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아 “‘조제’라는 기회를 만났다” (인터뷰)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배우 문진아 / 사진제공=CJ문화재단

배우 문진아 / 사진제공=벨라뮤즈

요즘 배우 문진아의 팔과 다리는 멍투성이다. 지난달 8일 개막한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연출 김명환, 이하 조제)의 쿠미코로 살고 있어서다. 극중 조제(쿠미코)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고 불편한 다리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양팔에만 의지하고, 의자에서 내려올 때도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일쑤다. 연습 때부터 든 시퍼런 멍이 이젠 익숙하단다.

‘조제’는 일본 소설과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CJ문화재단이 뮤지컬 ‘판’에 이어 제작지원에 나선 두 번째 작품이다. 일본 영화 특유의 함축과 상징이 풍부한 데다 분위기도 차분하다. 연극으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탓에 작품에 대해 연구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덕분에 배우들의 사이는 더 끈끈해졌다. 좀처럼 ‘다시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문진아도 ‘조제’ 만큼은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며 “더 큰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10. 공연을 하면서도 의자, 유모차에서 계속 떨어지는데 부상은 없나요? 
문진아 : 연습 초반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유모차를 사용했어요. 이후 공연에서는 철로 된 유모차라 아무래도 팔이 더 아파요. 여기저기 툭툭 떨어지니 멍투성이에요. 이젠 넘어지는 것도 요령이 생겨서 괜찮습니다.(웃음)

10. 주로 뮤지컬에 출연하다 연극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의아하지는 않았습니까?
문진아 : ‘조제’가 공연으로 만들어진다기에 뮤지컬인 줄 알았는데 연극이었어요. 원작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작품이 되길 바랄 것 같았어요. 저도 그랬고요. 연기에 욕심도 있어서 흔쾌히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10. 함축된 부분도 많아서 해석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문진아 : 우선 조제가 일반적인 인물이 아니잖아요.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살다 보니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죠. 말하는 형식이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친구라 긴 말을 할 때는 정서가 묻어나지 않고 빨라요. 짧은 말을 할 때는 투박하고요.

10. 원작을 참고했습니까?
문진아 : 영화를 많이 봤어요. 한 번 볼 때 다섯 시간 동안 공부하듯 봤어요. 한 장면을 여러 번 나눠서 돌려봤죠. 소설도 계속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대사를 인용하기도 하고, 더 좋은 방향을 찾으려고 애썼어요. 한국 초연이기 때문에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노력을 많이 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애착도 크죠.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하는 배우 문진아 / 사진제공=CJ문화재단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하는 배우 문진아 / 사진제공=벨라뮤즈

10.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습니까?
문진아 : 정서와 감정 상태를 이어가야 하는데 작은 사건들이 많이 연결돼 있는 형식이라 조제는 물론이고 다른 배역들도 결코 쉽지 않아요. 조제와 츠네오가 중심이 돼 극을 끌어가고, 다른 배역들은 두 사람을 맞춰 주고 극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거든요. 살짝 흐지부지했던 라인들을 다잡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어요.

10.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확 드네요. 배우와 스태프들의 애정이 돈독하겠어요.
문진아 : 모든 배우들의 결속력이 어마어마해요.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작품을 위해 애착을 갖고 있으니까 무대 위에서도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아요.

10. 연구, 분석하면서 작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은 있나요?
문진아 :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장애인 여성이 비장애인인 남자친구를 만나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제가 츠네오에게 건네는 몇몇 말들이 슬프게 들리더군요. 사실 조제가 츠네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책에서 알고 있던 내용뿐이니까요. 츠네오를 만나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것을 해주려고 하는데…조제가 돼 작품을 다시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10. 늘 앉아서 생활하니 시선도 다르죠? 
문진아 : 극 중 효정이 공사 지원부터 무언가를 도와주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앉아있는 저는 그녀의 다리만 보여요. 하늘하늘거리는 치마와 깨끗한 하얀 신발이 정말 예쁘게 보이거든요. 그럴 땐 극 중 할머니가 조제에게 하는 말이 떠오르죠. “너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아이”라고요. 그럴 땐 자괴감이 들고 감정 상태도 동요돼요.

