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기억이라는 이름의 판타지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tvN <나인 : 아홉번의 시간 여행> 11회 2013년 4월 15일(월) 오후 11시

다섯 줄 요약

모든 것을 기억해 낸 민영(조윤희)은 선우(이진욱)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묻지만, 민영의 인생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은 선우는 민영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내며 밀어낸다. 민영의 기억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선우의 모습에 민영은 우선 물러서지만, 점점 더 선명해지는 기억에 괴로워하고 결국 선우도 이런 민영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최진철(정동환)은 문득 20년 전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2013년의 선우의 얼굴을 기억해 내고 혼란스러워 한다.

리뷰

상반된 기억과 현실이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졌고, 그 파편에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선우(이진욱)가 그토록 구분 짓고자 했던 ‘팩트’와 ‘판타지’가 현실과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정면으로 부딪히고 깨진 것이다. <나인>의 초반, 기자라는 신분으로 ‘팩트’에 대해 그토록 강조했던 선우가 막상 2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신기한 향을 갖게 된 순간 ‘판타지’와 ‘팩트’의 경계는 모호해졌었다. 실제로 선우는 향을 얻는 순간 작정하고 ‘기자의 직감으로 이 판타지는 팩트’라고 규정지었으며, 그 이후 민영과의 신혼여행에서 ‘현실 앞에서는 판타지이건 팩트 건 중요하지 않다’고 다시 한 번 자신이 그토록 신봉해 왔던 팩트와 판타지의 경계선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이름의 판타지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 ‘기억’으로 바꿀 수 있는 현실은 하나도 없다고 절망하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애써 지워왔던 ‘팩트와 판타지’의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선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지울 수 없는 기억과 선, 그리고 팩트는 다시 민영으로부터 시작됐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판타지였던 민영의 기억이 온전하게 돌아왔다. 물건으로 각성된 민영의 기억은 결국 보호막에 갇혀 있던 기억을 끄집어냈고, 선우가 무심코 내뱉었던 이야기들이 단서가 되어 결국 선우에게 되돌아왔다. 11회는 초반 이후 상대적으로 민영이 아무 기억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지지부진했던 두 남녀 주인공의 멜로 라인을 급진전시킨 한 회였다. 최진철(정동환)의 죄상과 아버지 죽음의 실체가 밝혀지며 과거의 비밀들이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에서, <나인>은 다시 그 축을 멜로로 옮겨 극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당겼다. 이제 민영이 모든 기억을 되찾은 이상, 선우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박민영의 삶을 살게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선우는 다시금 모든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을 밝힐 것인지 아니면 20년 전에 버리고 온 향을 다시금 되찾아 낼 것인지 또 다시 갈림길에 섰다. 향을 선택해 과거를 되돌리는 것이 어떠한 파장을 몰고 올지 몰랐던 시절과는 달리, 이미 그 이후에 불러오는 결과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알게 된 선우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향의 판타지이며, 기억은 모두를 괴롭게 할 뿐 현실을 되돌리게 할 수는 없다. 마주한 기억과 그 기억이 불러온 현실 앞에서, <나인>은 어떠한 판타지와 팩트로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이제 중반을 막 넘어선 <나인>은 여전히 호기심을 자극하며 팔딱거리는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수다 포인트

– 선우가 약 먹으면서 항상 발견되는 생수 PPL 때문에, 두통이 유지되는 건 아니겠죠 설마?

– ‘넌씨눈’이라 비난했던 서준, 갑자기 버림 받은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건가요?

– 혹시 싶어 앉아있는 사무실을 한바퀴 둘러보지만, 박선우 같은 선배가 없다는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