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감!직장의신 | 만능배우 김혜수의 조금 특별한 직업 이력

<직장의 신> 김혜수

<직장의 신> 김혜수

배우 김혜수. 그녀는 언제나 ‘핫’했다. 16세에 데뷔해 첫사랑의 대명사로 지금의 수지만큼이나 인기를 끌었고, 수더분한 엄마의 역할부터 요부 배역까지 두루 거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왔다. 항상 섹시·엣지·패션의 아이콘 등의 수식어가 뒤따랐다. 여배우의 화려함과 내실 있는 연기력은 그녀의 26년 연기생활을 지탱한 두 바퀴였다. 그런 그녀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KBS2 <직장의 신> 만능 캐릭터 미스 김으로 돌아온 그녀의 조금 특별한 직업 이력을 살펴본다.

 

 

영화 < 첫사랑> 포스터

영화 < 첫사랑> 포스터

1. 이룰 수 없는 첫사랑을 꿈꾸다, 풋풋한 미대생

<첫사랑>(1993)

극한의 합리주의를 추구할 것만 같은 ‘미스 김’도 눈에 콩깍지가 씌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스무 살 무렵의 풋풋함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첫사랑>으로 지금의 수지만큼이나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다. 이명세 감독의 3번째 연출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김혜수는 유부남이자 대학 초빙 연출자인 창욱(송영창)과 사랑에 빠진 영신 역할에 분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다소 통속적인 내용에도 영화 속 22세 김혜수의 매력은 빛났다. <첫사랑>은 재작년에 있었던 ‘이명세 감독 특별전’에서 재상영 되었는데, 그녀는 무대인사 때 자신의 성인 데뷔작에 가까운 이 영화를 해마다 한 두 번씩은 꼭 본다고 말했다. 스무 살 무렵 아무것도 모르고 하던 연기를 보면서 지금도 스스로 배우는 게 있다나. 이 영화로 김혜수는 당대에 첫사랑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했고, 제14회 청룡영화상에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닥터K> 포스터

영화 <닥터K> 포스터

2. 바늘끝 만큼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마취과 전문 의사

<닥터K>(1999)

영화 <첫사랑>의 성공이후 드라마 <짝>(1994) <곰탕>(1996) 등으로 대중들과 가까이 호흡했던 그녀가 1999년에는 의사 배역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그 사이에 몇 편의 영화가 있긴 했다. 하지만 <닥터K>에서는 <남자는 괴로워>(1995) <닥터 봉>(1995) <찜>(1998) 등에서의 스튜어디스·노처녀 가요작가 등을 역할에서 벗어나 전문직 배역을 맡았다. 김혜수는 공사구분이 명확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의 마취과 전문의 표지수역에 분했다. 흥행의 귀재 곽경택 감독의 초기작이기도 했던 이 영화는, 다소 엉성한 스토리 때문에 신선하다는 평과 괴작(怪作)이라는 비판 사이를 오갔으나 아쉽게도 흥행엔 참패했다. 차인표 김혜수 유인촌 박상면 등이 출연했고 신인시절 김하늘 안재모 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영화 <얼굴없는 미녀> 포스터

영화 <얼굴없는 미녀> 포스터

3. 지독한 사랑이 남긴 상처로 고통 받다, 정신병 환자

<얼굴 없는 미녀>(2004)

김혜수는 2003년에 드라마 <장희빈>으로 안방을 평정한데 이어 데뷔 후 처음으로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연기를 펼쳤다. 배역은 사랑의 상처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계선 장애를 겪고 있는 지수였다. <얼굴 없는 미녀>는 1980년 TBC TV 시리즈물 <형사>의 납량특집 드라마 ‘얼굴 없는 미녀’에서 모티브를 발췌해 큰 주목을 끌었다. 흥미로운 스토리만큼이나 당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파격적인 배드신이었다. 그녀는 <얼굴 없는 미녀>에서 전라에 가까운 노출을 감행하며 ‘글래머 스타’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약간은 퇴폐적인 듯한 농익은 관능미를 연기로 표출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큰 소득이었다. 만족스러운 흥행성적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묘사하는 데 성공하여 제4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타짜> 포스터

