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구, 제2의 인생은 이제 시작된다

“여러분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드리는 면봉 앵커로 거듭나겠다.”

“여러분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드리는 면봉 앵커로 거듭나겠다.” 다시 돌아온 최일구 앵커가 지난 13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SNL코리아>의 코너 <위켄드업데이트>에서 한 말이다. 사실 이 말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10년 MBC <주말 뉴스데스크>가 기존 9시대에서 8시대로 방송시간대를 파격 변경하면서 메인 앵커로 이를 홍보하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의 문을 두드렸고, 당시 MC 강호동 앞에서 “기자는 면봉 같은 존재다. 면봉이 국민의 막힌 귀를 뚫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기자란 바로 그런 존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최일구 앵커는 자신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직장 MBC를 떠났고, 케이블채널 tvN의 한 예능프로그램의 코너를 맡게 됐다. 짧다면 짧은, 또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그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정작 그 자신은 변한 것이 없었나보다. 여전히 그는 국민의 면봉이 되고자 하는 언론인이었다.

13일 오후 상암동 CJ E&M 센터에서 <SNL코리아> 리허설 중인 최일구 앵커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 중인 그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서려있었고, 내민 명함은 여전히 MBC의 것이었다. 이를 겸연쩍어 하는 모습이 새삼 그가 MBC를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국민 앵커, MBC 간판앵커’. 그를 수식하던 온갖 어구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동안 그는 입을 열고 그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Q. 우선 근황을 좀 들려 달라.

최일구 : 돌이켜보니 MBC 입사 이후 27년하고도 2,3개월이 됐더라. 1985년 12월 입사니 만으로 27년 3개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월 8일자로 사표가 수리됐다. 특강이라던가 이쪽으로도 시장이 있어 나가볼까 하고 일단은 무작정 사표를 냈다. 그리고 나서 지방에 머리 식히러 여행도 다녔는데, 마침 tvN 쪽에서 연락이 왔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 4월 초에 결정했다. 사표내고 나서는 두 달 만이지만, 사실은 작년 2월 말 부터 앵커를 그만두고 파업에 동참 했으니 일 년하고도 두 달을 쉬었던 것이다.

Q. 오랜 공백 끝에 왜 < SNL코리아 >로 컴백하게 됐을까.
최일구 : 솔직히 말하자면, tvN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고민 끝에 <SNL코리아>로 결정했는데, 예능이라는 점에서 망설인 부분도 없잖아 있다. 내 나이가 올해 쉰셋인데 나이도 많고 27년 동안 줄곧 해왔던 일이 기자인데 과연 유명한 연예인들 속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했던 재작년, 시즌 1에서 장진 감독이 <위켄드 업데이트>를 하는 것을 보고 ‘야. 저거 나중에 한번 해보고 싶다’ 했었다. 미국의 코미디언들은 시사 풍자를 자유롭게 하는데, 참 재미있어 보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게 보편화될 날이 머지않았겠구나 하던 차에 본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내가 바로 그 코너를 제안 받게 됐다. 평소 생각하던 것이 있었기에 고민 끝에 결정을 하게 됐다.

Q. 남은 MBC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최일구 : 얼마 전 한 후배와 통화했는데 ‘최 선배 떠나가시면 어떡하나. 서운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항상 미안하다. 대신 밖에 나와서도 후배들에 누가 안 되도록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김재철 사장이 물러났고, 이제부터 MBC는 조직을 추스르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외부적으로는 시청자의 신뢰도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큰 과제라고 보고 있다.

Q. 오상진 아나운서와 문지애 아나운서가 최일구 앵커 퇴사 이후 사표를 냈다. 연락을 해보았나.
최일구 : 그렇더라. 내가 사표내고 난 다음 인터넷 뉴스에 오상진 씨도 사표 냈다고 하더라. 오상진 씨야 워낙 유능한 아나운서니까 내가 조언을 안 해도 잘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지애 씨의 경우 지난주에 뉴스를 보고 전화를 했다. ‘정말로 학업과 가정에 충실하려고 (퇴사)한거냐?’ 했더니 ‘맞아요. 국장님’ 그러더라. ‘너까지 나간 것에 대해 놀랐다. 당분간 네 뜻대로 쉬고, 다음에 한 번 보자’ 이렇게 전화를 했었다.

