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브이아이피’는 슬럼프 돌파구였다(인터뷰)

[텐아시아=박슬기 기자]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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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은 영리한 배우다. 자신이 배우로서 지닌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다. 시청자가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안다. 자신이 맡으면 어울릴 역할들도 무엇인지 안다. 흥행을 이끄는 톱스타 배우인 만큼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이 슬럼프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종석은 슬럼프의 돌파구로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를 선택했다.박훈정 감독을 직접 찾아가 출연하고 싶다고 먼저 말했을 만큼 간절했다. 그리고 자신이 약점으로 꼽던 소년미를 역이용해 북한 귀순자 연쇄살인범 김광일을 연기했다. 데뷔 이래 가장 큰 연기변신이었다. 로맨틱코미디에 최적화된 배우로 꼽히던 그가 생애 첫 악역인 살인마 역을 맡은 것이다. 그의 선택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종석은 후회하지 않았다. ‘브이아이피’를 통해 갈증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10. 감독을 찾아가 출연하게 된 영화, 보고 나니 어떤가?
이종석: 사실 굉장히 불안했다. 익숙하지 않은 톤으로 연기를 해서 겁이 많이 났다. 영화 ‘관상’ 때 선배들이 대사를 하는 중간에 제가 등장하면 흐름이 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번에도 그럴까 겁이 났다. 하지만 보고 나서는 속이 시원했다. 모처럼 만족스러웠다.

10. 이 작품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종석: 영화의 소재 자체가 할리우드에서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데 그 안에서 한국과 북한, 미국이 얽혀있는 이야기가 재밌었다. 선배 배우들이 웃으면서 영화가 시나리오보다 열 배는 재밌다고 하셨는데 저도 공감한다. 영화 나온 걸 보니까 캐릭터가 살아 움직여서 이야기가 쉽게 다가왔다.

10. 데뷔 후 첫 악역이다. 후유증은 안 남았나?
이종석: 잔인한 장면들을 찍을 때는 힘들었다. 피를 많이 봐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았다. 하지만 그런 신이 있었기에 캐릭터가 힘을 받아서 뒷 내용을 끌고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브이아이피’의 잔상이 9월 방송될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로 넘어갈까 우려된다.

10. 첫 악역, 의외의 선택이었는데?
이종석: 소년 같은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 악역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이미지가 ‘브이아이피’에서는 장점이자 무기로 작용했다. 사실 제 이미지를 깨고 싶은 것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래서 계속 누아르를 하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뜬다.

10. 영화 ‘코리아’와 드라마 ‘닥터 이방인’에 이어 이번에도 북한 사투리를 썼는데.
이종석: 북한에서 오신 선생님한테 사투리를 배웠기 때문에 ‘브이아이피’ 하기 전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브이아이피’ 속 김광일은 좀 달랐다.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해외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박훈정 감독이 북한과 남한의 중간 정도로 해달라고 했다. 또 실제 북한의 브이아이피들이 세련됐다고 해서 감을 잡는데 힘이 들었다. 함께 출연한 박희순 선배의 톤을 많이 참고했다.

10. 군 입대를 연기한 이유는?
이종석: 실제로 입대를 계획했다. 차기작도 생각했는데 일단 입대 하게 되면 영화에 피해가 될까 걱정이 돼서 감독에게 다른 캐스팅을 알아보시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군대를 연기하게 됐지만 ‘브이아이피’는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몇 년 만에 한 영화이기도 하고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드라마 방영도 얼마 남지 않아서 이 일정을 잘 소화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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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종석.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10. ‘브이아이피’에 함께 출연한 장동건과 김명민이 칭찬을 많이 하던데.
이종석: 저는 원래 괴롭게 작품을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브이아이피’ 만큼은 계산이나 생각을 안 하고 임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박훈정 감독과 선배들한테 몸을 맡겼다. 편하게는 촬영했지만 사실 불안감은 컸다. ‘내가 준비를 더 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나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 말이다. 하지만 선배들이 잘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10. 결과를 보니 내려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던가?
이종석: 내려놓길 잘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연기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브이아이피’에서 그럴 수 있었던 건 박훈정 감독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었다. 정말 연기를 처음 하는 사람처럼 ‘여기서 손을 들어요? 말아요?’ ‘어느 정도로 웃어요?’라며 일일이 다 물어봤다.

10. 드라마 ‘W(더블유)’ 전까지 1년 간의 공백이 있었는데?
이종석: 그 시기, 슬럼프가 심하게 왔다. ‘닥터 이방인’을 찍을 당시 캐릭터 연구를 정말 많이 해서 전력 투구했다. 5부까지 방송이 나가고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그 후에 멘탈 붕괴가 왔다. 자아와 캐릭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심하게 부딪혔다. 너무 힘들었다. 촬영 중간에 송강호 선배가 ‘연기 아주 좋다’고 응원 문자를 보내주셔서 그 힘으로 버텼다. 그리고 ‘피노키오’를 찍고 1년 간 쉬었다. ‘피노키오’를 안 찍었으면 공백은 더 길었을 수도 있다.

10. 지금은 슬럼프를 극복 했나?
이종석: 아직 완벽하게 극복하진 못했다. 여전히 그 지점들이 많이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브이아이피’를 선택했다. 어찌 보면 모험이고 시기상조였다. 저에게는 돌파구의 의미였다. 나하고 완전히 다르고 공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해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덜 괴로운 작품이었다.

10.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이종석: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들이 있다. 나도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뭔지 알고 사람들이 내게서 원하는 걸 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빨리 많이 소진시키고 싶다. 그렇게 되면 들어오던 시나리오 대본도 줄어들 것이고 관객도 나에 대한 기대가 줄 것이다. 끝까지 밀어붙이면 나한테서도 새로운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들도 마감 시간 정해놓으면 글이 나오듯이 저도 밀어붙이면 새로운 걸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찾지 못하면 사라지겠지만… 이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박슬기 기자 ps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