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빌로우 허’, 에리카 린데르가 만든 텍스트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빌로우 허' 메인 포스터

/사진=영화 ‘빌로우 허’ 메인 포스터

영화 ‘빌로우 허’(감독 에이프릴 뮬렌)와 에리카 린데르가 도착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잘 만들어진 여성 동성애 영화가 꽤 나왔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캐롤’ ‘아가씨’다.여기에 ‘빌로우 허’라는 흥미로운 영화가 한 편 더 개봉되었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동성애라는 소재를 퀴어의 영역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모두를 매혹시킨다는 데 있다.

영화는 매혹이라는 방법으로 우리를 설득한다. ‘빌로우 허’ 역시 사람에게 욕망을 느끼고 사람에게 매혹되는 우리 안의 본성을 떠올리게 하며 긴말 없이도 우리를 설득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약혼자와 결혼을 앞둔 패션 에디터 재스민(나탈리 크릴)과 재스민의 집 주변에서 지붕을 수리하던 댈러스(에리카 린데르)는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둘은 재스민의 약혼녀가 출장을 간 사이 불같은 사랑에 빠져들고 이별하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충동과 감정을 받아들인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흔하고 간단한 줄거리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사진=영화 '빌로우 허' 스틸컷

/사진=영화 ‘빌로우 허’ 스틸컷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에리카 린데르라는 배우가 도착했다. 이 신인 배우는 1990년대 생으로 남성복과 여성복 양쪽을 소화하는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그녀는 단순히 이전의 ‘드라이’하고 중성적인 여자 모델의 계보를 잇는다기 보다는 성별 유동성, 혹은 성별 중립의 영역을 열고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파격적으로 데뷔한 영화 전에도 이미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 인물이다.

이 신인배우는 스타성뿐 아니라 스스로 영화 속으로 이 텍스트성을 가지고 들어간다. 에리카 린데르가 연기하는 댈러스는 화면에 비치는 그 자체로 텍스트성을 가진다. 이 멋진 인물은 ‘여성스럽다”남성스럽다”레즈비언”젠더퀴어’ 등 이분법적 관념을 충돌 없이 무너뜨린다.

영화는 음악이나 문학과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 관념 밖 미지의 것을 단박에 설득하고는 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바로 에리카 린데르, 댈러스의 육체다. 단순히 키가 크다, 매력이 있다는 차원보다는 인물의 육, 혹은 존재가 하나의 담론 공간을 만들어낸다.

댈러스의 직선적인 몸이 주는 당당함, 곡선적 움직임이 주는 관능의 신체 언어 혹은 신체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언어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주제를 향한 잠재적인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점은 모든 스태프가 여성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류는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이러한 구성이 ‘여성의 시각’을 추적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여성이 느끼는 사랑은 고사하고 존재 자체가 남성의 시각에서 통념적으로 그려지는 멜로 영화는 몰입을 어렵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여성을 타깃으로 하면서도 화장실 유머나 일삼는 영화가 아직도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여성적 시각이란 것이 어떤 실체로 구성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전해진다. 음악, 사운드, 패션, 조명 등의 영역은 종종 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런 점이 밀도 있게 영화를 끌고 가는 힘으로 느껴진다. 특히 독특한 스펙트럼의 빛이 어우러지는 조명은 이 둘의 사랑을 우주적인 것으로 견인한다.

정지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