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2) 서수민CP, 찬란한 변화는 현재 진행 중

서수민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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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것이 장애가 됐던 시대는 분명 있었으며, 여자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오늘날 사회에서도 때로는 여자이기에 불편한 존재가 되는 현실은 공존한다.

변화에 민감한 방송계에서는 이런 종류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눈에 띄게 강세를 보이고 있는 예능국 여자 PD들을 차례로 찾아가 ‘여자’라는 화두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중 KBS 예능국의 상징이자 < 개그콘서트 > 대모로 불리는 KBS 서수민 CP와의 만남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녀가 지난 1995년 KBS에 입사한 이래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곧 방송계 여성 진출사였기 때문이다.

확연히 달라진 과거와 오늘에 새삼스러워하던 서수민 PD. 인터뷰 동안 지난날을 떠올리는 그녀의 얼굴에는 많은 표정이 담겨있었다. 한 때 남자답다는 말을 최고의 훈장처럼 여겼다는 그녀는 지금 후배들에게 치마를 입어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 그녀의 뜨거웠던 인생을 함께 돌이켜보았다.

 

 Q. KBS에 입사한 것이 1995년인데, 그 때만 해도 여자가 PD를 하겠다 마음먹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과정으로 PD가 되셨는지에 관한 설명 부탁드린다.

서수민 : 대학교(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연극반에서 활동 했다. 당연히 연극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연극을 하며 배고프게 살 자신은 또 없었다.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업 중 택하자 해서 선택한 직업이 PD였다. 연극을 하며 세트 디자인을 공부했고, 실제 대학로 산울림 극장 무대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PD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시험 준비할 당시 어느 누구도 ‘너가 붙을 것 같다’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 ‘그동안 여자를 안 뽑았다는데 널 뽑겠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운이 좋아 당시 예능 PD를 따로 뽑기 시작했고, 그렇게 여러가지가 잘 따라줘서 입사하게 됐다. 그런데 또 그게 끝은 아니었다. 입사한 뒤 나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선배들도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얘를 어떡해야 하나’하셨던 면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자PD라는 것이 당시만 해도 불편한 것이었달까. 한 에피소드로 기술직 감독님이 나를 ‘미스서’라고 부른 적도 있었으니까. 시정해야할까 생각도 하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었고, 저 분 생각에는 내가 결혼도 안했으니 그래 ‘미스서’ 맞지 하며 지나쳤었다. 어쨌거나 돌이켜보면 다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Q. 그런 과정을 다 거쳐 온 분이신 만큼 지금 여성 PD들의 약진은 새삼스럽겠다. 과거와 현재,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서수민 : 그렇다.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기도 했고. KBS에 출근을 하는데, 나를 사생팬으로 착각한 경비원에게 잡혀 끌려나간 적도 있었다(웃음). 나중에 안전관리실에서 나와 사과 하셨지만.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 상상도 못하지. 또 과거 예능국 주요 업무가 매니지먼트 쪽과의 접촉이었는데, 당시 매니저들이 여자 PD를 어떻게 대해야하나 당황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 뮤직뱅크> PD도 여자고, 방송3사 음악프로그램을 여자 PD가 다 거쳐 가지 않았나. 이제는 오히려 여자 PD와 일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만큼 익숙해졌던 말이겠지. 여자 PD에 익숙해진 환경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고, 시간이 지난 현재 돌이켜보면 쇼 비지니스의 분위기 자체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서수민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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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자PD로서, 아니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여자로서 가장 힘든 게 또 결혼과 임신 아닐까. (서수민 PD는 KBS 드라마국 김성근 CP와 결혼,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서수민 :처음 입사해서 제일 먼저 가졌던 생각은 ‘내가 과연 남자처럼 일할 수 있을까’였다. 주위를 둘러봐도 전부 다 남자이니까, 그때만 해도 여성성을 숨기고 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게 최고의 칭찬은 ’쟤 일 잘한다’가 아니라 ’쟤 남자다’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뿌듯했지.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으니. 욕 연습도 하고 강해 보이려고 했었다(웃음). 그러니 결혼하고 난 뒤 임신을 하는 것이 내게는 정말이지 큰 결심이었다. 배가 부른 채로 일을 한다는 것은 내게 일종의 커밍아웃같이 느껴졌달까. 26세 때 결혼을 했고 31세 때 아이를 낳았다. 했다. 사실 아이를 안가지려고도 했었는데, 결혼 이후 한참 있다 아이를 낳고 입봉을 하게 됐다. 입봉할 때도 ‘우습게 보이면 안돼’라는 마음이 강했다.