영화 <타짜> 포스터

4.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 매력, 팜므 파탈

<타짜>(2006) <장희빈>(2002) <깜보>(1986) 놀랍게도 배우 김혜수가 ‘팜므 파탈의 대명사’가 된 시발점은 그녀의 영화 데뷔작 <깜보>였다. <깜보>에서는 깜보(장두이)와 제비(박중훈)을 위험에 빠뜨리는 나영 역으로 분했다. 박중훈과 김혜수는 영화 데뷔작으로 제2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여자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물론 김혜수의 풋풋한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장희빈>에선 좀 더 독해진 팜므 파탈을 선보였다. KBS의 <장희빈>을 통해 7대 장희빈에 등극한 그녀는 극 중 초반에는 서구적인 마스크로 연기력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그녀가 독해지면 독해질수록 시청률은 큰 폭으로 상승했고, 결국 그해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종전의 배역들이 팜므 파탈 배역의 전형성을 띠고 있었다면, <타짜>의 정 마담 역에는 그녀만의 캐릭터가 살아있었다. 팜므 파탈의 진화라고나 할까. “나 이대나온 여자야”라는 대사를 유행시킨 그녀는 <타짜>를 통해 지적이면서도 관능미를 갖춘 팜므 파탈을 그려냈다. 배우 김혜수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셈이다. 흥행은 대박이었고 최동훈 감독을 비롯한 주·조연 배우들 모두가 그해 영화제를 휩쓸었다.

 

영화 <모던 보이> 포스터

영화 <모던 보이> 포스터

5. 사랑을 위해 시대와 맞서다, 독립운동가

<모던 보이>(2008)

2012년 영화 <은교>로 화제몰이에 성공한 정지우 감독의 작품이다. <모던 보이>에는 흥행작들의 필수요소들이 모두 들어있었으나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버무려내진 못했다. 김혜수는 독립운동가 조난실 역에 분했다. 영화의 의상·음악·춤 등의 디테일한 요소들은 가히 김혜수 한 명을 위한 준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그녀의 연기력은 되레 그 화려함에 묻혔다. <타짜>의 성공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일까. 그녀는 <모던 보이> 이전의 영화들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호러·코미디·드라마 장르에 두루 도전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분전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모던 보이>에서 춤과 노래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스토리가 문제였든 연기력이 문제였든 조난실이란 인물이 붕 떠있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흥행 또한 신통치 않았다. 박해일 김남길 등이 출연했다.

 

드라마 <스타일> 포스터

드라마 <스타일> 포스터

6. 자기 자신을 신보다 더 믿고 사랑하는, 잡지 에디터

<스타일>(2009)

<스타일> 속 박기자의 캐릭터는 <직장의 신> 미스 김과 닮았다. 2009년에 큰 화제를 모으며 방영된 <스타일>은 드라마에 강세를 보이는 김혜수의 캐릭터 잡는 능력을 여지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김혜수는 빈틈없는 업무 처리능력을 갖췄지만 인간적인 매력이란 전혀 없는 박기자 역을 맡았다. 화려하지만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성을 표현하는 데에는 김혜수가 적격이었다. 드라마 <장희빈>과 영화 <타짜> 등을 통해 확립한 도발적인 매력과 한층 깊어진 연기력의 조화가 돋보였다. 한때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그녀의 대사 “엣지(Edge)있게!” 대유행하기도 했다. 또한 극 중에서 그녀가 입고 차고 나오는 모든 것들이 품절되는 사태가 계속되어 ‘완판녀’라는 칭호도 얻었다. 흥행에도 성공하며 <타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김혜수도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김혜수 류시원 이지아 이용우 등이 출연했다.

 

영화 <이층의 악당> 포스터

영화 <이층의 악당> 포스터

7. 수더분하지만 까다로운, 엄마

<이층의 악당>(2010) <열한 번째 엄마>(2007) <분홍신>(2005) 

김혜수는 2000년대에 이르러 다수의 작품에서 엄마로 분했다. 영화 <분홍신>에선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딸을 지키려는 엄마 선재 역을 맡았다. 그러나 호러물의 식상한 구성을 답습한 탓일까. 영화 속에서 엄마의 존재감을 찾기는 어려웠다. <열한 번째 엄마>에서는 힘을 많이 뺐다. 과장된 연기로 모성을 보여주려 하기 보다는 잔잔한 영화에 묻어가는 노련함이 빛났다. 류승룡 황정민 등의 연기파 배우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엄마 연기의 완결판은 <이층의 악당>이었다. 그저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까칠한 30대 엄마 연주를 맡았다. 부러 꾸미지 않은 수더분한 엄마 역을 소화해내면서 캐릭터가 지닌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에도 김혜수 한석규 조합은 대한민국 대표배우란 타이틀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코미디와 범죄의 경계를 허문 자연스러운 연기에 평단은 물론 관객들까지 호응을 보냈지만, 다소 아쉬운 흥행 성적을 남겼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