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누구보다 화려하고 완벽한 (인터뷰)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배우 이순재 / 사진제공=극단 사조

배우 이순재 / 사진제공=극단 사조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로 연기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61년이 흘렀다. 그동안 숱한 작품에 출연하며 단연 ‘국민 배우’로 불리고 있지만 스스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올해에는 특히 연극 무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4월에 이어 앙코르 공연 중인 ‘사랑해요 당신'(연출 이재성)에서 한상우 역을 맡아 관객들의 눈물을 빼는 그는 배우 이순재(82)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며 힘겨워하는 그의 얼굴엔 고단한 그림자가 진짜인 양 드리우고, 섬세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연기에 청춘을 바친 ‘대배우’ 이순재는 만족하거나 멈추는 법이 없다. 지난 10일 서울 대학로예그린씨어터에서 만난 그는 오후 3시와 8시 공연을 연달아 소화하면서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연기는 다른 예술 활동과 달리 제작자, 관객들에게 선택돼야 한다. 스스로 끊임없이 개발해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10. 지난 4월에 이어 ‘사랑해요 당신’의 상우로 살고 있는데,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이순재 :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4월 공연을 올렸을 때 충분히 연습했기 때문에 재해석 될 만한 부분은 없죠.

10. 연기를 하면서 ‘치매’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순재 : 치매라는 건 나이가 들면 자연히 누구나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질병이에요. 운 좋게 피해 가는 사람도 있고 또 그 입장이 되기도 하죠. 치매는 정신적인 문제잖아요. 물론 그게 신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요. 정신적인 측면의 질병을 어떻게 주변 사람들이 감당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죠. 현 정부에서 국가적으로 치매 환자를 돕는다고 하는데 좋은 생각이에요. 인구는 계속 늘어날 모양인데, 치매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0. 극을 보면 서서히 아내를 돌보는 남편에게 시선이 가요. ‘얼마나 힘들까?’ 하고요.
이순재 : 부부라는 게 어느 한쪽이 아프면 서로 돌볼 수밖에 없어요.  서로 책임을 지는 거죠. 극중 상우는 ‘내가 잘했으면…’이라고 후회를 합니다.

10. ‘사랑해요 당신’을 하면서 생긴 변화가 있습니까?
이순재 : 나이가 들면 체력이나 기억력이 쇠퇴하기 마련이에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죠. 자꾸 움직이려고 하고 두뇌 개발도 나름대로 하고 있습니다.

10. 드라마, 영화, 예능, 연극까지 활동하시는데 힘들지 않나요? 
이순재 : 관객에겐 그런 활동들이 유사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렇지 않아요. 항상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려고 해요. 배우라는 건 만들어가는 작업의 연속이죠. 오랫동안 활동하는 배우들은 그걸 잘해서 그런 겁니다. 신구, 박근형 씨 모두 그렇죠. 그런 창조적 의욕이 넘치기 때문이에요. 했던 걸 계속 반복해서 한다면 식상해서 못 보지 않겠어요?

10. 올해 데뷔 61주년을 맞았는데, 어떠세요? 
이순재 : 몇 주년이란 것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했는데, 후배들이 ‘하나의 기억을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난해 기념 연극을 한 편 했습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은 더 오래 활동할 수 있을 거예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80대 배우들이 앞으로 많이 나올 겁니다.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왼쪽), 정영숙 / 사진제공=극단 사조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왼쪽), 정영숙 / 사진제공=극단 사조

10. 연기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는 없습니까?
이순재 : 항상 도전하고, 새롭게 만들겠다는 욕구는 변함없어요. 그게 우선되기에 똑같은 할아버지처럼 보여도, 저는 어제와 다른 걸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요.

10. 그런 점에서 생방송과도 같은 연극이 제격이겠습니다.
이순재 : 무대 연기는 관객들에게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느냐, 감동을 주느냐를 일일이 느낄 수 있어요. 공연 결과도 관객 반응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죠. 영국 배우이자 연출가 로렌스 올리비에가 규정을 했죠.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요. 동의합니다. 아무리 명연기를 했어도 영화감독이 편집하면 할 말이 없어요. 드라마는 작가가 쓰겠다고 하면 따라갈 수밖에 없고요. 연극은 다르죠.

10. 앞으로도 무대에서 자주 뵐 수 있을까요?
이순재 : 오는 12월엔 신구 씨와 연극을 할 겁니다. 드라마도 한편 찍게 돼 또 바쁘게 생겼는데(웃음) 이겨나가야지요.

10. 존경하는 후배들이 많은 만큼 선배로서의 책임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순재 : ’80대에도 활동하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기우를 갖고 있는데, 우리 후배들은 충분히 잘할 거예요. 다만 나이를 먹었다고, 또 정상에 올랐다고 오만해지면 언젠가는 사라지죠. 저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뭘 찾아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고요. 결심에 달린 거예요. 예를 들어 신구 씨를 보면 작품 시작 전에 대사를 일찍이 외워버려요. 그만큼 자기 작업에 대한 책임을 완벽하게 지고, 뭘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죠. 생명력을 유지하는 조건이에요.

10.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이순재 :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능력과 조건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 작품이 잘되면 사방에서 난리죠.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자연스럽게 들뜰 텐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건 금세 사라져요. 그렇다고 또 어느새 절망하고…그러면 안 돼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자기 계발이 필요해요. 우리 후배들은 자질이 풍부해요. 용모, 체격도 좋죠. 예술가로서 발전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다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어요.

10.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이순재 : 화려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했고, 완벽하지 않았으나 언제나 완벽을 추구했던 선배로 기억되면 좋겠군요.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