 

Q. 하지만 지금은 여자라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되고 있기도 하다. 여자 PD들의 강점을 분석한 것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공감 능력이더라. 여자였기에 유리했던 점은 없었나.

서수민 : 물론 있었다. < 개그콘서트 >을 연출하면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 개그콘서트 >에서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 애정남 > 이나 < 사마귀 유치원 > 에서 다룬 시어머니와 며느리, 명절전쟁, 전셋집 등등의 에피소드들이다. 이 땅에서 애를 키우며 살림하는 아줌마로서의 삶에 집중하고 그것을 드러내면서 달라진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자 PD이니까 공감능력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강하다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자 PD 중에서도 그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고 남자들 중에서도 월등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이도 있다. 아마도 오늘날 여성 PD들의 강세는 여자들이 주요프로그램에 배치된 3~4년 사이 눈에 띄게 된 일인데, 여자들만의 장점 때문이라기보다 시기적으로 지금 이름이 알려진 여자PD들이 입사할 때 여자 채용 숫자가 많아진 탓도 크다.

 

Q. 결과론적인 부분은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서수민 CP에 관해 물어보면 가장 큰 장점은 개그맨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엄마같은 역할이라고 하는데, 이 점은 여자로서의 장점이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서수민 CP의 이런 장점은 오늘날 < 개그콘서트 >의 영광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고.

서수민 : 연출의 영역에는 이런 것도 들어간다. 앞머리를 잘 못 자르면 그날 계속 잘 안 풀리는 징크스가 되는 개그맨에게 바리캉으로 협박도 해보고 가발도 씌워보고 그러면서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웃음).

 

서수민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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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개그콘서트 >의 가장 큰 강점은 < 개그콘서트 >만의 독보적인 시스템인데, 이 점에서도 서수민 CP의 역할은 컸다.

서수민 : < 개그콘서트 >의 변하지 않은 점은 공채 출신 개그맨들만 출연시킨다는 것. 이런 시스템의 장점은 실패해도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도 말하지만, KBS 공채 개그맨들에게는 언제든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점에서 청춘을 바칠 수 있게 한다. 또 서로간 연대의식도 생기게 되고. 오늘 코너를 짜와서 까여도 다음 주에 재미있는 것을 짜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 한 달 해외여행을 갔다 와서도 아이디어가 생각나 가져오면 설 수 있는 무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개그맨들에게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나는 김대희, 김준호가 있는 상황에서 김원효, 양상국이 뜰 줄 몰랐다라는 말이 가장 기쁘다.

 

Q. 그리고 < 개그콘서트 >가 뜨면서 개그맨에 대한 좋은 인식도 신장된 측면이 있고.

 서수민 : 그것이 제일 큰 성과다 사실. 개그맨 위상이 달라진 것은 앞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본다. 독립 운동 하듯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개그맨들은 연예인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면서 사고를 치면 공인이 돼버리는 불평등을 겪었다. 그런데 저들의 분야를 사람들이 인정해준 것이다. 한 때는 눈살을 찌푸렸던 개그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나아지며 호감이 되면서 그들의 노력을 많은 분들이 안아주시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여자 PD도 마찬가지다. 여자 PD가 아닌 성별이 다른 PD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익숙해진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Q. 성별을 떠나 후배 PD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

서수민 : PD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매 순간순간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 공허해진다. ‘웃기기만 하면 되지’라고 마음먹으면 거기서 끝난다. 또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라는 것.

 

Q. 과거 남자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큰 칭찬이라고 했지만, 오늘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나 부드러운 분이라는 것이다. 변화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라고 봐야겠지.

서수민 : ‘할 수 있어. 너만의 색깔을 찾아내. 그래야 < 개그콘서트 >안에 너의 영역이 생겨. 남을 따라하지마.’ 라고 개그맨들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문득 정작 나 역시도 이 말을 지키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서 개그맨들에게 바뀌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그맨들에게는 ‘너의 단점을 인정해. 그리고 드러내’라고 말하면서 나는 아줌마인 나를 억누르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치마도 입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것이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었는데 내가 치마를 입어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는 점이다. 결국 나만의 결벽증이었던 것이다. 허물어버리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