10. 실제 조제의 마음도 그럴까요?
문진아 : 조제는 스스로 멍청하다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잖아요. 아예 그런 감정을 모르는 아이죠.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이게 뭐지? 뭘까?’ 이런 상태죠. 좋고 나쁘다는 건 알겠지만, 그것도 이렇게 말하잖아요. “기분이 좋아서 나빠졌다”고요.(웃음) 감정 표현도 매우 서툰 귀여운 아이죠.

10. 조제로 살면서 느낀 점은 없나요?
문진아 : 조제처럼 진중하고 충실한 사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여주고 싶은 만큼 보여주고 아는 만큼 사랑하는, 현재에 충실한 사랑 말이죠. 꼭 이성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10. ‘조제’에 출연하길 잘한 것 같습니까?
문진아 : 최고예요. 연극을 통해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어요. 다음 공연 때도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조제’로 살면서 늘 행복해요. 고단하고 힘들지 않아서 감사할 뿐이죠. 앞으로도 해보지 않은 작품, 캐릭터가 있다면 언제든지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10. 차기작으로 또 연극 ‘톡톡’을 택했습니다. 동어반복증을 가진 릴리라는 역이에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에 도전하는 이유는요?
문진아 : 평소 삶이 평범하니까 작품 속에서 해소하고 싶은가 봐요.(웃음) 특히 ‘조제’는 극중 인물과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서 더 좋아요. 극 중 인물과 이미지가 잘 맞는다는 말을 듣는 작품이 몇이나 되겠어요? “극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 좋아요.

10. 오는 29일 막을 내리는데, 아쉽겠어요.
문진아 : 두 달이 짧게만 느껴져요.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요.(웃음) 마지막 공연을 마치면 실감할 것 같아요. 보통은 드러내지 않고 혼자 삭히는 편인데 ‘조제’는 유난히 서러울 것 같아요. 이렇게 단단한 결속력을 지닌 배우들이 뭉치기 쉽지 않거든요. 다시 이 팀을 못 본다고 하니까 벌써 아쉽네요. ‘조제’만큼은 재연된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어요. 더 캐면 지금보다 더 큰 보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죠.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공연 중인 배우 김찬호(왼쪽), 문진아 / 사진제공=CJ문화재단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공연 중인 배우 김찬호(왼쪽), 문진아 / 사진제공=벨라뮤즈

10. ‘조제’를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꼽을 수도 있겠군요.
문진아 : 지난 1월 뮤지컬 ‘청춘, 18대 1’을 마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좀 쉬고 싶었어요. 그때 마침 ‘조제’의 출연 제안을 받았죠. 명확하고 체계적인 작품을 한 뒤에 국내 초연인 데다 끊임없이 논의하고 연구하는 공연을 하면서 완전히 새로웠어요. 돌아보니 ‘조제’는 참 좋은 시기에 저에게 찾아온 작품입니다.

10. 공연을 하지 않을 땐 어떻게 보내나요?
문진아 : 성격이 외향적이에요. 암벽 타기, 등산 같이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해요. 작품 색깔에 따라 그 분위기를 따라가기도 하는데, 이번엔 ‘조제’로 좀 차분하게 보내고 있죠.

10. 2008년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시작해 뮤지컬 배우로 산 지도 10년 차가 됐습니다. 
문진아 : 신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베테랑도 아닌 애매모호한 지점이에요. 주위에 이 시기를 지나온 선배들이 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죠. 인기 배우들 중에도 충족하지 못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더군요. 단지 길만 다른 거지, 고민하는 건 마찬가지에요. 묵묵히 내 길을 가다보면 정말 좋은 시기에 ‘나’라는 배우가 빛을 볼 수 있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를 위해서 버티는 것도 중요하구나란 걸 깨닫죠. 버티는 동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뭐라도 해서 부족한 걸 깨닫고 활동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죠. 배우는 계속 공부하고 사유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10. ‘조제’를 마친 뒤 ‘톡톡’으로 관객을 만나겠군요.
문진아 : ‘조제’를 잘 보내준 뒤 내년 1월 28일까지 ‘톡톡’ 속 릴리로 살겁니다. 그리고 밴드 몽니의 김신의와 뮤지컬 콘서트도 할 것 같고요. 바쁘게 지낼 것 같아요.(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