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기 위해(인터뷰)

[텐아시아=박슬기 기자]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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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한테 경험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캐릭터에 임하는 긴장감이 중요하죠. 긴장을 하고 연기에 임해도 관객에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긴장감을 갖고 고민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 자신한테 창피하긴 싫거든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설경구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찍은 작품을 잘 보지 못한다. 영화 속 내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는 만족은 아니지만 창피하진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설경구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는 병수 역을 위해 극한의 체중 감량으로 특수 분장 없이 자신보다 10살 많은 외형을 완성했다. 또한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겪어야 하는 혼돈을 순간적인 눈빛 변화로 표현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과 고민을 많이 한 결과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첫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나오자마자 외향적으로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영화의 신뢰도가 떨어질 것 같았죠. 특수 분장 이야기도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큰 화면에서 보면 특수 분장이 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한 번 늙어볼게요’라고 했죠. 가장 먼저 한 일이 기름기를 빼는 거였어요.”

‘역도산’ ‘오아시스’ ‘공공의 적’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10kg 이상의 몸무게를 뺐다 찌웠다 한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살을 뺐다. 자신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영화 크랭크인 전에는 첫 촬영지인 대전으로 내려가 여관에서 혼자 고립된 생활을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매니저도 서울로 올려 보내고 혼자 막판 짜내기를 했습니다. 첫 촬영날 감독님을 만났는데 ‘얼굴이 왜 그래요?’라며 걱정하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 때 ‘좀 된 것 같다’고 생각했죠. 촬영 내내 사소한 말에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서울 잠시 갔다가 내려오면 스태프가 지나가는 말로 ‘얼굴 좋아진 것 같은데?’라고 하면 신경 쓰이더라고요. 그러면 공복에 줄넘기를 했죠. 내가 나를 의심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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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사진=쇼박스

설경구는 최근 출연작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며 배우로서의 고민에 빠졌다. 그 때 ‘살인자의 기억법’ 병수가 찾아왔다. 은퇴한 연쇄살인범에 알츠하이머라는 설정을 가진 어려운 캐릭터였다.

“수년간 비슷한 캐릭터로, 비슷한 목소리로 편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한 작품 하고 끝나구나’  ‘또 한 작품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죠. 그런데 이렇게 하다가는 제가 그냥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고민을 할 때 ‘살인자의 기억법’이 찾아왔어요. 고민도 안 하고 결정했죠. 저에게 와준 게 고맙더라고요. 병수는 찍으면서도 가장 힘들고 고민 많았던 캐릭터지만 저의 고민을 조금은 덜어준 캐릭터이기도 하죠.”

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이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부담스러웠을 터. 설경구는 “원작 신경 쓸 겨를 없이 캐릭터 고민만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소설을 읽긴 했지만 병수 캐릭터를 해결하는 게 더 급선무였어요. 원작이 저를 지배하진 않았죠. 촬영하는 내내 알쏭달쏭했어요. 뭔지 모를 고민만 계속하고 잠은 안 오고. 그래서 원신연 감독에게 많이 물었어요. 촬영하고 모니터를 보면서도 ‘관객들이 봤을 때 잘 넘어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많이 뜨더라고요. 고민의 연속이었죠.”

데뷔 25년차인 설경구는 여전히 연기가 어렵단다. 자신이 나온 영화를 처음 볼 때면 긴장 한 채 두 손을 꼭 붙잡고 본다. 끊임없이 연기를 해왔지만 끊임없이 연기에 대해 고민한다.

“캐릭터를 많이 갖고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개인 설경구보다 이 배우는 ‘참 캐릭터가 많구나’라고 하는 배우요.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을 많이 남기고 싶네요.”

박슬기 기자 ps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