Q. 김재철 사장이 퇴진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최일구 : 떠난 사람이 말을 하긴 그렇지만, 글쎄 생각은 있는데 기자들 앞이니 뭐라 그래야 할까(웃음). 김재철 사장도 자기 자신이 생각할 때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한 후배들은 또 우리가 하는 주장이 맞다 생각했기 때문에 일 년 넘게 그런 행동과 생각을 해왔던 것 같고……(침묵)…… 말씀 드리기가 조심스럽다. 떠난 입장이라서. 하여튼 MBC가 앞으로 잘 되기만을 생각한다. 김재철 사장 퇴진이라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MBC가 앞으로 잘 됐으면 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Q. (김재철 퇴진 소식을 듣고) 혹시나 사표를 제출한 것을 후회하거나 하지는 않았나.
최일구 : 글쎄, 이미 선택한 길이고 그런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 비슷하게 됐는데, 보통 프리랜서라 하면 아나운서들이 많이 하는데 기자가 프리랜서 한다는 것이 겁이 나긴 했다. 직장이라는 우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됐고. 하지만 앞으로 선택한 이 길에 대해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많이 두렵지만. 우선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 위기 속에서 좀 더 성장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 진지하게 성찰도 해야 할 것 같고 거기에 걸맞게 남은 인생을 생각하자면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Q. 사표를 제출한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나.
최일구 : 작년 2월에 파업에 동참하면서, 그 때의 계산으로는 길어봐야 서너 달 안에 파업이 정리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다. 하다 보니 7개월이나 파업을 하게 되고 또 정직을 먹게 됐고 MBC 아카데미에 가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런 생활방식에 대한 회의가 들더라. 인생이라는 것이 한 번 밖에 없는 것인데, 나이는 자꾸만 먹어가는 상황이고 이렇게 의미 없이 연예인도 아닌데 모자 푹 눌러쓰고 다니면서 살아야할까 했었다.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하던 차에 2월 4일 사규를 어겼다. 외부 강연을 하면 원래 회사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MBC 아카데미 있다 보니까 신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사규 위반으로 인사위원회 올라가게 됐고 2월 4일 정직 3개월이 나오더라. 그 전에도 정직 3개월이 있었는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회사에서 더 이상 다니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부터 고민을 하고 있었던 차에 정직 3개월 인사 결정이 나니 더 이상… 사실은 정년퇴직 때까지 MBC에 뼈를 묻고 다른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할 생각이었지만, 주변 상황이 바뀌다보니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Q.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들려달라.
최일구 : 지금 계획이 있을 리는 없다. <위켄드 업데이트>에 일단은 전념할 것이다.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1년 2개월 만에 일이라는 것을 해보니 에너지가 넘친다. 여기에 와보니 PD나 스태프들도 다들 젊은 분들이고 신동엽 씨나 유세윤 씨나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과 호흡을 하다보니까 나 스스로도 한 살이라도 젊어진 기분 같고 상당히 좋다.

Q. 최일구 앵커하면 촌철살인 클로징 멘트가 상징적이다. 그런 부분을 <위켄드 업데이트>에서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최일구 : 오늘은 첫 날이라 PD가 정해준 부분에서 내가 조금 수정을 한 정도다. 앞으로 맞춰가면서 해야지. 분위기를 봐가면서 차츰차츰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줄 생각이다. 아직은 처음 온 손님이니까, 이쪽 문화나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든다.

Q. 프리랜서이니만큼 나중에 MBC에서 출연 요청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응할 것인지.

최일구 : 고향 같은 곳인데 거절할 이유야 없지(웃음).

최일구 앵커. 누구보다 MBC를 사랑했던 MBC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MBC를 떠났다. 그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며, 미지의 세계로 향해가는 그의 발걸음은 마냥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 그의 고민의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져왔다. 누구보다 치열했던 기자였던 그가 기자로서 살지 못했던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의 마음고생도 짐작이 됐다.

그를 위안해줄 말은 이제 그 모든 것은 끝이 났다는 것. 새로운 세상에 몸을 던진 그는 2010년 방송된 <무릎팍도사>가 그를 소개했던 ‘앵커계 콜럼버스’라는 별칭에 걸맞은 결과를 보여줄 것이라 장담한다. 긴장 가득한 그의 표정 속 드문드문 설렘의 기색도 서려있었다. 박수 받아 마땅했던 인생을 걸어온 한 앵커의 제2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사진. tvN 제공

글.배선영 sypova@tenasia.co.kr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