건 없는 거고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개인적인 노력과 더불어 제 뒤를 이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